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미국시장 활로의 희망으로 평가받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텔루라이드의 해외 생산 중단을 요구하는 안건을 정기대의원대회에 올리는 등 자신들의 고용안정 방안 요구를 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모양새다. 자동차업계의 경기악화 추세가 짙어지는 가운데 기아차는 최근 ‘텔루라이드 효과’로 미국시장의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노조는 사측을 이기기 위해 금지옥엽같은 자식마저 배팅하는 모양새가 된 것.


현재 자동차업계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전기차 비중 확대 등의 업계 추세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와 노동조합들의 고용안정 위기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이에 단체협약 협상에서 고용문제를 두고 첨예한 노사간 이견대립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차 노조가 지난 1일부터 돌입한 정기 대의원대회의 안건 68개 중에는 SUV 텔루라이드와 SP2 해외 생산 중단을 요구하는 안건이 담겼다.

해당 안건들은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생산 중인 텔루라이드 생산중단을 위한 투쟁배치 및 화성공장 생산 건’과 ‘2019년 기아차 유일의 신차, SP2의 인도공장 생산중단 요청 건’이다.

기아차 노조는 ‘국내 물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므로 일자리 지키기 차원에서 국내생산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앞뒤 재지 않는 지나친 요구를 제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美 시장 간신히 텔루라이드로 첫 축배들었더니…

당초 현대자동차와 기아차는 중국의 판매부진 속에 브렉시트 등 유럽시장의 경기불안 가능성 등으로 미국 수출의존도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시장에서 절대적인 인기도를 나타내는 SUV 시장을 간과해 미국 판매량이 저조한 것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현대차는 소형 SUV 코나 출시 이후 대형 SUV 펠리세이드를 미국시장에서 공개하고, 엔트리 SUV 베뉴 출시도 준비하고 있는 등 SUV 라인업 확장을 위해 공을 들였고, 기아차 역시 2017년 소형 SUV 니로에 이어 올해 2월 대형 SUV 텔루라이드를 미국에서 출시하면서 가까스로 반등의 기회를 잡은 상황이었다.

최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1분기 미국 자동차시장 SUV 부문에서 총 15만5082대를 판매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7만5971대, 7만9111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8%를 돌파했다. 현대·기아차의 1분기 전체 차량 판매량 가운데 SUV 판매 비중도 53.8%를 기록했다. 두 회사가 전체차량 대비 SUV 판매 비중을 50% 이상으로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조적으로 금년 1분기에 세단을 포함한 현대·기아차 전체 차량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각각 3.8%, 3.4%로 총 7.2%를 나타냈다.

텔루라이드는 기아차에게 경기악화 속 대미수출의 희망으로 떠오른 셈이다. 물론 텔루라이드 등과 관련한 해당 안건들이 대의원대회에서 원안대로 의결 될 지 여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이같은 상황 속에 노조는 사측에게 고용안정 요구를 관철할 수만 있다면 잘 키운 자식인 ‘텔루라이드’마저 내던질 수 있다는 과격한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처음부터 협의 된 ‘텔루라이드 북미전용 생산’

기아차 사측은 텔루라이드 건과 관련, 앞서 단체협약에 따라 전 노조 집행부에 텔루라이드를 북미 전용으로 개발·생산한다는 계획을 설명했기 때문에 노사간 위반사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텔루라이드는 북미 전략 차종으로 휘발유 모델만 개발한 상태다. 이에 화성공장의 모하비 생산 라인에서 혼류 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노사는 텔루라이드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조건으로 국내에서는 모하비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개발에 주력하자는 방향으로 협의한 바 있다.

소형 SUV SP2도 국내에서는 7월부터, 인도에서는 9월부터 병행 생산하기로 전 집행부 시절 노사 간 협의가 성사된 상황으로 인도 생산 중단 요구는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노조는 인도가 수입차 관세가 높아 국내 생산분을 인도로 수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국내 물량 확보라는 큰 그림을 위해 이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노조의 강수가 업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이유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 silvership@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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