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소설가.
언론인, 소설가.

온라인 사이트마다 남녀간에 혐오스러운 단어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젠더 전쟁으로 뜨겁다. 젠더 전쟁의 주 무기는 물론 보다 무서운 신조 언어들이다.

‘개딸’, ‘한남충’. ‘느개비’, ‘6.9센티’, ’웅앵이‘, ’씹치남‘, ‘쿵쾅이’, ‘퐁퐁남’ 등 날마다 새로운 젠더 속어들이 창조된다.

‘퐁퐁남’은 연애경험 없이 직업에 몰두해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남성이 경험 많은 여성과 결혼했을 때 아내가 남편을 ‘퐁퐁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ATM처럼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뽑아쓰는 기계가 남편이라는 뜻이다.

한 조사(조선일보)에 따르면 대표적인 혐오 표현 50가지 중에 2014년부터 최근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한남충’(223만5000회), ‘김치녀’(215만6000회), ‘한녀’(201만8000회), ‘개저씨’(128만6000회)순서였다고 한다.

남녀가 서로를 혐오하는 단어나 그림, 몰카 등은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더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더욱 극성을 부렸다. 남녀의 젠더 갈등이 여야 정치 싸움에 소도구로 등장한 것이다.

남초 커뮤니티 펨코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면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자 이재명 후보측에서는 펨코와 경쟁관계에 있는 여시에 응원을 청했다. 이재명 후보가 낙선한 뒤에는 여시 등 여성 사이트와 이재명 게시판에 ‘개딸’을 자칭하며 지지 세력으로 등장했다. ‘개딸’이란 ‘개혁의 딸’이란 뜻이다. 처음 등장한 것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였다. 이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말 듣지 않고 어긋나는 짓만 하는 딸을 나무라면서 한 말이니 이재명의 ‘개딸’과는 거리가 있는듯하다. 원래 우리말에서 ‘개가 붙는 말은 좋은 뜻이 별로 없다. ‘개만도 못하다’, ‘개고생’, ’개떡‘ 같이 좋지 않은 뜻에서 시작되어 정 반대인 ’개예쁘다‘, ’개좋다‘등의 극단적인 칭찬의 단어로 변하기도 했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20대 남성인 ‘2대남’들이 이 대표를 ‘개준스기‘라는 애칭으로 부르자 대항해서 나온 ’2대녀‘가 ’개딸‘을 들고 나온 것 같다.

어쩌다가 남녀 젠더 싸움이 정치 싸움으로 번지고 결과는 남녀 편 가르기가 되었는지 걱정스럽다.

한국의 정치사는 좌우익 싸움으로 70여 년 간 얼룩져 왔는데 이제 절대로 가를 수 없는 남녀 편 가르기로 변하고 말았다.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대학생 조서진(20)씨는 여성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조덕춘’, ‘곽두팔’같은 별명을 쓰며 남성인 척 한다. 진짜 성별이 드러날 경우 남성 플레이어들에게서 쏟아지는 욕설과 성희롱을 피하기 위해서다. 조씨의 전적은 상위 1%안팎에 속한다. 그러나 노씨가 여성임을 감추지 않으면, 남성 플레이어들은 경기를 하기도 전에 “오빠들한테 얼마나 (몸을) 대줘서 여기까지 왔느냐‘, “여자면 빨래나 하라” 같은 조롱을 한다. 조씨는 “일단 여자니까 네가 잘못”이라는 말도 들어 보았다고 한다. 팀이 지면 무조건 “여자들 잘못”이라고 덮어씌운다.(조선일보)

10, 20대들이 즐기는 게임 세상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서 비속어와 여성비하 같은 신생어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젠더’ 개념은 페미니즘에 의해 대중적으로 통용되었다. 여성으로 부여받은 사회적 역할이 여성에게 본질적, 신체적인 특질과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후천적 성질인가를 논의하기 위해남성과 구분되는 성개념을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젠더란 원래 언어학에서 문법성(grammatical gender)을 가리키는 용어로 그 이외엔 다른 용법이 없는 사어(死語)였다. 젠더라는 말에 새로운 용법이 생긴 것은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간성을 연구하던 존 머니가 1955년에 성역할(gender role)이라는 말을 고안했을 때부터였다.’ (나무위키)

정치에서의 젠더 대결은 ‘개준스기’와 ‘개딸’의 대결에서 지방 선거를 치르면서 민주당 비상대위의 박지현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와의 대결로 번졌다가 민주당 내부의 분란으로 변질되기까지 했다.

인류의 절반인 35억 명 이상이 여성이고 그 숫자만큼이 남성인데, 지구를 남성 대 여성으로 편을 갈라서 어쩌자는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 예를 보기 어려운 요즘의 젠더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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