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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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분리는 한국이나 일본의 대중국 정책의 전략적 핵심이다. 중국경제가 업종에 따라서는, 또는 종합적인 비중에서 한국 일본과 대등하거나 우월한 부문이 적지 않을 정도로 급성장함에 따라 한일의 어정쩡한 정경분리도 힘을 읽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첨단 분야에 대한 미국의 중국 견제다. 특히 지금 미국이 총 5백 20억 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 법(Chips Act) 성립으로 더욱 힘을 받게 된 이른바 ‘칩4 동맹’은 사실상 정경분리 정책의 종결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을 택하거나 미국 편에 서라는 양자택일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직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눈치를 보고 있다.

미국이 국운을 걸다시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칩4동맹’은 반도체 산업이 지금 중대 고비를 맞고 있음을 발해준다. 첫째 기술적으로 반도체는 더 이상 획기적인 것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완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지금까지 미국의 마이크로폰이 적층기술에서 한발 앞서 있었으나 SK하이닉스가 이번에 238단을 발표, 미국 마이크론의 232단을 1주일 만에 앞지른 것이다. D램의 경우 역시 마이크론이 한발 앞서 있었으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다 같이 1anm급 개발에 성공,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만의 TSMC에 상당히 뒤진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삼성전자는 세계최초로 3나노 GAA 양산에 들어감과 동시에 2025년부터는 2nm를 양산할 계획이다. 이처럼 시장 점유율은 뒤지지만 시스템 반도체까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한국 업체의 기술개발이 아직은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박진 외교부 장관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일 공동 연구개발에 삼성은 빠져

대만TSMC 위상,그만큼 높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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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시스템 통합제품으로 맞서야

지원 정책 대폭강화,관민 공동보조를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반도체 법이라는 당근을 앞세워 ‘칩4 동맹’을 압박하자 일본이 잽싸게 치고 나오고 있다. 미국과 미래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미 소니 등을 앞세워 대만의 TSMC 공장을 규슈 지방에 유치한 데 이어 도쿄 근교의 쓰쿠바 대학에 기술연구소 설립도 탄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IBM, 인텔까지 유치하려는 것이 일본의 계획이다. 미국 역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국 역시 일본처럼 반도체 소부장 (소내 부품 장비) 부문의 강자인 동시에 설계 부문도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그러나 아무리 설계와 소부장 부문에서 앞서 있더라도 수요자가 원하는 것은 최종 제품이며 현시점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를 좇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미 일이 노리는 것은 차세대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갖추는 것이며 그 첫걸음이 ‘칩4 동맹’으로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 미 일의 공동작전에 대만의 TSMC가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말은 ‘칩4 동맹’이지만 한국의 삼성은 미일 공동개발에 제외되었다는 뜻이다. 삼성은 TSMC와는 달리 D램 낸드플래시와 함께 시스템 파운드리까지 생산하는 종합제조업체라는 강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시스템 기능과 D램이나 낸드플래시 기능을 합친 복합형 차세대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세계서 유일한 기업이다.

반도체는 고성장 업종인 동시에 주기적으로 내리막 오르막이 숨 가쁘게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또 세계 경기의 앞날을 예시하는 기능도 있다. 이는 신제품과 생활양식 변동에 그만큼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D램과 낸드플래시는 공급과잉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으나 아날로그와 피워 반도체, 자동차용, 의료기기, 데이터 부문, 선진 로직 부문 등은 여전히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칩4 동맹’ 가입 여부가 아니라 이 동맹이 유발할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당장은 반도체 수출의 60% 비중을 가진 중국 시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기술확보, 새로운 시장 개척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 역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gt2120@daum.net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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