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12)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나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특히 모네와 르누와르의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 아끼는 편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해야 맞다. 어떤 신비로운 느낌 때문이 아니다. 나 같은 일반인도 척 보면 얼른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팔꽃/권대웅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

단칸방이어도 신혼이면

날마다 동방화촉(洞房華燭)인 것을

그 환한 꽃방에서

부지런히

문 열어주고 배웅하며 드나들더니

어느새 문간방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갓 낳은 아이

야물딱지게 맺힌 까만 눈동자

똘망똘망 생겼어라

여름이 끝나갈 무렵

돈 모아 이사 나가고 싶었던 골목집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저 나팔꽃 방 속

클로드 모네, (양산 쓴 여인),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클로드 모네, (양산 쓴 여인),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집에 있을 때 불을 켜지 않고 저녁을 맞는 편이다. 서둘러 어둠을 쫓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이다. 대신 소리를 내어 시를 읽는다. 저녁에는 묵독보다 낭독이 좋다. 내 입술 사이에서 나온 검은 글자들이 새처럼 어둑하게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나는 시와 저녁이 잘 어울리는 반려라고 느낀다. 모호함과 모호함, 낯설음과 낯설음, 휘발과 휘발의 만남.” (한정원, 시와 산책, 124쪽 참조)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산책

올 여름은 유난히 집을 자주 비웠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10월이 되었다. 그제야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겨우 낭독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산책하다 논두렁에 핀 보랏빛 작은 꽃을 하염없이 오랫동안 구경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검색해봤다. 결과는 나팔꽃이 맞았다. 그때 내 입술을 삐집고 나온 시가 권대웅(1962~ ) 시인의 나팔꽃이다. 시는 권대웅 시집나는 누가 살단 간 여름일까(문학동네, 2017)에 나온다.

2014년 여름. 8월이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모네의 <양산 쓴 여인>이란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림 속 여인은 모네의 부인이 아니었다. 후처의 딸이었다. 한참을 그 그림을 나,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그림 속 여인처럼 푸른 눈을 가진 플로렌스 헤들스턴 크레인(1888~1973)이 쓴 책 한국의 들꽃과 전설에서 본 저자의 흑백사진(1921)을 둘러보다 퍼뜩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그린 명화가 생각났던 것이다.

플로렌스 책에도 야생화 나팔꽃이 그림이 되어 깜짝 등장한다. 나팔꽃에 대한 책 설명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나팔꽃

인도가 원산지인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관상용으로 심지만 길가나 빈터에 야생하기도 한다. 줄기는 아래쪽을 향한 털들이 빽빽이 나며 길게 뻗어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왼쪽으로 3m 정도 감아 올라간다. 잎은 어긋나고 긴 잎자루를 가지며 둥근 심장 모양이고 잎몸의 끝이 3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의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톱니가 없으며 표면에 털이 있다. 나팔꽃은 약재로 많이 쓰인다. (같은 책, 191쪽 참조)

푸른 눈의 여인 플로렌스에 따르면 나팔꽃은 해마다 8, 한여름 아침이면 길가에서 흔히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그런 꽃에 해당한다. 문학평론가 김경수는 권대웅 시집 발문에서 이렇듯 설명한 바 있다. 설명이 자못 인상적이어서 그 일부를 가져다가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는 언어의 집으로 일컬어지는데, 시인들이 언어로 지어내는 집은 그 형태와 내부를 채운 가재도구들의 이채로움으로 이제껏 일반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들을 일깨우고 세계를 보는 시각을 새롭게 열어놓는다. 그런데 시인들이 그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신이 시인들에게 준, 일반인들이 모르는 어떤 신비로운 언어 때문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똑같이 사용하는 언어를 다채롭게 조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언어에 대한 시인들의 의식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 (김경수,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92쪽 참조)

나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특히 모네와 르누와르의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 아끼는 편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해야 맞다. 어떤 신비로운 느낌 때문이 아니다. 나 같은 일반인도 척 보면 얼른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권대웅 시인처럼 모네와 르누와르 같은 화가들도 언어를 대신하는, 빠르게 더러는 느릿느릿 거칠게 밀어붙인 투박스런 붓질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하등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의 실체, 즉 추상적인 것으로 그림이 다가오지 않는 특징을 보여준다.

각설하고. 다시 앞서 소개한 나팔꽃전문을 살피자. 시어가 하나도 신비하지 않다. 오히려 언어가 밋밋하고 심심해서 양념이 과하지 않다. 좀 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한편 묵직하다. 묵직함이 울림이 된다. 새벽 산사의 종소리처럼. 그러니까 악기소리 나팔처럼 가슴을 울린다. 가슴에는 추억이 소환되어 닿고 번진다. 코끝이 찡하도록 부추긴다. 시적 화자와 일체화로 공명을 돕는다.

어쨌든 시제가 나팔꽃이다. 언뜻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라고 시 제목을 고치거나 새로 붙여도 좋으려만. 시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문간방” “단칸방” “동방화촉” “꽃방이란 낱말이 가져다주는 다채로움은 추억을 소환하고 행복을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플로렌스 여사의 설명처럼 실은 나팔꽃(꽃방)젊은 부부갓 낳은 아이가 함께 가족을 구성하며 존재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팔꽃의 잎몸 끝이 꼭 셋인 것처럼.

모네가 그린 그림 속 여인도 꽃다운 나이에 한 멋진 남자를 만나서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었을 테다. 이윽고 야물딱지게 맺힌 까만 눈동자/똘망똘망 생긴 자식을 낳았을 테다. 아가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겠지. 그러면서 파라솔을 펼치며 여름이 끝나갈 무렵 산책하다 예쁜 들꽃도 여럿 만나겠지. 그러다가 나팔꽃을 보고 환하게 웃었을 테다.

내게도 저 나팔꽃 방 속이 언제, 어디서의 과거사인지, 지금은 다 지나간 추억을 소환하면서 어쩌면 가까스로 화양연화의 옛날을 오늘 저녁이 오면 그리워하게 될 테다. 일반인들 인생사란 게 뭐, 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제 짝을 아직 찾지 못한 청춘의 남자라면 누구나, 그림 속 여인이 내겐 애인이 되고 아내가 되길 한번쯤 꿈꾸고 간절히 바랄 테다.ylmfa97@naver.com

참고문헌권대웅,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2017.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17. 124쪽 참조.플로렌스 헤들스턴 크레인, 최양식 옮김 한국의 들꽃과 전설, 선인, 2008. 191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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