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잡은 르망. 차령이 최소 26년, 최대 37년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최근 잡은 르망. 차령이 최소 26년, 최대 37년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스페셜경제=정수남 기자] 대우자동차 르망이 있다. 아니 있었다.

현재 50대 이상이 20대일 때 생애 첫차(엔트리카)로 꿈꾼 차량이다. 차명에서 알 수 있듯이 르망은 튼튼한 차다. 자동차 내구성을 다투는 르망 24시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프랑스 도시 르망을 차명으로 사용한 이유다.

르망이 인기를 끈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차량의 내구성이 차량 구매의 우선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 포드와 이탈리아 페라리가 르망24에서 참가하면서 차량 내구성으로 경쟁한 이유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2019년 자신의 작품 ‘포드 대 페라리’에 이 같은 경쟁을 잘 그렸다.

1986년에 나온 소형 세단 르망은 현재 엔트리카로 인기인 현대자동차 아반떼를 앞섰다. 현대차가 1990년 엘란트라에 이어 1995년 후속 아반떼를 선보이 전에, 르망은 1997년 단종까지 20대의 차심을 휘어잡았다.

(오른쪽부터)대우 프린스는 현대차 쏘나타와 국내 중형자 시장을 양분했다. [사진=정수남 기자]
(오른쪽부터)대우 프린스는 현대차 쏘나타와 국내 중형자 시장을 양분했다. [사진=정수남 기자]

르망뿐만이 아니다.

대우자동차의 중형 세단 프린스(1983년~1999년) 역시 동급의 현대차 쏘나타를 압도했다.

쏘나타가 1985년 스텔라의 최고 트림으로 출시된 이후, 1988년 쏘나타 차명을 달고 나오기 전까지 프린스는 중년 남성의 꿈으로 자리했다. 가족 차량으로 말이다.

고급 세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그랜저가 1986년 출시 되기 전에 이미 국내에서는 대우자동차의 로얄 프린스(1983년~1993년), 로얄 살롱(1980년~1991년), 로얄 살롱 슈퍼(1986년~1987년), 슈퍼 살롱(1987년~1991년), 임페리얼(1989년~1993년) 등의 중형 세단이 고급차 시장을 주도했다.

티코의 후속인 2011년 형 마티즈가 탱크와 나란히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티코의 후속인 2011년 형 마티즈가 탱크와 나란히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국내 경차 시장도 대우자동차가 개척했다.

1991년 티코를 선보이고, 국내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게 대우자동차다. 티코는 마티즈(한국GM, 2000년~2011년), 스파크(GM 한국사업장, 2011년~2023년) 등으로 이어졌다.

가전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대우는 탱크주의를 앞세워 고장 없이 오래 쓰는 가전으로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1967년~2000년)이 1997년 외환위기(IMF)가 발발할 당시 재계 2위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대우그룹은 IMF 이후 3조원에 달하는 채무와 분식 회계(회계 조작) 등로 2006년 공중분해 했다. 정사(正史)다.

대우자동차가 1991년 티코를 선보이면서 국내 경차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 잡은 티코. [사진=정수남 기자]
대우자동차가 1991년 티코를 선보이면서 국내 경차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 잡은 티코. [사진=정수남 기자]

반면, 야사(野史)는 다르다. 대우그룹이 김대중 전 정권에 밉보이면서 해체됐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던 고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IMF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쓴소리를 자주 해서다.

역시 국내 굴지의 기업인 모 그룹의 회장이 1990년대 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역시 대기업 총수가 2000년대 중반 권력 실세에 뇌물 아닌 뇌물은 준 배경도 대우그룹과 같은 이유다.

재계 2위 기업도 무너뜨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권에 찍힐 경우 국내에서는 기업을 영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실제 전라도 기업 율산그룹(1975년~1979년)도 당시 군부의 눈 밖에 나면서 해체했다. 율산그룹은 당시 신생기업으로는 삼성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다.

권력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율산과 대우는 지속할 것이다.

대우전자 가전은 탱크주의를 앞세워 튼튼하다. 지금도 사후서비스 부품을 전북 정읍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대우전자 가전은 탱크주의를 앞세워 튼튼하다. 지금도 사후서비스 부품을 전북 정읍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1987년 6.10 대회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당시 학생운동을 주동한 혐의로 쫓기던 운동권 출신들이 금배지를 달고, 청와대 등에도 대거 진출한 점을 보면 말이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아직도 멀었다. 여전히 경제를 정권이 쥐락펴락하고 있어서다.

자칭타칭 진보 정권이라는 고 노무현 전 정권과 문재인 전 정권을 보자. 이들 두 정권은 국내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한다면서 관련 규제를 남발했다. 이중 고 노무현 전 정권은 5년 임기 동안 30차례에 육박하는 규제를 냈다.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가 진즉 이뤄졌다면, 지금도 르망이 세계를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대우그룹의 기업이미지. 도전과 열정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알파벳 D로 형상화했으며, 3개의 상승 줄은 각각 기술, 인재, 미래를 의미한다. [사진=정수남 기자]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가 진즉 이뤄졌다면, 지금도 르망이 세계를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대우그룹의 기업이미지. 도전과 열정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알파벳 D로 형상화했으며, 3개의 상승 줄은 각각 기술, 인재, 미래를 의미한다. [사진=정수남 기자]

결과는?

고 노무현 전 정권은 ‘버블 7’이라는 신조어만을, 문재인 전 정권은 일부 지역의 경우 4배에 육박하는 주택가격 상승만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자본주의는 시장 논리대로 움직여야 한다. 경제를 시장 돌아가는 대로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시장 과열이나, 오작동 시에만 살짝 훈수를 두면 된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전 정권의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다. 하는 김에 기업이 국내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재량권을 더 확대해야 한다.

진즉 우리나라가 경제민주화를 이뤘다면 김우중 전 회장의 말처럼 ‘할 일이 많은 넓은 세계*’’를 2030 세대가 지금도 르망을 타고 누비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본다.

* 고 김우중 전 회장이 1989년 펴낸 자전적 수필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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