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에서 핵 군축협상으로…美 본토 위협 ICBM 폐기만?

지난해 6월 12일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장인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만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2월말에는 국내외 굵직한 뉴스들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국내 뉴스로는 오는 2월 27일 제1야당 당 대표 등 신임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고, 해외 이슈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경우 북한 비핵화 및 대북제재 완화 등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예의주시 해야 할 사안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핵 생산 시설 및 미사일 시설 등을 폐기하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제재 완화 등 통 큰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미·북 양국이 실질적인 비핵화 및 대북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핵 동결’ 수준 합의에 집중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핵 동결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전망해 봤다.


트럼프 “2월말 김정은과의 만남 고대”


태영호 “핵 군축 협상으로 제재 완화”


오는 2월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전망이다. 2차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는 베트남 하노이 또는 다낭, 호치민 등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주에 북한 최고위층(김영철)과 훌륭한 만남을 가졌다”면서 “오는 2월말 김정은과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8일 백악관에서 김영철과 90분여분간 면담을 했고, 김영철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의 면담 직후에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최선희가 마주 앉아 2차 정상회담 실무협의를 진행했고, 여기에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양국 간 절충점을 마련하는 중재자로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2월말께로 예정된 미북 2차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수위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 및 제재 완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특히 핵무기와 핵물질, 핵생산 시설 및 미사일 시설 등을 폐기하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제재면제에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 및 제재 완화 문제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 크게 협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단번에 협의를 도출해 내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생산 시설 폐쇄·검증 과정을 거치고 나면 미국은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또는 남북 교류사업 관련 일부 제재면제 등 상응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합의문 발표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2차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이 정도 내용이 담기기만 해도 상당히 진일보한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사진은 19일(현지시간)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담당국장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개됐다.

김정은 전략 꿰뚫어 본 태영호?


다만, 일각에서는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치를 더 굳건히 하려 할 것이란 지적이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김정은 신년사로 본 2019년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 간담회에서 “김정은 신년사가 나온 이후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올해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 핵 폐기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나오고 있는데, 북한 외교관으로 일했던 저는 북한이 이제 그런 합리적 사고나 결정을 내릴 리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신년사에서 대미 메시지는 핵보유국 위치를 더 굳히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 임하는 출발점은 결국 미국도 핵보유국이고, 북한도 핵보유국이니 서로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협상을 출발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신년사에 담겼다”고 했다.


이어 “올해 김정은의 대남, 대미 전략을 압축해보면 2019년 미북 핵 협상을 ‘핵 군축협상’으로 좁혀 전략적 위치를 굳히고 대북제재 완화를 끌어내려는 것”이라며 “핵무기를 그대로 두고 제재를 풀고 평화체제를 추진하면 그것이 곧 북한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 신년사에서)눈여겨본 부분은 평화협정체제를 위한 다자협상 문제를 끼어 넣은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하면 거절당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과 중국 정부를 이용해서 미국을 압박해 끌어내는 전술로 다가가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남북과계와 북한 비핵화 병행 추진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한미공조체제 유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평화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방적 양보는 북한 비핵화도, 평화도 이뤄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태 전 공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서도 지난 1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번 김정은의 중국방문을 통해 북중 밀착이 더욱 강화된 실정에서 향후 미북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빅딜’은 나오지 못하고 ‘미니딜’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질 것”이라며 “미니딜은 결국 ‘핵군축 방향’으로, 북한 ‘핵보유국 인정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별위원회 ‘김정은 신년사로 본 2019년 한반도 정세 분석과 전망’ 간담회에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北 비핵화 궁극적 목표는 미국인 안전”이라는 폼페이오


태 전 공사는 왜 ‘미니딜’ 즉,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채 핵 군비축소 방향으로 향후 미북 정상회담 및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될 것이라 전망했을까.


북한이 핵탄두는 그대로 두고 핵을 미국 본토까지 실어 나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폐기하는 핵군축 선에서 대북제재를 풀어나갈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주장인데, 실제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 폐기로 초점을 맞추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앞서 언급한 북한 김영철의 카운트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면서도 “북한 비핵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인들의 안전”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북핵 위협을 막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속내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핵무기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BCM 폐기를 북핵 협상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ICBM만 폐기하는 것은 핵탄두·핵물질은 그대로 두는 핵 동결에 지나지 않고, 미국만 북핵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남한과 일본에 대한 위협은 지속됨을 의미한다.


제1야당 “국민들 북핵 인질‥최악 시나리오”


주한미군 감축·한미동맹 약화…한국당, 방미


“미-북 회담, 핵동결 쪽으로 아젠다 세팅하고 있는 거 아닌가”


제1야당에선 핵동결로 해석될 수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 깊은 우려감을 내비쳤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인의 안전이 최종목표’라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로서는 걱정스러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당초 완전한 비핵화에서 ICBM만 제거하는 핵동결로 북핵 문제 해결의 기조를 조정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우려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핵동결 수준에서 북핵 문제를 미봉하게 되면 미국 국민은 안전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은 북핵의 인질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로 가고, 한미일은 벌어지고, 북한과 중국은 밀착하고, 우리는 누구를 기대야 되느냐”면서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이고 그 출발점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신고, 검증이다.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될 거라고 본다”고 촉구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 (미국이)끈임 없이 ICBM의 제거라는 말을 언급한 점에 비추어보면 미국이 이번 북미정상회담 통해 결국 우리가 우려하는 핵동결 쪽으로 아젠다 세팅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며 “정말 대한민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렇게 되면 결국 핵 있는 평화로 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점점 벌어지는 동맹관계?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당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의미하는 ‘CVID’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 폐기로 후퇴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동맹 약화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으로 지목된다.


우선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해선 한승주·공로명·윤영관·송민순 등 역대 외교장관들은 한미클럽이 발행하는 ‘한미저널’ 창간호 서면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비핵화 협상 카드로 이용할 것으로 관측했다.


워싱턴 포스트(WP)도 지난 20일(현지시간) “한국의 의원들과 전문가들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핵 협상을 하면서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철수하는 조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면서 “주한 미군 감축이 김정은에게는 간접적인 선물이 될 것이고, 이것이 북한과의 핵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라며 전문가들의 언급을 인용해 보도했다.


자유한국당은 21일자 논평에서 “(주한미군 감축은)한미동맹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뇌관이자, 한반도 안보의 총체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이견을 보이면서 동맹관계 약화도 지적되고 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조선일보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인연구원은 “한미 양국은 갈수록 북한의 위협성에 대한 평가에 이견을 보이며 북한의 핵미사일 및 재래식 위협에 대응하는 정책에서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며 “정책 이견이 너무 심해 더 이상 대중의 시야로부터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꼬집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북한은 비핵화와 남북 경제 협력, 한미 동맹 등 첨예한 이슈에 대한 한국·미국·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공략해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美 조야에 입장 전달키 위해 방미”


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핵동결 협상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와 주한미군 감축 및 한미동맹 약화론을 제기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미국 조야에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다음 달 10일께 방미단을 파견키로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2차 미북 정상회담 관련 대책회의에서 “이번 미북 대화가 그 목표를 또 그 목적을 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에 두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내용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미북 대화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논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입장을 명확히 했다”며 “지금 논의되고 있는 방위비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할 것을 한미 양국 정부에게 촉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문재인 정부가 선(先)신뢰구축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선(先) 비핵화에 주안점을 둬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 아닌 ‘핵 동결’ 지지하는 국민 얼마나 될지 의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기회에 우리는 반드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구축하고 평화를 우리 경제의 기회로 만들어내야 한다”며 “큰 방향과 목표에 대해 국민께서 한 마음이 되어 주길 바란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당파적 입장을 뛰어넘어 국가적 대의라는 관점에서 임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며 “국민께서 지지해 준다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현실로 만들어 낼 것이고, 평화가 경제가 되는 토대를 기필코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은 지지할 것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평화가 경제가 되는 토대를.


그러나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또 김정은 서울 답방에서 대한민국이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핵 동결 수준의 대화가 오고 간다면 이를 지지할 국민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가 전제 돼야 비로소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고 평화가 경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미 본토 타격의 위협만 없애주는 ICBM 페기 형태의 핵 동결로는 평화도, 경제도 논하기 어렵다.


만약 남·북·미가 북핵을 동결하는 수준에서 협상을 하고, 또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함에 따라 한미동맹 약화로 이어지는 수순이 전개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지는 따져볼 문제다.


오히려 북핵 인질로 잡힌 우리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을 제재 완화와 남북 경제협력이란 명분 아래 북한에 퍼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으면 한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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