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노딜 수모…연임 후 더 큰 빅딜
재벌 특혜·백기사 논란 정면 돌파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양대 항공사의 ‘빅딜’.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가 무산된 이후 절치부심하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이 회장은 임기 동안 전임 회장들이 장기간 풀지 못했던 대우조선해양, 금호타이어, 동부제철 등 골치덩이 자회사 매각을 해결하면서 ‘M&A 승부사’로 불려왔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9월 10일 연임을 확정했다. 산업은행 전체 역사상 4번째, 산업은행이 수장의 직함을 회장으로 바꾼 이후로는 첫 연임이었다. 이 회장이 연임을 확정하고 하루 뒤인 9월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최종 무산됐다. 연임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운명을 논의하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 회의에 참석한 이 회장은 자신이 주도해 온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등 플랜B를 가동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추진은 한때 이 회장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됐지만,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면서 좌초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연임을 고사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적지않았다.

이 회장은 연임했고, 연임의 가장 큰 명분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 짓는 일이었다. 이 회장은 연임 첫날 임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노마십가’의 겸손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미래산업 건설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자”라고 말했다. 노마십가는 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끌면 천리마를 따라간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이 회장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연임 직후 이 회장이 내놓은 플랜B는 평범했다. 일단 채권단 관리 하에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한 후 적당한 시기에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시나리오였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관련 조만간 외부 컨설팅을 실시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내 정상화하고 추후 가능한 시점에 통매각이나 자회사 분리매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투자은행업계에서는 재매각 시점이 빨라도 내년 이후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내년 하반기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항공업계가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야 아시아나항공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이 회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국적항공사를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진짜 플랜B는 따로 있어
산은과 한진그룹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현산과의 노딜이 확정된 지난 9월 11일 직후부터 아시아나항공의 새주인 찾기에 나섰다. 진짜 플랜B는 따로 있었던 셈이다. 산은은 자금력을 갖춘 국내 그룹 6곳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산 기준 상위 6곳인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한화 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은이 적절한 조건에 인수를 제안했겠지만 항공업계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는 곳은 없었다. 항공산업 부흥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곳은 대한항공을 보유한 재계 14위 한진그룹이 유일했다.

한진그룹 측에 먼저 접촉한 것도 산은이었다. 조원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확정되고 처음 공식석상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산업은행이 먼저 의향을 물었을 때 할 수 있다고 했고, 여러 차례 만나고 오랜 기간 이야기하면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이 한진칼에 제3자 유상증자로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밑그림이 그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김석동 한진칼 사외이사 의장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김 의장은 대표적인 M&A 전문가로, 이 회장과는 고등학교 동기고 한때 금융감독위원회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다만, 이 회장이 금융위를 떠난 이후 김 의장과 만난 일이 없다고 극구부인한 만큼 실제로 관여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제3자 유상증자 등 핵심 아이디어는 한진그룹을 항공 빅딜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 회장의 파격 제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현산과의 협상에서도 이 회장의 승부사로서의 기질이 여러 차례 발휘됐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의 회동 이후 2조5000억원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규모를 1조5000억원 수준으로 낮춰주겠다고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록 최종 무산되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현산을 고심하게 만든 승부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론 설득 총대 멘 이동걸
산은과 한진그룹, 아시아나항공 등 모두에게 이번 항공빅딜은 ‘윈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 입장에서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양대 항공사를 합병함으로써 이중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산은은 양사 체제 시 내년 말까지 4조8000억원의 정책자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한때 우리나라 빅2가 경쟁하며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변화환경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명제다”라면서 “이제는 합쳐서, 경쟁을 높이고 최대한 국제 경쟁력 높이는 게 국적항공사, 우리 국제항공운송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산은이 한진칼에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자함으로써 우호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조 회장은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 등 3자연합(KCGI·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수장·반도건설)과 경영권을 놓고 1년여 동안 분쟁 중이다.

다만, 항공빅딜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게 된 것은 산은 입장에서 큰 부담이다. 막대한 혈세를 들여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지켜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특히 시민사회, 학계, 정치권을 중심으로 혈세 낭비, 재벌 특혜 등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한 지상파 뉴스 방송에 출현해 이러한 우려에 직접 해명했다. 예상보다 거센 반발에 이 회장이 총대를 메고 직접 여론 설득 작업에 나선 모양새다. 이 회장은 JTBC 뉴스룸에서 “대한항공은 이미 산은에 1조2000억원을 지원 받으면서 많은 자구노력을 취하고 있다”며 “이미 잘 알려진 송현동 부지, 기내식 사업을 매각해서 1조원을 조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산은은 경영권을 가진 총수일가에 책임을 담보하기 위해서 지분 일부를 담보로 잡고 경영에 실패할 경우에 그 지분을 처분한다든지 경영에서 퇴진하는 강력한 견제장치를 구축해 놓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한진그룹에 대한 특혜로만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이날 방송에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항공빅딜의 경제적 효용성을 처음 언급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구조조정이 완료되면 연간 약 3000억원의 수익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시 환산해서 얘기하면 연 3%의 이자율로 10조원의 부채를 추가로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상파 뉴스 출연은 이동걸 회장 특유의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라며 “이번 항공빅딜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한 만큼 뚝심있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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