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안철수, ‘정치권의 바이러스일까 백신일까’

김수영 기자 / 기사승인 : 2020-01-24 12: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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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간 여정’…해외서 그려온 정치 밑그림 실현할까
▲ 정계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2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월 영령을 참배한 뒤 민주의 문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1.20.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귀국한 가운데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 최근까지만 해도 안 전 대표의 3지대 합류를 기대하는 분위기였지만 20일 현재 양당에는 환영과 함께 경계·의심의 분위기가 서려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라는 거대 기득권 양당의 일방적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군소야당들은 제3지대라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중간지대에서 양당의 횡포를 바로잡을 3정당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바른미래당 손 대표를 중심으로 3지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나, 최근 최경환 대안신당 대표의 공개적 제안으로 총선을 앞둔 군소야당들의 행보는 바빠지는 모양새다.

범보수 통합을 추진 중인 혁신통합위원회(혁통위)는 ‘안 전 대표의 합류가 통합의 가장 큰 목표’라 천명했고, 지난해 손학규 대표는 ‘안 전 대표가 돌아오면 대표직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본인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안 전 대표는 실질적으로 야권 총선의 키맨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실용적 중도 정당’과 ‘총선 불출마’라는 입장만 명확히 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주 스페셜경제는 선거를 앞두고 분주해진 야권 중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그를 제외하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3지대를 언급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2016 ‘안철수 신드롬’ → 2020 ‘호남 어게인’
20대 국회, 16년 만의 3교섭단체 등장

2016년 20대 총선 정치권에 대파란을 일으켰던 안 전 대표의 국민의당은 민주당계-한국당계 양자 대결로 공고해진 정치 판도를 일순간에 뒤흔들었다.

당시 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각각 123석, 122석으로 전체 의석의 81%를 차지하며 기득권 양당 체제가 공고함을 거듭 증명했지만, 새파란 정치 신인을 간판으로 내세운 신당이 당당하게 38석을 차지한 점은 놀라운 변화였다. 국민의당은 이렇게 국회에 등장했다. 원내 세 번째 자체교섭단체가 구성된 것은 제15대 국회 이후 16년 만이었다.

사실 그동안 민주당·한국당계의 대립이 이어져왔음을 감안한다면 중도를 표방했던 ‘국민의당 신드롬’이 놀라운 일까지는 아니었다.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에 따르면 다수대표제 하에서는 중도성향의 투표자들에 의해 결과가 정해진다. 선호도가 다른 여러 정책들이 존재할 때 국민들은 극단에 따르지 않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성향에 투표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양당제가 공고할수록 더욱 잘 맞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이같은 당시의 결과는 기득권 양당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 그는 호남에 집중했나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 전 대표는 영남과 호남의 화합과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호남 기반의 정당을 세웠다. 그는 지난 19일 이런 입장을 재차 확인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영·호남 화합, 그리고 국민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호남에 기반한 국민의당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역사의 고비마다 물줄기를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당시 호남지역 28석 중 23석을 석권했고, 지역구 의석 중 서울 관악갑(김성식), 노원병(안철수)을 제외한 모든 의석이 호남에 집중돼 있었다.

그동안 안 전 대표는 대안신당 의원들 여럿과 은밀히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대안신당 또한 최 대표의 3지대 제안 이후 호남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물밑접촉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안 전 대표가 호남 기반의 다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에 힘을 보탠다.

앞서 이동섭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권한대행은 안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이 거의 확실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신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安복귀에도 호남 리스크 속 민주당 연전연승
하지만 4년여가 지난 현재 중도와 화합을 표방하며 선택했던 호남은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공산이 높아진 상태다. 새누리당(탈당파)과 합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당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해 호남 유권자들의 기대가 무너진 탓이다.

안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기대는 ‘밥그릇 싸움’이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 창출’이었다. 하지만 당시 바른미래당으로의 통합은 유권자들의 눈에 새 정치 보다는 의석확보 정도로만 여겨진 듯하다.

심지어 새누리당 탈당파 일부는 다시 한국당으로 복귀하고, 합당에 반대하며 떨어져 나간 민주평화당도 지난해 또 한 차례 분열한 데 이어 바른미래당에 잔류하던 새누리당 탈당파들은 결국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가는 등 말 그대로 사분오열의 과정을 지켜본 호남 유권자들에게 더 이상 안철수라는 이름은 설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적은 특히 대안신당을 중심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바른미래당을 만들 때 어느 한 켠에 국민의당을 세운 호남의 비전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있었느냐”며 “왜 안철수의 입에서는 호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적 가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언어가 나오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KBS라디오에서 안 전 대표에 대한 광주민심을 거론하며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과거 지지 기반이던 호남이 더 이상 기반이 아닌 리스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호남 리스크는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일부 호남 지역의 총선 (예비)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예비)후보자 및 정당 지지도는 과거 국민의당 출신 (예비)후보자들에 비해 큰 차이를 보였다(※다만 해당 여론조사 대부분은 안 전 대표 복귀 이전에 진행됨.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안 전 대표가 20일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광주 시민들을 향해 ‘사과’의 말을 전한 것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미처 제가 헤아리지 못했다. 서운해 하셨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다시 한 번 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포기할 수 없는 호남…3지대 구축도 ‘먹구름’
3지대론 재부상, 구심점 될까


지난 19일 복귀한 안 전 대표는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분열된 사회에서는 집단 지성도 공동체 정신도 발휘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진영 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실용적 중도 정당’이라는 게 ‘안철수 신당’인지, 바른미래당 쇄신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본인이 이끈 국민의당 대부분이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관계로 이번 총선 역시 ‘호남 대전(大戰)’을 치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병사’가 아닌 ‘참모’로 출전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에는 오랫동안 호남에서 출마하며 영향력을 다져온 정치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동철·박주선·박지원·이춘석·장병완·정동영·조배숙·주승용 의원이다. 현재 이들은 바른미래당·평화당·대안신당으로 갈라섰지만, 지난 12일 최경환 대안신당 대표가 ‘제3지대’로의 통합을 거론했고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이에 호응한 상태다.

군소야당의 3지대론은 안 전 대표가 말해오던 중도정치와도 맥락이 닿는다. 군소야당은 안 전 대표의 복귀가 3지대 구성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눈빛이지만 경계의 시선도 거두지 않고 있다. 무엇 하나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했는데, 모호성 뒤로 숨는 자신 없고 낡은 정치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이 실용이고, 무엇이 중도인가.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오히려 이 대목에서 입을 닫아버린다”


장정숙 대안신당 수석대변인의 평가다.


▲ 2018년 4월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이상돈(왼쪽부터), 장정숙, 박주현 의원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출당시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들은 바른미래당으로의 합당을 반대했지만 안 전 대표가 출당 조치 없이 당의 볼모로 잡고 있다며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8.04.04.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군소야당은 안 전 대표의 발언과 행보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선거일이 9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독자적 신당 창당을 통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다가 안 전 대표는 혁통위와 한국당으로부터 받은 러브콜에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정부여당의 독주 또한 저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남은 가능성은 호남에서의 3지대 구축뿐이다.

다만 안 전 대표가 다시 3지대 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과거와 같이 호남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20대 총선 당시 안 전 대표는 거대 양당의 극한 대결 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3정당의 필요성을 어필했지만, 당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 3정당을 무사히 안착시킬 수 있을지 현재로서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먼저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와 이미지, 시기상의 문제가 거론된다. 지난 총선 당시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의 파급력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에 기인한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이미 무료백신 보급 등 친숙한 이미지로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보돼 있던 안 전 대표가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임에도 혜성처럼 등장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안 전 대표가 대선, 서울시장 선거 등에서 패배를 경험하고, 호남을 기반으로 일어선 국민의당도 새누리당 탈당파인 바른정당과 통합하는 등 변곡점을 넘어서며 결국 ‘기성화’됐다는 인식이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 퍼져있다.

게다가 1년이 넘는 안 전 대표의 공백기간 동안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으로 태어난 바른미래당이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새로운보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으로 갈라지는 등 안 전 대표의 입지 또한 많이 좁아진 상태다.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복귀했다는 점 역시 우려사항이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쟁점법안을 모두 통과시킨 민주당은 인재영입과 더불어 총선공약 등을 하나 둘씩 발표하는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당 또한 새보수당과의 통합에 방점을 두면서도 인재를 영입하고 총선공약 등을 꾸준히 발표 중이다. 이러한 시점에 막 귀국한 안 전 대표가 3지대 통합과 함께 인재 영입, (기존과 다른)총선 공약 등을 시작하기에는 시기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촉박하다는 것이다.

개정 선거법 또한 안 전 대표에겐 변수가 될 수 있다. 당초 선거법은 거대 양당제 타파를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추진됐고, 이는 안 전 대표가 지향하는 중도 정치와도 일부 들어맞는다.

그러나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로 오히려 첨예해진 양당 갈등이 이념 갈등으로 번지며 사실상 민주당 대 한국당 양자 대결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이같은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목표로 다시 정계에 발을 들였지만 여러모로 여건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해외 연구 활동을 마치고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0.01.19. (사진=뉴시스)

 

 

與 호남 탈환 목표에도 安 “속도 아닌 방향”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호남 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 민주당 지지율과 최근 여론조사, 와해된 대(對)안철수 민심을 고려하면 ‘호남 탈환’은 누군가 말했던 ‘300석 중 260석’ 같은 허무맹랑한 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민주당은 ‘안철수’가 미칠 파급력에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20대 총선에 대해 “그 분(안철수)은 정치 신인이었는데 인기에 놀랐던 건 사실이다. 새누리당과의 경쟁이 주(主)였지만 우리로서도 특히 호남에서 의석을 많이 뺏겼다”며 “3정당이 나온다면 격전지는 다시 호남이 되지 않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힘이 빠진 안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이든 바른미래당을 통해서든 민주당의 호남 탈환을 저지할 수 있느냐다.

안 전 대표는 귀국 전 “내 팔자가 바이러스 잡는 팔자인 것 같다. 지금은 낡은 정치 바이러스를 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중당 김종훈 의원은 “선거 때만 출몰하는 안철수 바이러스, 전 국민 주의보를 발령한다”고 비판했다.

시기적으로, 현실적으로 다소 늦었다고는 하지만 안 전 대표가 독일과 미국에서 1년 4개월 간 그린 그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언질만 있었을 뿐이다. 군소야당 입장에서는 한시가 급하지만 안 전 대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석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설득력 있고 간명한 입장이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라는 ‘낡은 정치 바이러스’에 백신이 될 수도 있는 반면, 3지대에 기대감만 부풀리고 아무것도 못하는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

다만 3지대 통합 논의가 이제 막 거론된 참이고, 한국당과 새보수당 등 범보수 통합도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안 전 대표의 향후 행보를 구체적으로 점치기에는 아직 이를 수 있다. 그동안 안 전 대표가 그려온 그림들은 설이 지나면서 하나씩 그 베일을 벗을 전망이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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