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19)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다던 꿈 많던 소녀는 시집을 가서 엄마가 되면 으레 이렇게 말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온다고. 그런가 하면 50-60의 나이, 중년이 되어 늙어가면서는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다고. 이렇듯 여자들, 갱년기 특징을 다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 남자들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어쩌면 절로 깨우치게 되는 것일지도.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만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앙리 루소, (카니발의 저녁),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필라델피아미술관.
앙리 루소, (카니발의 저녁),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필라델피아미술관.

좋은 시는 말과 말 없음, 언어와 침묵 사이에 자리한다. 이 두 영역 사이의 중간세계, 그것이 시의 본래 자리다. 적어도 이때의 시는 세계의 전체에 한 발을 담고 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림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문광훈, 예술과 나날의 마음, 305쪽 참조)

제비꽃과 소나무, “, 쿵쿵.”

시적 여운이 참 달콤하다. 이 좋은 시를 몇 번이고 되풀이로 읽자면, “언어와 침묵 사이로 명화 한 점이 그려진다. 내 가슴이 쿵, 쿵쿵 나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깊고 푸른 겨울밤, 신비한 오두막과 나무 우거진 숲으로 달려가서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겼던 그 시절, 과거의 나날로 문득 돌아가고 싶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가 그린 숲속의 오두막집. 거기서 레코드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결혼식에 가면 항상 나오는 곡,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되어 귀에 익숙하다. 그리하여 축제를 위한, 카니발 복장에도 불구하고 혼자 기다리다 이내 춤추도록 부추긴다.

어느 날 산책하다 내가 앞에서 춤추면 그는 뒤에서 좋아하며 깔깔 웃었다. 그런 날이 내게도 있었다. 그 땐, 세상을 다 가진, 남부럽지 않은 사랑의 승자가 된 기분을 최고조로 올리며 한없이 만끽했었을 테다. 희망이란 게 있었다. 사랑을 했으니까.

의 소식이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조동진의 제비꽃노랫말 중엔 여자의 일생이 드러난다. 다음이 그것이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면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다던 꿈 많던 소녀는 시집을 가서 엄마가 되면 으레 이렇게 말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온다고. 그런가 하면 50-60의 나이, 중년이 되어 늙어가면서는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다고. 이렇듯 여자들, 갱년기 특징을 다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 남자들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어쩌면 절로 깨우치게 되는 것일지도.

올해도 친구로부터 김장김치를 받았다. 친구는 20대 군대 시절, 처음 가본 디스코장에서 우연히 만난 지금의 아내, 첫사랑 여인과 결혼한 아주 행복한 케이스다.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아주 잘 살고 있다. 답례로 앙리 루소의 명화 한 점(복사본)을 언젠가는 나는, 친구에게 꼭 보내고자 한다.

충북대 독문학과 교수 문광훈(1964~ )미학 수업에 나오는 한 대목을 여기에 옮긴다. 시와 그림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친구에게 내가 해주고픈 말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며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느낀다.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한 것이 글로 써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지금껏 눈여겨보지 못한 것이 화면 위에 그려져 있음을 보게 되고, 무덤덤한 가슴이 어떤 선율로 울렁댐을 경험하게 된다.” (문광훈, 미학수업, 350~351쪽 참조)

앙리 마르탱, (부부가 있는 풍경),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앙리 마르탱, (부부가 있는 풍경),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내 친구처럼, 잘 살고 있는 부부의 안방이나 거실 한쪽을 예쁘게 차지할 법한 그림이 하나 또 있다. 소개한다. 앙리 마르탱(Henri Martin, 1860~1943)<부부가 있는 풍경>(1930)이 바로 그것이다.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세라 작가의 상세한 설명은 이렇다.

앙리 마르탱은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꿨다. 어렵게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고향 톨루즈에 있는 예술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파리에서 공부를 이어간다. (중략) 독립적이고 침착한 성품을 지녔다고 알려진 그는 천천히 뚝심 있게 살아가고, 사랑했다. 1881년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아내 마리와 결혼한 이후 평생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으며 그녀를 모델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붓끝으로 톡톡 찍어놓은 듯한 표현법이 앙리 그림의 특징인데, 정성스럽게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붓을 놀려 각각의 점으로 하나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사랑과 꼭 닮아 있다. (중략) 앙리의 그림은 사랑을 믿는 이, 사랑을 꿈꾸는 이를 위한 그림이다. 그의 그림에는 일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시선이 넘쳐난다. (이세라,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291~293쪽 참조)

내 친구의 아내에게 몇 번 시집을 김장김치 답례로 선물한 적 있다. 처음엔 몰랐다. 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을. 한때는 제비꽃같이 조그마하고 여리여리한 그녀였을 테다. 친구 따라 처음 가본 디스코장에서 운명처럼 내 친구를 만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시부모 모시면서 지금까지 잘 사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카니발의 저녁이 아닐 수 없다.

내 친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동차는 오직 카니발만 타고 다닌다. 수십 년 변함이 없다. 내 친구는 그림 속 소나무(?)와 참 닮았기 때문이다. 마르탱의 그림 속 아내처럼 남편이 손을 잡으면 아직도 , 쿵쿵하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이런 말에 남편이여, 지금 어찌 덩실덩실 춤추지 않겠는가.

ylmfa97@naver.com

참고문헌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문학세계사, 2012.  문광훈, 예술과 나날의 마음, 한길사, 2020. 305쪽 참조문광훈, 미학 수업, 흐름출판, 2019. 350~351쪽 참조이세라,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나무의철학, 2020, 291~293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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