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그림 속 시점을 봄이 오는 첫 골목, 아직은 조금 쌀쌀한 삼월의 어느 날 쯤이라고 해두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잔을 응시하는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에게 반쯤 문을 연 꽃 핀 정원을 향해 비의 모습이 되어 저처럼/종종걸음으로/나도 누군가를/찾아 나서고/싶다……

/황인숙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싶다……

빈센초 이로리, (창가에서),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빈센초 이로리, (창가에서),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시를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섬세하게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문광훈, 미학 수업, 305쪽 참조)

(/)처럼 종종걸음으로 너에게로

앞에 명시는 황인숙(黃仁淑, 1958~ )의 첫 시집인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에 보인다. 처음 시를 만났던 그때는 내가 이십대 중반이었다. 그래서일까, 막연히 좋다!’라는 감정만 들었을 뿐이다. 한동안 그 시를 나,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은 문광훈 교수의 미학 수업에서 황인숙의 를 다시 만났다. 그래서인지 더 반가웠다. 시와 관련, 문광훈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음이 그것이다.

시를 이해하기란 간단치 않다. 시란, 한마디로 사물 삼투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대상 속에 감정을 투사시켜 마치 내가 그 대상인 것처럼느끼고 표현된다.” (같은 책, 221쪽 참조)

이제야 비가 내리는 날이 되면마치 내가 그 대상인 것처럼저처럼/종종걸음으로/나도 누군가를/찾아 나서고/은 간절한 감정이 문득 생겨난다. 다른 말로 간절한 감정을 설명하자면 끌림이 보다 의미에서 가깝다 여겨진다. 이를 철학자 강신주는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으로 풀어서 우리에게 쉽게 설명한 바 있다. 끌림, 그것은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것인데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끌림(propensio)이란 우연에 의해 기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스피노자, 에디카에서

우연에 의해라는 말에서 비가 내리거나,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떤 과거의 아련했던 그 날이 하염없이 어쩌면 추억의 똬리를 틀어 를 요동치게 할 테다. 자명하게도 기억의 한 자락을 5분이나 10분쯤은 소용돌이로 맴돌도록 할 테다. 다시 말해, ‘서성이고 싶다는 표현이 적절할 테다. 좌우지간 서성인다는 것에 대해 문광훈 교수는 이런 말로 대신한 바 있다. 다음이 그 핵심적인 내용이다.

서성인다는 것은 돌아본다는 것이고, 돌아봄 가운데 무뎌진 자아를 추스른다는 것이다. 하루의 어떤 순간 혹은 주말의 어느 한때에는 잠시 서성이고 싶다.” (문광훈, 미학 수업334쪽 참조)

이탈리아 화가 빈센초 이로리(Vincenzo Irolli, 1860~1949)<창가에서>라는 그림을 보자. 그림을 처음 국내에 책에 실어 소개한 우지현 작가는 커피향이 그윽하게 다가오는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그림이라고 이미 강조한 바 있다.

반쯤 열린 문밖 정원에 종종걸음으로 비가 서성이고 있다.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검은 원피스의 그림 속 여인은 하얀 식탁보와 화병 쪽으로 다소 고개를 숙인 채 상념에 젖어들고 있다. 잠시 휴식의 시간 속에 서성이고 싶은 것이리라. 비가 되어 종종걸음으로 애인이 찾아왔건만,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잔만 허공에 뒀구나.

이 그림의 배경으로 녹아드는 대중가요를 꼽자면 배따라기의 비와 찻잔 사이가 퍽 어울릴 것이다. 어쨌건 우지현 작가의 그림 설명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어느새 땅이 촉촉하게 젖어들고 마당에는 물결이 일렁인다. 화단에 핀 꽃들이 고개를 들어 흠뻑 비를 맞고 잎사귀들도 비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 모습이 하늘은 슬픔에 울고 나무와 꽃은 즐거움에 웃는 것 같다. 테이블에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잔을 응시하는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우아하다. (우지현, 나를 위로하는 그림, 48쪽 참조)

그림 속 시점을 봄이 오는 첫 골목, 아직은 조금 쌀쌀한 삼월의 어느 날 쯤이라고 해두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잔을 응시하는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에게 반쯤 문을 연 꽃 핀 정원을 향해 비의 모습이 되어 저처럼/종종걸음으로/나도 누군가를/찾아 나서고/싶다……

이와 같은 끌림은 남녀 사이에 연정으로 애써 국한할 필요는 없다. 여기 옛 이야기가 하나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가 오면 이성의 연인을 찾아갈 일이고, 눈이 어쩌다 내리면 동성의 친구를 방문할 일이다. 다시 말해, ‘끌림은 한자로 말하자면 ()’이 제 격이다.

친구 사이는 자고로 乘興而來, 興盡而返(승흥이래, 흥진이반)”의 팔자가 최고의 경지이지 싶다. 그저 보고 싶은 흥이 생기면 찾아가면 될 것이고 흥이 꺼지고 사라지면 되돌아온다는 그 내공이 차마 부럽다.

옛 중국인. ‘왕휘지와 대안도’. 이 두 사람의 고사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보고 싶은 친구는 흥이 날 때는 지금 당장 만나러 가야 한다. 설령 집 앞에 도착해서 흥이 꺼져 만나지 못한들 헛걸음한들 또 어떠하랴. 그런 벗이 지금 내 곁에 하나쯤 살아 있음에 깊이 감사할 줄 알면 기쁘지 아니한가. 그런 친구가 내 곁에도 있다는 것. 이는 내가 좀더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러니 어쩌랴. 벗이여! 비가 오거든 반쯤 문 열어놓고 차 한 잔 하고 계시게나.

혹여 이 겨울에 대설(大雪)이 푹푹 쌓이거든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라는 한시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섭섭함을 잊고 마음을 달래시게나.

雪色白於紙 설색백어지

擧鞭書姓字 거편서성자

莫敎風掃地 막교풍소지

好待主人至 호대주인지

눈빛이 종이보다도 더 하얗기에

말에 채찍 들어서 성과 자를 쓰노라

바람아 멈추어라 땅 쓸지 말거라

집주인 올 때까진 기다림이 좋겠노라

비가 오면 종종걸음으로, 눈이 내리면 이름을 적은 것으로 는 보고픈 에게 다녀간 것이다. 보고픈 마음이 문득 생겨서 달려갔지만 어쩌겠는가. 너희 집 앞에서 그만 흥을 잃은 것을……ylmfa97@naver.com

참고문헌@naver.com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문학과지성사, 1988.  문광훈, 미학 수업, 흐름출판, 2019. 357쪽 참조강신주, 강신주의 감정수업, 민음사, 2013. 401쪽 참조우지현, 나를 위로하는 그림, 책이있는풍경, 2015, 48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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