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05)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과 시는 만나면 만날수록 내 상처와 고통을 가만히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수련/문태준

작은 독에 작은 수련을 심고 며칠을 보냈네

얼음이 얼듯 수련은 누웠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

골똘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바퀴가 물 위를 굴러가네

클로드 모네, ,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클로드 모네, ,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정원은 숲이나 산과는 달리 인간의 통제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이다. (중략) 정원은 인간의 주거 공간에서 세심한 통제와 관리에 의해 식물과 곤충, 동물이 조화롭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자연의 질서가 아닌 인간의 질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오경아, 《안아주는 정원》, 142쪽 참조)

수련, 꽃을 보고 마음까지 챙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명화를 탄생시킨 집의 정원을 파헤친 도서 화가들의 정원라 룰레트(La Roulette)’라는 낱말이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또 다른 화가 친구인 피에르 보나르가 가까운 베르노네(Vernonet)로 이사하였고 모네는 보나르와 함께 다른 후기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 세잔, 마티스를 집에 초대하곤 했다. 바퀴가 달린 수레라는 뜻의 라 룰레트(La Roulette)로 불렸던 보나르의 집은 그의 작품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지닌 집이었다. 모네는 새로운 움직임을 이끄는 이 화가들을 초대해 시골 신사처럼 트위드재킷을 입고 자신의 정원을 보여주는 일을 좋아했다. (같은 책, 216쪽 참조)

왜 그랬을까. 나는 바퀴가 달린 수레라는 글에서 모네의 <청색 수련>이 실은 눈으로 보고팠다. 이내 그림을 찾았다. 그림은 앞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러니 혹여 수련을 모르겠거든 흰 꽃을 살피시고 주목하시라. 파란 물색 위로 하얗게 떠서 십여 개의 바퀴가 유유히 굴러가는 수련(睡蓮)’이 화면 중앙에 몇 보일 테다. 녹색의 실버들은 만류하고 제지하려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수레바퀴가 되고 싶었나. 흰 꽃 수련은 미끄러지듯 떠내려간다. 흘러흘러 그림의 왼쪽 상단까지 차지한다.

유속이 빠르지 않고 물살이 잔잔한 수면(水面) 위로 수련은 잘 자란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정원에 커다란 연못을 파고 수련을 키웠고 189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에 수련을 그림에 옮긴 것만 우리가 세더라도 무려 250여 점에 달한다고 도슨트는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하면 모네라는 화가를 빼놓고서 어찌 더 말하랴.

지난 일요일이었다. 나는 모처럼 친구와 만났다. 수원 북문에서 남문까지 가볍게 산책을 즐겼다. 남문에서 종로로 들어서는 길목에 매향통닭간판이 보이고, 그 옆의 가게는 꽃집이었다. 나무와 꽃을 사랑하는 친구는 1미터가 됨직한 식물 몬스테라를 주인과 흥정하고, 나는 옆에서 작은 독에 더 작은 수련이 전시된 것에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인 문태준(1970~ )의 시가 내게로 왔다. 앞서 소개한 시가 그것이다. 시는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에 나온다. 시인은 가든디자이너 오경아가 말한 것처럼, (아파트 베란다)작은 독에 더 작은 수련을 심고 며칠을 보내는 정원을 꾸미고 통제하며 실랑이 하는 과정에 몰입하고 있다. 때는 늦가을, “얼음이 얼듯한 계절의 어느 날일 테다.

시인은 수련을 관찰하다 별안간 이렇듯 노래한다. 다음이 그 부분이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

평면의 힘이란 추리하건대 불자(佛子·시인의 직업은 불교방송국 피디)로서 전형적인 독백이지 싶어진다. 요컨대 와불(臥佛)을 경외하는 일종의 수련(修鍊)이자 수행(修行)일 터!

그것은 내 집 정원을 두고 수행자가 되어 지나치는 과정록(過庭錄)이자 일기(日記)로서 가까스로 독자 곁에 다가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수련인가.

집만 있다. 그것을 한자로 옮기면 ()’ 자에 해당한다. 대개는 ()’이 사라지고 없다. 다시 말해 마당이 없다. 꽃과 식물을 키우는 정원이 집에 없다는 얘기이다. 나도 그렇다. 하여 꽃집에 가서 작은 독에 더 작은 수련을 집에 모시고 싶은 충동이 부글부글 간절하다. 그러니까 필자는 가정(家庭)을 갈구하는 기도라도 이 가을엔 문득 해보고 싶은 거다.

시인의 아내였다가 사별로 헤어져서 김환기 화가의 부인이 된 김향안(金鄕岸, 1916~2004)을 꽃으로 비유하자면 수련같았다고 할까. 아무튼 그녀가 쓴 에세이집 월하(月下)의 마음에는 이런 글이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나오는 글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미술 감상은 나의 취미다. 나의 감상안(感賞眼)의 수준은 별개로 치고 나는 그저 바라보아서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이면 무조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해 왔고 또 그것은 대개 두고 보아 틀림이 없었다. (김향안, 《월하(月下)의 마음》, 363쪽 참조)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과 시는 만나면 만날수록 내 상처와 고통을 가만히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챙기고 시를 읽으면서 깊어가는 가을에 다같이 에다 미니 정원이라도 손수 가꾸려는 계획을 세움은 또 어떠신지? ylmfa97@naver.com

참고문헌

문태준,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 재키 베넷, 김다은 옮김 《화가들의 정원》, 샘터, 2020. 216쪽 참조.오경아, 《안아주는 정원》, 샘터, 2019. 142쪽 참조.김향안, 《월하(月下)의 마음》, 환기미술관, 2005. 363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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