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시 한 줄이 그림으로 스며든다. 달빛 환한 바닷가 해변 바위섬을 무대로 두 여인이 저녁 바람이 전하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스텝을 밟고 있다. 지금을 즐긴다. 춤춘다.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바닷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울려 퍼지고 있는지도 혹여 모를 일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윈슬로 호머, (여름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윈슬로 호머, (여름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꽃에 대한 사랑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수 스튜어트, 《정원의 쓸모》, 255쪽 참조)

겨울바다는 나(吾)를 거울로 받아준다

시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베스트셀러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미래, 2005년)에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서 겨울여행을 바닷가로 다녀왔다. 홍성에서 굴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보령에서 바다를 보며 유자차를 마셨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서야 목적지인 통영 거북선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 통영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까지 가뿐하게 올라갔다. 날씨는 마치 무슨 여름밤처럼 기온이 따뜻했다. 정상에서 사방이 탁 트인 바다 풍경을 보는데 잘 그려진 유명 산수화를 두 눈으로 마주한 것처럼 호강에 겨워 버거웠다.

다음날 부산 송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이 되어서 영덕 강구항 박달대게를 저녁으로 먹기 직전에 잠깐 울산 방어진에서 산책하면서 놀았다. 잘 조성된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서 등대 쪽으로 한참 걷다가 보니 바위섬 위로 벤치가 군데군데 보였다.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아무렇게나 찍는데, 이건 뭐 그냥 그림이 순간 되었다. 아, 바로 이런 분위기의 장소에서 문득 떠오르는 한 폭의 그림이 있었으니 그것이 미국 화가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36~1910)의 <여름밤>(1890년 作)이란 작품이 좋은 예다.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상처받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중략) 좋은 시는 어느 날 문득 자신과 세상을 보는 방식을 새롭게 한다.” (류시화,《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141~142쪽 참조)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시 한 줄이 그림으로 스며든다. 달빛 환한 바닷가 해변 바위섬을 무대로 두 여인이 저녁 바람이 전하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스텝을 밟고 있다. 지금을 즐긴다. 춤춘다.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바닷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울려 퍼지고 있는지도 혹여 모를 일이다.

그림엔 남자가 없다. 오직 여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림 속 두 여인은 서로 닮은 상처를 포근하게 안아주듯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춤을 즐기고 있다. 펄럭이는 여인의 치맛자락과 우뚝 솟은 바위 사이로 각자의 딸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 둘이 슬몃 보인다. 아마도 엄마의 상처를 잘 안다는 듯, 그저 망망한 바다만을 두 그림자는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그러면서 시 한 줄을 더 주문할 테다. 이렇듯 말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호머의 <여름밤>에서 나는 시 두 줄이 그렇게 만져졌다. 흔들렸다. 그런가 하면 인생에 있어서 솔직한 나(吾)의 욕망은 사랑·지식·생존·재물·권력의 다섯 가지(五)의 밥상(口)을 늘 가까이 하고자 분투하는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섯 가지. 즉, 그것들을 알프레드 디 수자는 춤·사랑·노래·일·생존의 욕망으로 한 줄 한 줄 시구로 숨기면서 담아낸 것은 아닐까.

연말이다. 이제 12월도 몇 날, 달력에서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2022년 새해가 될 테다. 신축년이 저물고 임인년이 불쑥 등장한다. 그러면 나는, 곧 우리나이로 59세가 된다. 저마다 생일이 모여서 그의 일생이 되듯이, 저마다 상처라는 역경이 쌓이고 쌓여서 ‘나’만의 경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의 진정한 모습일지도 잘 모르겠다.

시인 류시화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 속으로 들어가 그 시에 의해 감정이 순화되고 변화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시와 그림에 대한 사랑 또한 꽃에 대한 사랑처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에서 아름다움 관계가 형성된다. 비롯된다. 빛이 난다. 수십 번 읽고, 수백 번 보아도 질리지 않고 새롭게 보여진다. 이 점에서 시와 그림은 우리의 영혼을 상처받지 않게 다독인다. 위로한다. 치유한다.

조선 후기의 최고 독서광 이덕무의 《청언소품》에 나오는 인상적인 글이다.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憎人面孔 落在酒杯 증인면공 낙재주배

憐世心腸 藏之詩句 련세심장 장지시구

“다른 이를 미워하는 얼굴일랑 술잔에 떨어뜨려 비워내고 세상을 슬퍼하는 마음일랑 시구 속에 감춰야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2021년 나의 새로운 각오였다면 2022년엔 이런 다짐을 팔자로 여기에 적어본다. 새겨본다.

分福下比 志行上方 분복하비 지행상방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고, 생각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모방하라”는 뜻이다. 조선 선비, 오리 이원익 대감의 좌우명으로 유명한 팔자(八字)이기도 하다. 이 팔자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래된미래, 2005. 수 스튜어트 스미스, 고정아 옮김 《정원의 쓸모》, 윌북, 2021. 255쪽 참조. 박나경, 《그리워하기 좋은 거리》, 소네트, 2017. 56~57쪽 참조. 나카노 교코, 최지영 옮김 《욕망의 명화》, 북라이프, 2020,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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