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최종선고…3년10개월여만에 형량 결정
대법원, ‘묵시적 청탁’ 판단…뇌물액 86억으로 현행법상 실형 불가피
관건은 삼성준법위원회 실효성…작량경감 시 집행유예 유지 가능
재계·삼성 “경영만이라도 하게 해달라…한번 더 기회를” 선처 탄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결삼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결삼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18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지 3년10개월여만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별세한 이후 이 부회장이 명실공히 총수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을 경우, 삼성의 경영시계는 안갯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유지한다면 뉴삼성을 위한 투자와 전략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삼성 안팎의 관심이 서초동으로 쏠리고 있다. 

법원 판단 엎치락뒤치락

이날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2시 5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를 진행한다. 대법원은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해 유죄로 판판한 터라 재계는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재판의 시발점은 국정개입 의혹이었다. 2016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끌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T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문제로 특검의 조사를 받은 이 부회장은 이듬해 2월 삼성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16억2800만원), 정유라 승마지원(77억9735만원, 약속 금액 213억원) 등 433억2800만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뇌물공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지원을 위해 회사 자금을 불법적으로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승마 지원을 위해 해외 계좌에 불법 송금한 혐의(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뇌물을 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필 계약서 등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범죄수익은닉 규제·처벌법 위반), 국회 청문회에서 허위로 증언한 혐의(위증)도 받고 있다. 

1심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지원 72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 89억원을 뇌물로 보고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정씨에 대힌 승마지원 중 36억여원만 뇌물로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로 감형했다. 이에 1년여간 영어의 몸이었던 이 부회장은 경영에 복귀했다. 
 
대법원 “묵시적 청탁…뇌물액 86억” 판단

하지만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2019년 8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2심이 무죄로 본 34억원어치의 말 3마리,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을 다시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총 86억원으로 늘어나며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환송됐다. 

일단 대법원은 이 부회장은 86억원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동적 뇌물’이라는 삼성 측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으며 이 부회장의 뇌물이 어떤 목적이 있는지 ‘묵시적 청탁’이 이뤄졌다고 봤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 박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 선고에서도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가 ‘청탁’에 기반했다고 재확인했다. 

현행법상 실형 불가피…관건은 ‘정상 참작 여지’

대법원의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묵시적 청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파기환송심은 이 부회장에게 불리했다. 더욱이 두 개 이상의 혐의를 경합할 경우, 더 형량이 무거운 쪽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부회장은 1억원 이상 뇌물공여와 함께 이를 위해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중 더 무거운 50억 이상 업무상 횡령이 적용된다. 특경가법상 50억 이상 횡령이면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지기 때문에 실형 선고가 불가피해진다. 

이에 따라 특검은 징역 9년을 구형하며 엄중한 처벌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형량이 확정된 뒤에도 뇌물 수수자·공여자 모두에게 유죄가 확정된 재판 결과처럼 “합당한 판결이 선고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진보 시민사회단체도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총수의 관행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실형 선고를 압박하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감형을 위해 일시적으로 설립된 조직이며, 전문평가위원 3명의 평가가 긍정(김경수 변호사) 부정(홍순탁 회계사) 유보(강일원 전 헌법재판관)로 엇갈린 것만 봐도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이 부회장의 최종 형량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지’에 달렸다. 형법상 3년 이하의 징역형에 대해서만 집행유예가 가능하지만, 형법 제51조에 의거해 ▲피고인의 연령과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 동기 및 수단·결과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할 수 있다. 이때  판사가 재량에 따라 양형의 범위를 정하는 상한과 하한을 절반으로 감경할 수 있는 ‘작량경감’을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피할수도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침체돼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이 큰 점, 살아있는 권력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웠던 점 등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긍정 평가…감형 ‘청신호’?

특히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인정하는지에 따라 이 부회장의 운명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첫 공판기일에서 “재발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삼성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며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체질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라 4세 승계 포기와 무노조 경영 폐기, 준법 경영 강화를 선언했다. 노동계의 대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이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것은 물론, 시민사회 소통 전담자 지정, 노사관계 자문그룹 구성,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정규직 채용, 반도체 라인 백혈병 분쟁 합의,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복직, 노조활동 보장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과 같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요 계열사의 50억원 이상 내부거래는 준법감시위의 승인을 거친다. 

이에 준법감시위를 심리한 전문평가위원 3명 중 2명이 폭넓은 준법감시 및 통제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부회장도 지난해 12월 30일 결심공판에서 “최근 회의들을 비교하면 이전에 하지 않던 질문들이 늘어,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건 또 묻고 묻는다”고 밝혔다. 

준법감시위의 존립, 나아가 준법경영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를 확고하다. 결심공판에서도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고 연구개발에 몰두해 회사를 키우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준법 문화의 토양에서 체크하고 법률적 검토를 거듭해 의사결정을 해야 궁극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과거로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준법 넘어 최고 수준 투명성과 도덕성 갖춘 회사로 만들 것을 책임지고 추진하겠다. 분명히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를 반증하듯 이 부회장은 지난해 유럽 출장길에 오르기 직전 준법감시위원들과 면담했고, 올해 초에도 위원들과 만나 위원회 활동 보장 및 준법 경영 의지를 재확인했다. 

준법감시위도 활동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달 삼성전자 등 7개 핵심 계열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는 데 이어, 이 부회장과도 정기적으로 소통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4일 평택 3공장 건설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4일 평택 3공장 건설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재계 ‘의미있는 변화 중’ 선처 탄원

재계에서는 삼성이 의미 있는 변화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총수 공백이 빚을 악영향이 상당하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잇따라 이 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이 “최근 삼성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점은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라며 “온전한 한국형 혁신벤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삼성의 오너인 이 부회장의 확고한 의지와 신속한 결단이 필수적”이라고 기회를 줄 것을 호소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주요 경제단체 수장 중 처음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무게감을 고려할 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역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무게를 고려하면 당면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경제 생태계의 선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 부회장이 충분히 오너십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실형 여부에 따라 뉴삼성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실형이 선고된다면, 삼성은 또다시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으며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미 삼성은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2018년 12위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순위가 떨어지며 간신히 20위권에 턱걸이했다.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추락한 것이다. 이럴 때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다면, 시스템반도체와 AI(인공지능), 5G(5세대 이통통신), 차동차용 전자부품, 바이오 등 미래성장동력과 관련된 대규모 투자와 M&A(인수합병)도 멈출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경우, 뉴삼성을 위해 전략 추진에 속도가 붙으면서 공격적인 투자와 M&A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 “일상 경영이라도 하게...” 호소

삼성 내부에서는 사법리스크의 무게가 다소 줄어들길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검찰 소환조사만 10차례, 재판에 불려다닌 것만 80회가 넘는다. 해를 넘기는 재판도 부지기수였어서 일상적 경영도 마비됐었다”며 “SK하이닉스나 LG전자처럼 M&A를 통해 기업을 키우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기업 경영만 제대로 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좋지 않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유럽의 친환경 정책 등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진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기술 변화의 폭도 훨씬 커졌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부재한다면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성장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경영 전문가는 “삼성의 경우, 최고경영자 시스템을 도입해 정작시킨 상황이기 때문에 오너의 부재로 기업이 치명저인 타격을 입지 않을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장기 투자는 오너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대외적 활동 역시 일정 부분 제약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계 1위 기업으로서 준법경영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좀더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법조계 인사는 “역차별을 하자는 소리를 한 셈인데, 다시 실형을 주장하는 건 이중처벌이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며 “특검도 합리적 판단보다는 자신들의 입지를 우선한 판단을 내린 거다. 삼성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면밀하게 살펴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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