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천태만상…‘노조 파업에 회사 문 폐쇄로 대응’

[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지난 16일 본격 시행됐다.


기업들은 ‘지위 또는 관계에서의 우위를 앞세워 직원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방지하자’는 이 법의 취지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법 시행 이후 국내 기업 문화가 전반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수평적으로 바뀌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


동안 사회적 공분을 샀던 직장 내 ‘갑질’ 문제를 해소해 나가기 위해 노사정이 힘을 합쳐 함께 소중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폭로되는 신도리코의 시대에 뒤떨어진 수직적인 기업문화는 이 같은 범사회적인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사무기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도리코는 프린터 복합기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창업주인 고(故) 우상기 전 회장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힘썼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우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의 신도리코는 더 이상 과거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로 칭송받던 그 회사가 아니라 ‘직장 내 갑질’과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로 얼룩졌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신도리코분회는 지난 11일 서울 성수동 신도리코 본사 앞에서 신도리코의 구시대적 군사문화와 갑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사는 사내행사에서 여직원과 여장 남직원에게 아이돌 걸그룹 춤을 추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사내 임원과 손님에게 급식 서빙도 하도록 했다. 남성 직원들은 차력쇼까지 펼쳐야 했다.


오랫동안 굳어진 수직적인 기업문화에 저항하기 위해 직원들은 노동조합까지 결성했지만, 사측은 1년이 넘도록 이들 노조를 대화의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시대를 역행하는 기업 문화로 노동자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신도리코 각종 ‘갑질’ 의혹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슈퍼갑질’ 직원에 식당 서빙·걸그룹 댄스·차력쇼 강요
‘상명하복’…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구시대적’ 기업문화

최근 1년 동안 신도리코는 노사 갈등이 극단으로 심화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신도리코 노동조합은 근무환경의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해 회사 창립 58년만인 지난해 6월 처음 만들어졌다.  

 

노조는 출범 이후 회사의 부당한 근무 환경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금까지 회사와 극심한 대치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노조가 출범했음에도 신도리코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갈등은 나날이 첨예해지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 신도리코 분회는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신도리코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도리코 직원들의 ‘직장 갑질’ 사례를 폭로했다.  

 

더욱이 이 사례들 중에서는 요즘 부쩍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여직원에 대한 차별과 부당대우 논란도 포함돼 있어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직원 차별’ 시대 역행하는 신도리코 기업문화

이날 노조가 폭로한 성차별 내용을 살펴보면 신도리코는 지난해까지 외부 손님이 방문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여직원에게 밥상을 차리는 업무를 지시해왔다. 방문객이 식사를 마친 후에는 식판 정리 업무도 도맡아 했다.  

 

이 같은 밥상 차리기 업무를 위해 회사는 당번제까지 만들어 운영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노조의 반발에 이 같은 여성 직원들의 ‘밥상 차리기’ 업무는 지난해에야 없어졌다.  

 

게다가 신도리코 우석형 회장이 지방공장을 방문할 때 회사에서는 여직원에게 장기자랑 준비를 강요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매년 9월마다 우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아산공장 직원들이 참석하는 ‘아산공장 확대석식 간담회’에서 여직원들은 걸그룹 댄스 등 선정적인 춤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남직원들의 경우도 차력쇼와 여장 댄스 같은 장기자랑을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에서는 여직원들이 승진과 임금에 있어서도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고졸 출신 여성 노동자에게 공공연히 승진에 불이익을 줘 20년째 평사원, 30년째 대리 직급인 노동자도 있다.  

 

또 여성 노동자들에게 출산계획을 물어보거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사측은 해당 직원에게 지급하던 상여금 600% 더 이상 주지 않기도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돌아오면 연봉의 1000만원 정도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출산·육아 휴직에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 걸그룹 춤 강요 등 갑질 논란과 관련 신도리코 측은 언론을 통해 “충남 아산 사업장에서 이어오던 확대석식간담회 중 부서별 자체 준비장기자랑의 일환이었다”며 “대한항공 갑질 사태 등 최근 사회 분위기에 맞춰 자정 차원에서 현재 중단한 상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해명에 대해 과연 신도리코의 해명에 대해 한 가지 의문점은 만약 앞서 대한항공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면 과연 중단될 수 있었냐는 것이다. 

 

회사 경영진은 이미 오랫동안 이 악행을 계속해 오면서 문제의식 조차 갖지 못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은 커져가고 있다.   

여기가 군대인가, 회사인가?…뿌리 깊은 ‘상명하복’ 문화

노조가 기자회견에 밝힌 여러 직장 내 갑질 사례는 여직원에 대한 낮은 인식뿐 아니라 경영진의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신도리코의 조직 문화는 직원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다. 신도리코 신입 직원들은 연수 과정에서 배방산 야외훈련을 거쳐야 한다. 협동심을 기른다는 취지하에 10킬로그램이 넘는 산악자전거(MTB)를 들고 산을 오른다. 

 

주임급 교육에서는 4~6인 1조로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한강을 건너게 한다. 여직원은 배 앞머리에 태워 방향 지시를 맡긴다. 전형적인 군대식 극기훈련이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이트 ‘잡플래닛’에 올라온 기업평가 내용을 살펴보면 야근·군대·문화·보수 등 강압적인 기업 분위기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뤘다.

 

노조 측은 “사내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전근대적, 군사문화적 생각은 아직도 견고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조장하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노조 할 권리’ 못 찾은 노동자들

이러한 사내 분위기가 외부로 속속 드러난 데에는 1년 째 우석형 회장과 대치하고 있는 노조의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해 7월 교섭을 시작했지만 회사가 보인 태도는 노조의 분노만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노동조합은 1년이 넘도록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채 60일간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신도리코 노조는 임금 단체 협상 등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경영진이 기습적으로 확정안을 통보하는 등 실질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노조 설립 배경으로 꼽은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부당해고, 여직원들의 접대 동원 등에 대한 문제 해결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에게 차별을 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조 결성 직후부터 강성우 분회장 등 일부 조합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등 차별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도리코 노조 강성우 분회장은 “사측과의 긴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부당 해고 논란 등 문제가 많다”며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본사 측이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교섭태도에 대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막겠다며 건물 입구를 봉쇄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있다.  

 

실제로 이들 노조가 지난 1일 노조의 처우 개선 단체 협약을 무시하고 사측의 파업권·단체협약 적용범위 개악 안에 반대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출입문을 2개 남기고 모두 폐쇄 조치했다. 

 

신도리코 사측은 파업 당일 오후 1시부터 건물에 통하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출퇴근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직장인 익명게시판인 ‘블라인드’ 앱에는 본사 내부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주차타워와 비상계단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퇴근했다는 후일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퇴근이 지체돼 일부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농성 천막 걷은 노조, 진통 ‘끝’ 합의 도출할까?

이달 중순까지만해도 이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았던 노조와 사측의 대립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신도리코 회사 내 노동조합 사무실이 생기면서 노조가 본사 앞에 농성 천막을 친 지 70여일 만에 드디어 이 천막을 철거하면서 극적인 화해모드에 들어섰다.  

 

앞서 지난 18일 결의대회에서 강성우 분회장은 “다음 교섭일인 23일까지 농성 현수막을 해체하고 회사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다리겠다”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에 신도리코 측은 22일 공문을 통해 약 7.4평 가량 본사 1층에 위치한 회의실을 노동조합 사무실로 제공한다는 의사를 분회에 알려왔다. 동시에 하계휴가 기간을 고려하여 다음 교섭 날짜를 8월 8일 오후 2시로 제안했다. 

 

신도리코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과정에서 “최근 노조와의 갈등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최근 들어 갈등이 격화되었을 뿐 현재 이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60년만에 노조 설립, 그러나 회사는 1년째 인정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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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 경영의 한계…수십억원 배당금 챙긴 오너일가

다만 이번 노조가 극적으로 화해무드에 돌입함에 따라 양측이 원활한 협의점을 찾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미 신도리코 내부에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기업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사측에서 어느 정도까지 노조의 입장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이 굳어진 신도리코의 기업 문화 중심에는 바로 ‘우석형’ 회장이 서있다.

 

2002년 창업주인 고(故) 우상기 전 회장이 타계한 후 우석형 회장이 대표이사에 올라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우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이후 최근 1년 동안 노사 갈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면서 우회장의 리더십에도 의문부호가 찍히는 모양새다.  

 

노조는 지난 1년간 총 31차례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아직 전문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처음 노조가 내걸었던 단체협약 조항은 126개였으나 이후 회사의 요구로 105개로 줄였고, 현재는 100개 이하의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노동조합 인정 ▲수당 없는 공짜 노동 금지 ▲부당 전환배치 금지 ▲각종 복리후생 보장 등 법이 정하는 최소한의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가 무리하게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며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노사가 ‘근무환경 개선’에 대해 팽팽한 평행선을 걷는 동안 회사 주식의 48퍼센트를 소유한 오너 일가는 매년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배당금을 챙겨왔다.  

 

우 회장은 <포브스> 잡지가 선정한 한국 부자 순위 200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로 ‘갑부’로 꼽힌다.

 

현금과 부동산을 제외한 주식 자산만 1750억 원에 이르고, 2011년에는 50억 원이 넘는 호화 아파트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에게 계열사 주식 220억 원어치를 증여하기도 했다. 

 

오너일가의 재산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노동자들은 호봉제로 인해 실질임금이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신도리코의 오너일가 행보는 전형적인 족벌기업의 폐해로 보여진다”며 “경영진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잡플래닛·블라인드앱 캡쳐]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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