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14)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그림이 선뜻 연상되는 시먼지가 보이는 아침은 김소연(金素延. 1967~ )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보인다. 1조용히 조용을 다한다/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까지를 읽자면 먼저,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가 그린 <햇빛 속에서 춤추는 흙먼지. 스트란가데 30번지 화가의 집 실내>(1900)가 두둥실 어른거린다. 연상된다.

먼지가 보이는 아침/김소연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에두아르 마네, (아틀리에서의 점심),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뉴 피나코텍(뮌헨)
에두아르 마네, (아틀리에서의 점심),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뉴 피나코텍(뮌헨)

소설은 논설과 달라 감수성의 문을 열고 독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밑바닥을 흔들어야 한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310쪽 참조)

극락조, 먼지가 보이는 실내

소설만 그러랴. 그러긴 시와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이 선뜻 연상되는 시먼지가 보이는 아침은 김소연(金素延. 1967~ )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보인다. 1조용히 조용을 다한다/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까지를 읽자면 먼저,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가 그린 <햇빛 속에서 춤추는 흙먼지. 스트란가데 30번지 화가의 집 실내>(1900)가 두둥실 어른거린다. 연상된다.

빌헬름 하메르쇠이, (햇빛 속에서 춤추는 흙먼지. 스트란가데 30번지 화가의 집 실내),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코페하겐: 오르룹고르 미술관
빌헬름 하메르쇠이, (햇빛 속에서 춤추는 흙먼지. 스트란가데 30번지 화가의 집 실내),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코페하겐: 오르룹고르 미술관

직사각형의 닫힌 문과 몰딩 장식 사이에 난 창문에서 직사광선이 들이친다. 비스듬히 누운 빛은 부연 사다리꼴을 그리며 바닥에 그림자를 남긴다. 빛이 지나가는 자리에서만 보이는 먼지의 농밀한 춤사위. 분명 비워있는 공간인데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생경한 느낌. (최혜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26쪽 참조)

최혜진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 그 밑바닥을 툭 건들리는 무언가는 말하자면 실체가 먼지가 보이는 실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의 2연을 차지하는 행간에 독자로 불쑥 진입하자면, “길게 누워보고자 시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로 문득 는 흑백사진처럼 추억어린 과거로 가닿는다.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여기서 는 누군가. 시인일 테다. 시적 화자다. 화자는 무언가와 거리를 유지한다. ‘극락조와 말이다. 말하자면 극락조는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반려식물일 수도 있는데 후자로 그 실체가 느껴진다. 극락조는 반려식물로서 우리 집 실내를 숲으로 가꾸는 대표적인 식물 중 하나이다. 예컨대 아레카야자, 인도 고무나무, 떡갈나무, 몬스테라, 녹보수, 스킨답서스 등과 함께 집 안에서 미세먼지 방패막이로 키워진다. 또한 거실 구석구석 아름다운 조경을 연출하여 숲 모습을 형성한다. 방구석에도, 숲을 이루는 공기정화식물이 되기도 한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친구와 서해 바닷가 마을로 놀러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2차로 커피 타임을 가지려고 방문한 한 치킨카페에서 극적으로 실내에 꽃을 피운 극락조를 직접 보는 행운을 누린 바 있다. 그때 나는, 김소연의 시에서 만난 극락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하게 여기던 차였다. 그랬으니 내가 오죽 기뻐했으랴.

내가 아는 거라곤 좋은 시를 읽을 때는 숨 쉬는 것도 잊게 되고, 몸이 딱 뭐라고 짚을 수 없는 느낌에, 경외심과 경이와 가장 순수한 기쁨이 뒤범벅된 느낌에 감싸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교수, 평론가로 유명한 록산 게이의 말이다. 말을 가져다가 대신에 그림을 넣어도 무방할 테다. 처음으로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쇠이의 그림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란 게 꼭 그랬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부인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아틀리에서의 점심>(1868)이나, <독서>(1865년 작)에도 실내를 배경으로 반려식물이 화폭에 보인다.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이 한 줄의 시를 가져다가 마네의 그림을 감상하노라니, 점심을 하는 자리에 어째서 철모와 총이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중의 하나가 나 역시 속함을 부정할 수 없다.

중앙에 서 있는 소년은 마네의 아들 레옹이고 왼쪽에 주전자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하녀이며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쿠튀르의 화실에서 만난 친구 외귀스트 루슬랭이다. (김광우, 마네와 모네, 117쪽 참조)

마네의 그림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남았다면 하녀 뒤로 보이는 관엽식물의 정체가 도대체 무언인가다. 아무튼 마네의 그림들을 통해서 나는 반려식물의 역사가 100여 전에도 프랑스 상류층에서 실재함을 확인했다. 어쨌거나 시인 김소연의 먼지가 보이는 아침을 통해서 나는 빌헬름 하메르쇠이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을 다시 또 보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이 올 때까지. 여인초와 비슷한 극락조가 꽃을 피우면 극락조화로 불린다. 꽃말이 낭만적이다. ‘사랑을 위해 멋을 부리는 남자라고 하니 말이다. 마네가 아내 쉬잔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ylmfa97@naver.com

참고문헌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황현산, 사소한 부탁, 난다, 2018. 310쪽 참조.김광우, 마네와 모네, 미술문화, 2017. 56, 117~118쪽 참조.최혜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은행나무, 2019. 25~26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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