분노·질투·적의·욕정·미움 등의 상처를 입은 감정들이 부글부글 용암처럼, 내가 살면서 이따금 불꽃처럼 활화산이 되어 흉중(胸中)에 소용돌이치고 무슨 습관처럼 ‘나’를 바람 부는 날로 이끄는 때가 있다. 그런 날이 꼭 온다.그림자/천양희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마른가지 몇개 분질렀습니다그래도 꺾이지 않는 건 마음입니다마음을 들고 오솔길에 듭니다바람 부니 풀들이 파랗게 파랑을 일으킵니다한해살이풀을 만날 때쯤이면한 시절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나는 그만 풀이 죽어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가 좋다고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합니다오솔길은 천리로
새해가 시작됐다. 임인년(2022)이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웃음은 언제나 울음과 정비례 관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음이 부족했다. 늘 정량을 채우지 못하고 미달로 모자랐던 것 같다. 이 때문일까, 누군가 내게 너 행복했니?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행복했다고 답하지 못한 것만 같다.고쳐 쓰는 묘비/김선우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시와 그림은 캔버스와 물감과도 같은 관계입니다. 어떤 시를 읽으면 그림이 남고, 어떤 그림을 보면 시가 읽힙니다.” (원재훈,
시 한 줄이 그림으로 스며든다. 달빛 환한 바닷가 해변 바위섬을 무대로 두 여인이 저녁 바람이 전하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스텝을 밟고 있다. 지금을 즐긴다. 춤춘다.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바닷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울려 퍼지고 있는지도 혹여 모를 일이다.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알프레드 디 수자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
그림 속 시점을 봄이 오는 첫 골목, 아직은 조금 쌀쌀한 삼월의 어느 날 쯤이라고 해두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잔을 응시하는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에게 반쯤 문을 연 꽃 핀 정원을 향해 비의 모습이 되어 “저처럼/종종걸음으로/나도 누군가를/찾아 나서고/싶다……” 비/황인숙저처럼종종걸음으로나도 누군가를찾아 나서고싶다……“시를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섬세하게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문광훈, 《미학 수업》, 305쪽 참조)저(雨/雪)처럼 종종걸음으로 너에게로앞에 명시는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다던 꿈 많던 소녀는 시집을 가서 엄마가 되면 으레 이렇게 말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온다고. 그런가 하면 50-60의 나이, 중년이 되어 늙어가면서는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다고. 이렇듯 여자들, 갱년기 특징을 다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 남자들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어쩌면 절로 깨우치게 되는 것일지도. 사랑의 물리학/김인육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제비꽃같이 조그만 그 계집애가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순간,
제비꽃은 매년 4월이 오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봄(春)이 오면 봄(見)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그리스어로는 비올라(Viola)로 부르고, 유럽은 바이올렛(Violet)으로 표기한다. 꽃말에 ‘성실’, ‘겸손’이란 뜻이 보인다. 다르게는 ‘순진한 사랑’ 혹은 ‘나를 생각해 주오’라고 나오는데, 그 까닭이 비단 심상치 않다.한 사람을 사랑했네 3/이정하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나는 그를 잊었는데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사(詞) 라는 명칭은 남송(南宋) 때에 비로소 사용되었고, 당(唐)·오대(五代)와
한여름엔 갈잎이 드리우는 그늘로 넉넉한 즐거움(樂)을 주는 나무(木)라서, 늦가을까지 먹을 것 못 찾는 가난한 이웃에게 구하면(求)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나무(木)라서, 심지어는 봄부터 가을까지. 나뭇가지에 공짜로 집을 짓고 사는 누에가 날개(羽)를 다는 변신의 공간인 나무(木)상수리나무/안현미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사는 게 바빠 지척에 두고도 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 상수리나무라는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 갔지 고독인지 낙엽인지 죽음인지 삶인지 오래 묵은 냄새가 푸근했지 스스로를
그림, (1944년 作)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이 해방 전에 그린 것이다. 그림 속 마당에 키 큰 남자는 수화 김환기 화가이고, 의자에 앉은 이는 아내 김향안이다. 처마와 감나무 사이, 조붓한 마당에 괴석가 등이 보이는 일본식 집은 오늘날 ‘환기미술관’이 되어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꼭대기에 둥지를 여전히 트고 있다. 부부/이재무안방 침실에서 네 명의 남녀가 잔다등 돌려 벽 보고 자는 부부모텔에서 만난 사내 떠올려 몰래 얼굴 붉히는 아내와개구리 피부처럼 매끄러운 계집 맨살짜릿짜릿 감촉 삼삼해
“숲”은 거시적으론 사회를 은유하고, 미시적으론 이웃을 내포한다. 또한 인간의 관계, 예컨대 부부·친구·연인 등으로 세가 확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인은 “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뛰어난 안목이자 고수의 절창이다. 간격/안도현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나무와 나무가 모여어깨와 어깨를 대고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나무와 나무 사이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생각하지 못했다벌어
그림이 선뜻 연상되는 시「먼지가 보이는 아침」은 김소연(金素延. 1967~ )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보인다. 1연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까지를 읽자면 먼저,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가 그린 (1900년 作)가 두둥실 어른거린다. 연상된다. 먼지가 보이는 아침/김소연조용히 조용을 다한다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나는
김춘수 시의 화자는 한 마리 작은 ‘울새’가 되어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그렇기에 이름 모를 “누가 죽어가나 보다.”와 같이 ‘그’의 주검을 외면하지 않는다. 응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가을 저녁의 시/김춘수누가 죽어 가나 보다.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반만 뜬 채이 저녁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정녕코 오늘
나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특히 모네와 르누와르의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 아끼는 편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해야 맞다. 어떤 신비로운 느낌 때문이 아니다. 나 같은 일반인도 척 보면 얼른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팔꽃/권대웅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단칸방이어도 신혼이면날마다 동방화촉(洞房華燭)인 것을그 환한 꽃방에서부지런히문 열어주고 배웅하며 드나들더니어느새 문간방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갓 낳은 아이야물딱지게 맺힌 까만 눈동자똘망똘망 생겼어라여름이 끝나갈 무렵돈 모아 이사 나가고 싶었던 골목집어머니 아버지가 살던저 나팔꽃 방
“낯선 그대”는 네가 아니고 내가 스스로 만든 선입견이고 편견일 테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어쩌면 숲으로 산책을 떠나야 한다. 숲의 길 위에서 문득 마주쳐야 한다. 이제는 너를 “외롭게 지나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 사람(人)은 무시로 숲에 가서 제가끔(一) 서(立)는 처세를 깨우치고 배울 수 있다. 숲/정희성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숲을 보는
르누와르의 명화 복사본을 신혼집 거실 벽에 걸어두고,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조심조심 서로를 배려하고 위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은 미래에도 유지되고 보장될 터.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축하의 덕담이다.바닷가 마을/곽재구바닷가 마을로 들어가는 샛길낮달이 도라지 꽃밭을 바라보고 있네몸빼 바지 입고 경운기 모는젊은 아낙의 고향은 베트남 어디머릿수건 풀어 이마의 땀 훔치며아따 꽃 징하게 이쁘오! 라고 남녘말로 말하네고향에도 이 꽃이 피오? 물으니붉은 얼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네하늘에 하얀 달땅위에 꽃보라색과
우리는 늘 고민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아서다. 오히려 지레 겁먹는 편이다. 가족·친구·애인 등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긴 마찬가지다. 더러는 갈등도 하고 때로는 ‘너’와 싸우는 것이 낫다. 시인의 충고처럼, “너를 포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소나무에 대한 예배/황지우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제 자세를 흐
시가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와 그림은 독자에게 나무의 이름을 묻는 궁금한 일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강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오랫동안 “먼 산”을 고요히 바라보고 싶다.비와 혼자/김용택강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땅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툭툭 분질러 던지며 놀았다소낙비가 쏟아졌다커다란 가지 아래 서서비를 피했다양쪽 어깨가 젖어몸의 자세를 이리저리 자꾸 바꾸었다먼 산에도,비가 그칠 때까지비와 혼자였다내가 냉면을 좋아한다고 그 궁한 생활 속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종로 4가에 있는 우래옥
이진명의 시는 샤갈의 그림이 되기도 하지만,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 1917~2009)가 그린 (1993년 作)처럼 시체 안치실에 누운 노부부의 죽음을 우리가 퍼뜩 연상케 안내를 하기도 한다.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이진명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연명한다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세상을 상식에 갇혀 가로로만 읽지 말자. 그러면 내 인생은 온통 가시밭길(棘)이 된다. 하지만 상식을 파괴하는 발상으로 아래위로 보고자 한다면 가시밭길의 고행은 금세 대추나무(棗)로 변화되게 마련이다.대추 한 알/장석주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대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조(棗)는 가시 극(棘) 자를 아래위로 붙인 것입니다. 이는 이 나무에 가시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대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과 시는 만나면 만날수록 내 상처와 고통을 가만히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수련/문태준작은 독에 작은 수련을 심고 며칠을 보냈네얼음이 얼듯 수련은 누웠네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골똘히 들여다보니커다란 바퀴가 물 위를 굴러가네“정원은 숲이나 산과는 달리 인간의 통제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이다. (중략) 정원은 인간의 주거 공간에서 세심한 통제와 관리에 의해 식물과 곤충, 동물이 조화롭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자연의 질서가 아닌 인간의 질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오경아, 《안아주는 정원》, 142쪽
시의 화자처럼 나도 때마침 첫 키스를 여자와 처음 해본 나이. 그 시절에 처음 본 시구라서 그런지 지금도 시를 읽으면 마음만은 이십대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불쑥 흥(興)이 일어난다. “새빨간 감 바람소리”와 같이. 불현듯이 벌떡.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