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15)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은 거시적으론 사회를 은유하고, 미시적으론 이웃을 내포한다. 또한 인간의 관계, 예컨대 부부·친구·연인 등으로 세가 확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인은 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뛰어난 안목이자 고수의 절창이다.

간격/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카미유 피사로, (대화),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도쿄국립서양미술관
카미유 피사로, (대화),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도쿄국립서양미술관

그대와 나눈 잠깐의 대화가 십 년간 홀로 책을 본 것보다 낫다(廳君一席話, 勝讀十年書)”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속담을 스테디셀러 노자강의(김영사, 2010)에서 처음 보았다. 책의 저자인 야오간밍(姚淦銘, 1948~ ) 교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노자 연구가 중 한 명으로 국내에도 유명하다. 책엔 이런 예리한 내용이 또 나온다. 다음이 그것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같은 책, 97쪽 참조)

갈매나무, 그 간격을 생각하다

중국 속담(청군일석화(廳君一席話), 승독십년서(勝讀十年書)이 고스란히 화가의 그림이 되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가 그린 <대화(La Conversation)>(1881)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그림을 보자. “나무와 나무가 모여있다. 간격이 일정한 나무울타리를 가운데 두고 시골풍의 두 여인이 마주쳤다. 한창 열띤 대화를 취하는 그런 모습이다. 먼저 고민을 말한 이는 화면 왼쪽을 차지한다. 머리 위로 오른쪽 연장자(언니)가 살 법한 예쁜 집이 어렴풋이 보인다. 왼쪽 여인은 길 위에 있다. 오른 발 신에 잔뜩 흙먼지가 묻었다. 흙먼지는 삶의 여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답답함, 고민거리 등을 의미한다.

도대체 두 여인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우리가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화가 난 표정의 왼쪽 여인이 지금 언니로 보이는 여인의 조언을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머잖아 밝은 표정이 되어 다시 터벅터벅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추측만이 단지 가능할 뿐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 서양 미술사와 복식사 전문가인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은 책에 이렇듯 설명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그는 인물에 집중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대화에 몰입한 두 농부 여인을 그렸다. (중략) 인물들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피사로는 파란색, 녹색, 갈색이 어우러진 인물들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부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에 몰입해 사적인 친밀함을 나누고 있고, 관객들은 초대받지 않은 이 순간을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본다.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인상주의, 36쪽 참조)

그렇다.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면, 관람자인 우리에게 그림 속 두 사람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나무울타리 두 여인의 손을 보라. 각자의 한 손이 나무울타리 위에 살포시 걸쳐 있다 간격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 점을 강조해 붓놀림으로 환기시키고 있음이다. 그것에 시인 안도현((安度眩, 1961~ )의 관찰도 대동소이 합류한 셈이다. 시인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쉼표(,)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다음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다. 쉼표가 찍힌 3행의 시를 다시 보자.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은 거시적으론 사회를 은유하고, 미시적으론 이웃을 내포한다. 또한 인간의 관계, 예컨대 부부·친구·연인 등으로 세가 확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인은 나무와 나무 사이/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산불이 휩쓸고 지나간/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뛰어난 안목이자 고수의 절창이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권혁웅 교수는 발문에서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시인이 나무에서 찾아낸 사랑의 아이콘은 서로 가지를 이어붙인 연리지(連理枝)가 아니다. 나무들은 벌어질 대로 최대로 벌어진,/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간격을 서로 수락했다. 이 간격이 사랑의 거리다. 나무들은 이 간격만큼 사랑한다. 서로 멀어질수록 나무의 사랑은 커질 것이다. “산불과 같은 참화를 입을 때, 나무들은 불을 옮기지 않으려고 몸 대신 마음을 태웠을 것이다. “몰랐다에서 알았다로 옮겨가는 서법은 물론 수사적인 것이지만, 이 이행 덕분에 숲은 제 안에 품은 간격을 한껏 넓힐 수 있었다. (권혁웅,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109쪽 참조)

가족과 부부, 친구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서로가 갈등과 오해로 상처로 얼룩진 무늬로 고통을 겪는 까닭에 근저에는 지켜야 할 선()을 함부로 넘은 탓에서 출발한다. ‘와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간격은 단순히 물리적인 넓이에만 있진 않다. 시간이 무르익는 깊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 안도현은 선배 시인 백석을 통해 자기 시세계를 더욱더 단단하고 웅숭깊게 만들 수 있었다고 자주 고백한 바 있다. 이게 바로 청군일석화, 승독십년서라고 하는 거다. 안도현의 명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의 주인공 갈매나무를 백석은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표현한 바 있다.

그 드물다는 갈매나무와 대화를 통해서 시적 화자는 굳고() ()하게 자존감을 지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와의 간격을 좁히고 허물고자 애쓰는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요,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럴 필요 없다. 차라리 좀 더 기다리거나, 밖으로 길을 떠나자. 그러는 와중에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풀리지 않았던 고민거리, 즉 대화의 물꼬를 활짝 열어줄 테다. 열쇠를 그냥 준다. 자물쇠로 닫힌 내 마음이 어느 순간 치유될 테다. 가을과 겨울 사이, 갈매나무가 있다는 산으로 이젠 나도 떠나고 싶다ylmfa97@naver.com

참고문헌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4. 야오간밍, 손성하 옮김 노자강의, 김영사, 2010. 25쪽 참조백석, 백시나 엮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매직하우스, 2019, 26~28쪽 참조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서희정 옮김 인상주의, 미술문화, 2021. 36~37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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