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분노·질투·적의·욕정·미움 등의 상처를 입은 감정들이 부글부글 용암처럼, 내가 살면서 이따금 불꽃처럼 활화산이 되어 흉중(胸中)에 소용돌이치고 무슨 습관처럼 ‘나’를 바람 부는 날로 이끄는 때가 있다. 그런 날이 꼭 온다.

그림자/천양희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마른가지 몇개 분질렀습니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건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오솔길에 듭니다

바람 부니 풀들이 파랗게 파랑을 일으킵니다

한해살이풀을 만날 때쯤이면

한 시절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나는 그만 풀이 죽어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가 좋다고

말하려다 그만두기로 합니다

오솔길은 천리로 올라오는

미움이란 말을 지웁니다

산책이 끝나기 전

그늘이 서늘한 목백일홍 앞에 머뭅니다

꽃그늘 아래서 적막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기억은 자주 그림자를 남깁니다

남긴다고 다 그림자이겠습니까

‘하늘 보며 나는 망연히 서 있었다’

어제 써놓은 글 한줄이

한 시절의 그림자인 것만 같습니다

카미유 피사로, (작은 나뭇가지를 든 소녀>)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카미유 피사로, (작은 나뭇가지를 든 소녀>)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미움이란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감소시켜서 우리를 고사목처럼 만들어 버리는 감정이다.” (강신주, 《감정수업》, 386쪽 참조)

배롱나무 꽃이 아름다운 까닭, ‘현애살수(懸崖撒手)’

분노·질투·적의·욕정·미움 등의 상처를 입은 감정들이 부글부글 용암처럼, 내가 살면서 이따금 불꽃처럼 활화산이 되어 흉중(胸中)에 소용돌이치고 무슨 습관처럼 ‘나’를 바람 부는 날로 이끄는 때가 있다. 그런 날이 꼭 온다. 그때는 닥치고 오솔길로 산책을 나서고 볼 일이다. 시인 천양희(千良姬, 1942~ )의 한 줄 시처럼.

앞서 소개한 「그림자」라는 시는 시집 《지독히 다행한》(창비, 2021년)에 보인다. 시의 화자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마른 가지 몇개 분질렀”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버릇이고 습관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꺾이지 않는 건 마음”이라는 구절에서 그림이 하나 불쑥 겹친다. <작은 나뭇가지를 든 소녀>라는 작품을 보자. 그림 속 한 소녀의 상기된 표정이 진지하다. 어딘가 흐트러진 모습과 전혀 귀엽지 않은 소녀의 얼굴에 드러나는 불꽃같은 감정이 비로소 살짝 보이면서 시적으로 마주친다.

이 작품은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대화>(1881년 作)와 같은 해에 그려진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소녀 모델이 아무래도 낯설지가 않아 보인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가 동일 인물(?)을 선택해 모델로 그린 것처럼 내겐 보이기 때문이다. <작은 나뭇가지를 든 소녀>에 대하여 미술평론가 가브리엘레 크레팔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전경을 차지하고 있는 시골 소녀는 흐트러지고 귀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에게 계산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인상을 주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 특히 드가의 그림에서 이미 여러 번 목격했던 것이다. 왼쪽 어깨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소녀의 얼굴 표정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여전히 동떨어진 생각이나 망상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하지은 옮김 《영원한 빛 움직이는 색채 인상주의》, 217쪽 참조)

나는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라는 논어(양화)의 말을 여적 기억하고 산다. “천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따라 서로 차이가 생기고 벌어진다”라는 내용이 속 깊은 뜻이다. 먼저 피사로의 그림을 보자. 그런 다음에 천양희의 시를 다시 듣자. 그림 속 시골 소녀와 시의 화자 사이에 약간 격차가 생겨난다. 그 차이는 아주 사소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시골 소녀는 나뭇가지를 놓거나 버리지 않았다. 되레 오른손에 꽉 쥐고 있다. 놓아야 하는데, 차마 분질러버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마음의 지진이 작은 가슴에 가득 치밀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림과 시는 사소한 차이를 관람자와 독자로 하여금 서로 야기한다.

소녀여, 언제까지 나뭇가지를 놓지 않고 꽉 쥐고만 있으려고 하는가? 소녀도 시의 화자처럼 어른이 되면 비로소 알게 될까. 여름철에 “한해살이풀을 만날 때쯤이면/한 시절이 간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는 분명히 살다 보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새 벌떡 일어나서 “오솔길은 천리로 올라오는/미움이란 말을 지”우는 “산책이 끝”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 심리적인 상태는 “그늘이 서늘한 목백일홍 앞에 머”뭇대는 시간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그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꽃그늘 아래서 적막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르는 아픔이, 상처투성이의 기억이 가시고 희미해지면서 미망(未忘)에 붙잡혔던 “기억은 자주 그림자를 남”기는 경지에 도달하고 익숙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한 시절의 그림자”로 나를 더욱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돕는 것이다. 나이만 드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간다는 그런 이야기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마른가지 몇개 분질렀습니다

이 두 줄의 시는 요컨대 궁극적으로 불교에서 말한 ‘현애살수(懸崖撒手)’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현애살수(懸崖撒手)’란 예컨대 나의 집착 즉, ‘매달린 벼랑(집착)에서 손을 놓아라’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런 미련도 없이, 손에서 놓아야 한다. 미움의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확 분질러버려야 한다.

아무튼 천양희 시에 등장하는 ‘목백일홍’은 다르게 ‘배롱나무’를 말함이다. 배롱나무가 피어내는 꽃은 어찌 보면 나무에겐 집착이고 미망이다. 마음의 지진이 되는 셈이다. 하여간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의 ‘배롱나무’ 설명이 인상적이기에 그대로 옮겨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배롱나무

대부분의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1~2주 남짓 피어 있다가 져버린다. 그러나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계속해서 핀다. 석 달 열흘, 즉 백 일에 걸친 기간 동안 꽃 하나하나가 계속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이어달리기로 계속 피는데, 꽃이 홍자색인 경우가 많아 백일홍(百日紅)이라고 한다. (중략) 처음에는 ‘백일홍나무’로 불렀다. 그러다 ‘백일홍나무’가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가 되었다. 옅은 적갈색의 나무껍질은 얇고 매끄러워 간지럼을 탈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이름은 간지럼나무(파양수·怕揚樹)다. 꽃이 보라색인 경우도 많으며 중국 이름은 자미(紫薇)로 쓴다. (박상진, 《우리 나무 이름 사전》, 187쪽 참조)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천양희,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하지은 옮김 《영원한 빛 움직이는 색채 인상주의》, 마로니에북스, 2009. 216~217쪽 참조. 박상진, 《우리 나무 이름 사전》, 눌와, 2019. 187쪽 참조. 강신주, 《강신주의 감정수업》, 민음사, 2013. 386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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