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다당제 요구’ vs ‘대통령 견제 어려워’
공수처, ‘사법개혁 필요’ vs ‘대통령 권한강화에 불과’

▲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3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로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여야4당과 자유한국당이 극한 대치를 벌이며 4월 임시국회가 사실상 파행을 빚던 가운데 30일 오전 0시를 전후해 공직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 4개 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됐다.

앞서 지난 22일 여야4당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2개 법안 등을 각 당 추인을 거쳐 25일까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23일 진행된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12대11의 표결 결과가 나오자 이를 두고 ‘당론’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이견이 발생했고, 급기야 이언주 의원은 의총 직후 바른미래당에서 전격 탈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바른미래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이던 오신환·권은희 의원이 ‘당론’이 아니라며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단행하자,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축으로 한국당까지 가세해 이를 ‘불법 사보임’이라 단정, 공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또한 한국당이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의안과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실을 점거하며 철야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쇠망치와 빠루(노루발못뽑이)까지 등장해 2012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여야4당과 한국당의 현재까지의 입장과 갖은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법안들이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정리해봤다.


▲ 29일 저녁 국회에서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펼치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

여야4당 ‘다당제’ vs 한국당 ‘양당제’

지난달 17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은 선거제 개편안에 대해 △의원정수 동결(300) △지역구225·비례대표75석 △석패율제 도입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 △비례대표 권역별 배분(전국 6개 권역)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민주당이 지난달 8일 야3당(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에 제시한 안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여야4당은 이른바 ‘사표의 방지’를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당선된 1인에게 몰린 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표가 되는 만큼 유권자의 일부 선택만이 반영되는데, 일부의 표심만을 반영하는 당선자가 과연 비례성과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을 제외한 야3당은 거대 양당체제가 아닌 다당제의 필요성을 외치기도 했다.

반면 한국당은 당론 제시 마감시한으로 제시된 지난달 10일 민주당과 기존 야3당의 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안으로 △의원정수 10% 감축 △비례대표제 폐지 △내각제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등을 당론이라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여야4당의 안에 대해 “내가 찍은 표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아몰랑 선거법’”이라며 “양당제 없이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선거의 룰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점 또한 한국당이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여야4당이 총선에 대해서만 사표를 말하고 대선에서 발생하는 전국구 사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국을 선거구로 해 다수 득표자 1명만을 선출하는 대선에서 발생하는 50%내외의 사표에 대해서는 여야4당이 침묵한다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저들은 현행 선거법이 사표를 양산하고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41% 득표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100%권력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며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59%는 짓밟으면서 사표걱정으로 선거법 개정을 한다니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이 29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문체위 회의실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지정 관련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

여야4당 ‘수사권+재정신청+부분적 기소권’ vs 한국당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 권한 강화’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라는 막대한 권한을 쥐고 있는 검찰의 권한 분산을 목표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독점적인 기소권 보유(기소독점주의)와 기소에 대한 재량권 보유(기소편의주의)로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 공수처가 독자적인 기관으로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특히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욱 강화시킬 소지가 있다며 수사권만을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여야4당의 합의에서 공수처의 권한 배분에 대해서는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직접 기소권과 수사권을 갖되, 이외의 경우는 수사권만을 갖도록 했다. 다만 공수처에도 재정신청권을 부여해 검사의 불기소 판단에 사후적으로나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한국당은 대통령 직속 공수처가 무소불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사법부·입법부·주요 헌법 기관 등을 모두 통제하게 된다며 공수처 설치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이 터무니없이 막강해지는데다가 선거제 개편으로 다당제가 출현함으로써 의회가 견제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입장


여야4당 ‘적법절차’ vs 한국당 ‘제1야당 패싱 야합 날치기 꼼수’

 

여야4당은 패스트트랙이 2012년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 등의 주도로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29일 KBS라디오프로그램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과거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당 이를 저지하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물꼬를 트는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의장의 권한을 축소했고, 장기간 대치에 따른 법안 표류 방지를 위해 도입된 것이 패스트트랙이라는 것이다.

현행 국회법 제85조의 2는 국회의원 또는 상임위 재적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국회의장·상임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재적의원 5분의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여야4당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본회의 상정까지 주어진 최장 330일이라는 기간 동안 얼마든지 추가논의가 가능하며, 패스트트랙의 지정이 법안의 통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이를 제1야당과 논의 없이 여야4당의 야합으로 이뤄낸 날치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정당들이 협의와 합의를 거치라는 의미인데 집권여당과 군소정당이 이익공동체로 뭉쳐 수적 우위로 제1야당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전희경 대변인은 30일 논평을 통해 이를 두고 “선거법, 공수처법 날치기”라며 “기어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조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 소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신환·권은희 의원 사보임에 대한 입장

민주당·국회사무처 ‘대표 의견이면 충분’ vs 한국당·바른정당계 ‘해당 위원 의견 들어야’

민주당은 국회법 제48조 제1항의 ‘상임위원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하거나 개선한다’는 규정을 거론하며 바른미래당 교섭단체 대표인 김 원내대표의 요청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재결을 받았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당은 동법 제48조 6항을 거론,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의 경우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다’며 김 원내대표의 사보임이 불법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찬성표가 나올 때까지 위원을 갈아치우는 반칙과 꼼수라는 것이다.

이에 국회사무처는 지난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법 제48조 제6항에 임시회 회기 중 위원 개선은 불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 동안 일관된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사보임 결정’이라 밝혔다.

“임시회 회기 중 위원을 개선할 수 없다면 폐회 기간 없이 임시회가 연중 계속될 경우 위원 개선이 불가능해지고, 해당 조항이 개정된 2003년 이후에도 임시회 회기 중 위원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던 관행과도 배치된다”

“국회법 제48조 제1항은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위원을 개선하도록 하고, 의장의 국회운영은 기본적으로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할 때, 해당 의원이 아닌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의견을 들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국회사무처의 설명이다.

한편 해당 사보임이 불법이라는 목소리는 바른미래당에서도 터져 나왔다. 당장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은 물론, 유승민·하태경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핵으로 위원 본인의 동의 없는 사보임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로 인해 격화된 내홍으로 속앓이를 하던 바른미래당의 분화 시점이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그러나 바른정당계 좌장격으로 평가받는 유승민 의원은 “많은 분이 한국당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는 쉽고, 편하고, 거저먹고, 더 맛있어 보이고, 계산기 두드려 이익 많아 보이는 길은 안간다”며 탈당·분당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향후 패스트트랙 진로와 양 측의 평가

30일 0시를 전후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5개 법안은 이후 또 다른 2개의 단계를 거쳐 본회의에 안착하게 된다.

먼저 180일 동안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세부적인 조율을 거친다. 기존 4개 법안에 29일 바른미래당의 ‘깜짝 제안’으로 권은희 의원이 발의 한 공수처 설치법이 추가됐다. 권 의원의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의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의결할 기소심의위원회를 둔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안과 차이를 두고 있다.

이 중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심상정 의원 발의)은 정개특위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백혜련 의원)·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법(권은희 의원)·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채이배 의원)·검찰청법 일부 개정안(백혜련 의원)은 사개특위에서 각각 논의될 예정이다.

만일 정개특위·사개특위에서 180일 이내에 의결에 실패하면, 해당 법안들은 자동으로 다음 단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 90일 간 체계·자구심사를 거친다.

법사위에서 주어진 90일 이내 심사가 종료되지 않으면 해당 법안들은 심사를 거친 것으로 간주되고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돼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된다.

다만 선거법의 경우 최장 330일이라는 기간을 보내면 내년 3월 말이나 돼야 본회의에 상정된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에 이를 적용시키기 위해 여야4당으로서는 어떻게든 논의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첫 번째 단계인 소관위원회에서의 180일은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기한을 절반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국회법 제57조의 2는 이견조정의 필요가 있는 안건에 대해 재적위원 3분의1(6명) 이상의 요구로 90일의 활동기한을 갖는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안건을 회부할 수 있다.

또한 국회법 제85조와 86조는 위원회가 이유 없이 심사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않았을 때 의장으로 하여금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3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해 여야4당과 한국당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평화당은 “정치·국회·사법개혁의 신호탄이 올랐다”며 추후 논의과정에서 보완대책을 논의할 것이라 밝혔고, 정의당은 “신속처리안건 지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며 “‘국민의 뜻대로 일하는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출발한다”고 전했다.

바른미래당 또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이라며 “정치개혁과 사법개혁은 이제 시작”이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국당은 “경제는 멈췄고 패스트트랙은 달렸다”면서 “장기집권을 위해 실정법을 위반하고 권력욕에 취해 민생은 저버린 것이 진실”이라 평가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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