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인애 기자]운전 중 비교적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을 때 경찰이 아닌 보험사에 연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경미한 사고의 경우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나가 상황 파악 후 과실비율을 정하거나 운전자끼리 보험 처리 약속 후 연락처 교환을 하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고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은 중앙선 침범 같은 중대 12가지 과실 혹은 사망이나 치명적 부상이 발생한 사고가 아니면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된 운전자의 경우 형사 처벌을 면제해주고 있기 때문에 굳이 경찰에 신고할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선 이 같은 방식으로 교통사고 피해를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취지로 37년째 이어지고 있는 교특법을 폐지하고,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현행 교특법 때문에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이 심해지면서 교통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해당 움직임 가운데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교특법 폐지 및 대체입법 공청회’가 대표적이다. 이번 공청회는 주승용 국회 부의장이 주최하고 국회교통안전포럼이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해성 부패·경제범죄연구실장은 ‘교특법 폐지 및 대체입법안’을 발표했다.


발표된 대체입법안 따르면 ‘교통’의 정의는 차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행위, 활동, 기능 또는 과정이다. 이는 현행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나 주차장 등에서 발생한 사고는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를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법안은 교통사고 발생 시 형사 처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명 피해 발생 사고는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물적 피해만 있으면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서 명확히 차량만 손상된 경우만 제외하고,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내용도 담았다.


지금까지는 가벼운 부상 정도는 보험 처리로 끝내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이제 피해자나 가해자에 아무리 경미한 부상이 가해졌더라도 필수로 경찰에 연락해야한다는 의미다.


앞서 윤 실장은 교특법 관련 회의에서 수차례 “교특법으로 인해 안전 불감증과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며 “교통사고도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되 간략하고 신속한 처리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교특법의 형사정책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고려대 김일수 명예교수는 “교특법이 폐지되면 교통범죄 전과자 양산과 사법 업무의 획기적 증대, 자동차 내수시장 위축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가 쏟아지는 복합적인 위기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은 일시적 금단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교통체질과 교통안전의식의 근번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교특법에 안주함이 계속되는 한 교통질서의 안전과 교통문화 선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이며 현행 교특법 폐지에 긍정적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국회교통안전포럼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 수렴 후 다시 법안을 가다듬는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교특법 폐지 후 대체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변경 예정 법안에 따르면 가벼운 교통사고도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데다 형사 처벌(입건)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운전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김기용 박사는 “대체입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금까지 교특법에 따라서 운전자들이 보는 혜택이 실질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없애고 처벌만 강화한다고 하면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특법 폐지 후 대체입법 시행 시 추가로 필요한 교통경찰은 약 1만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또 일반 운전자들 사이에서 교특법 때문에 운전자들이 교통사고를 가볍게 여긴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는 등 벌써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당장 무리하게 교특법 폐지를 추진하기 보다는 과도기적으로 현재 12개인 교특법의 중과실 항목을 늘려 사각지대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대한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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