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신설에 무게 실리는 여론…한국당 엮이게끔 정교한 기획?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에 화룡정점으로 꼽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이 힘을 받고 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데 이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안미현 춘천지검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공수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여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수처 신설을 강조하고 집권여당은 명분을 얻게 된 반면, ‘옥상옥’, ‘야당 탄압의 또 다른 칼’이라며 공수처 신설에 반대하는 제1야당은 여론의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서지현 검사 및 안미현 검사의 폭로에 제1야당 소속 의원들이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예전처럼 완강하게 반대할 처지가 못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 일각에선 현 정권과 집권여당이 공수처 신설을 위해 한국당 의원이 엮이게끔 조직적이고 치밀한 기획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서지현·안미현 검사의 폭로로 공수처 신설에 대한 명분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정교한 기획으로 의심하고 있는 한국당의 입장에 대해 살펴봤다.


檢, 성범죄 저지르고 덮는 것도 셀프?


일각 ‘인사 불만’‥서지현 ‘인사 불이익’


경남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인 서지현 검사는 지난달 26일 검찰 내부 전산망 ‘이프로스’를 통해 지난 2010년 10월 서울북부지검 특수부 소속으로 근무할 당시 동료 검사의 상갓집에 갔다가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서 검사는 안태근 검사로부터의 사과는 없었으며 원치 않는 지방발령 등 오히려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해당 성추행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즉, 성추행 사건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검찰이 자신들 스스로가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또 그것을 자기들끼리 덮었다는 폭로였다.


이에 대해 최교일 의원은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으나, 서 검사가 안태근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을 당시, 법무부 감찰과로부터 피해 여검사를 알아봐달라고 전화를 받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소속 임은정 검사의 주장은 달랐다.


임 검사는 당시 서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성추행 피해 여검사에 대해 물었으나, 서 검사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시 서 검사는 윗선과 상의해 가해 당사자에게 사과를 받는 대신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 협의를 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의 성추행 사건이 있은 지 7년여가 지난 지난해 7월 임 검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뒷얘기를 검찰 내부망에 올렸는데, 당시 최교일 검찰국장이 자신을 호출해서 갔더니 ‘피해자(서 검사)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불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까지 튀었다. 피해 당사자인 서 검사는 지난해 9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내 7년여 전 성추행 사실을 거론하며 면담을 요청했고, 두 달 뒤인 11월 법무부 검찰국 관계자와 면담을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미 사건 당시 고소가 이뤄지지 않아 사법처리가 불가능한데다, 안태근 전 검사가 퇴직한 상태에서 별도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입은 2010년 10월은 피해자가 강제추행을 당한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이었다. 친고죄는 2013년 6월에야 폐지됐다.


안 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의 부적절한 ‘돈봉투 만찬’ 파문으로 지난해 6월 면직 처분됐다.


하지만 법무부는 당초 서 검사가 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실을 부인하다가 뒤늦게 서야 시인을 했고, 결국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과 함께 박 장관이 서 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묵살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와 관련해 바른정당은 박 장관의 묵살과 왜곡된 성인식으로 한때 경질 요구가 빗발쳤던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묶어, 문재인 정부를 ‘묵살 전문 정부’라고 직격했다.


황유정 대변인은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5개월 전 박상기 장관은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진상 조사 요구를 묵살했다”며 “그 즈음 문재인 대통령도 탁현민 행정관에 대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경질요청을 완전 무시했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쯤 되면 이 정부는 성문제 묵살, 무시전문 정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서지현 검사 성추행 피해 폭로 관련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발족 브리핑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인채 돌아서고 있다.

7년여 만에 성추행 사실 폭로 <왜>


2010년 성추행 당시 해당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7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폭로한데 대해, 서 검사는 지난달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피해를 당했던 당시만 해도 지금과 분위가 달라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며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몸담고 있는 검찰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지, 피해자에게 2~3차 피해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는 여검사에게는 잘 나가는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서 검사의 설명이다. 서 검사는 검찰 내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지만 전부 비밀리에 덮였다고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인사 불만 때문이 아니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서 검사는 수원지검 여주지청 근무 시절인 2014년 4월 사무감사를 받았는데, 희망 근무지와 달리 2015년 8월 현재 소속인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받았고, 이후 1년여의 육아휴직 등을 마친 지난해 8월 서 검사는 노정환 통영지청장에게 7년여 전 성추행 사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검사가 박상기 장관에게 보낸 이메일에도 ‘2010년 10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성추행 당시 법부무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였고, 그 후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무감사 및 인사발령을 받고 현재 통영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검찰 정기인사 명단에 서 검사의 이름은 없었다. 서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전산망과 사흘 뒤인 29일 방송에 출연해 7년여 전에 발생했던 성추행 사건을 폭로했다.


만약 서 검사가 이번 검찰 정기인사에서 원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면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인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7년여 전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서 검사는 성추행 사건으로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서 검사는 지난 4일 검찰의 ‘성추행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 회복 조사단’이 꾸려진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9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


서 검사는 성추행 사건은 당연하거니와 2014년 사무감사를 통해 가해진 인사상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도 상세히 진술했다고 한다.


서 검사는 감사 지적사항 다수가 부당했으며 이에 따른 부당한 인사발령은 안태근 전 국장·최교일 의원 등의 성추행 진상은폐를 위한 시도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지현 검사 JTBC 뉴스룸 캡쳐화면.

외압 의혹 권성동…법사위원장 사퇴 요구↑


김성태 “이렇게 기획적으로 野 탄압하느냐”


권성동·염동열…강원랜드 채용비리 부당 외압 행사?


서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9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은 날 또 다른 폭로가 터져 나왔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안미현 춘천지검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을 받았고, 여기에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이 연관됐다고 폭로한 것이다.


지난 4일자 <MBC> 보도에 따르면 안 검사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2월 안 검사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와 관련해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수사 건을 전임자로부터 인계받았다.


전임자는 최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초안은 물론 검사장이 지시한 보완사항까지 꼼꼼하게 메모했고, 이를 안 검사에 전달했다.


하지만 전임자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지 두 달 만에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이 안 검사에게 불구속 기소로 사건 종결을 지시했다는 것.


안 검사는 “당시 (최 전 사장)사건처리 예정보고서에는 그 결과가 불구속 또는 구속으로 열려 있었는데, 최 지검장이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을 만난 다음날 불구속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최흥집 전 사장은 같은 해 4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가 부실 수사라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재수사로 이어지면서 최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 구속됐다.


안 검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과 A 고검장, 최 전 사장 측근 사이에 수없이 많은 통화가 오간 정황에 비춰 정치권과 검찰 수뇌부의 개입을 의심했다.


안 검사는 “상관으로부터 ‘(수사 대상인)권성동 의원이 불편해한다’는 말을 듣고, ‘권 의원과 염동열 의원, 그리고 A 고검장의 이름이 등장하는 증거목록을 삭제해 달라’는 압력도 지속해서 받았다”고 주장했다.


MBC뉴스 캡쳐화면.

권성동 “인사에 불만 품고 의혹 제기”


안 검사의 이러한 폭로에 권성동 의원은 지난 5일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안 검사가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강력 부인했다.


그러면서 안 검사가 이번 검찰의 정기인사에 불만을 품고 해당 의혹을 폭로한 것이라 주장했다.


춘천지검 소속인 안 검사는 이번 인사에서 서울 발령을 원했는데 원치 않는 의정부지검으로 발령 나자, 법사위원장인 권 의원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안 검사가 의혹을 제기했다는 게 권 의원의 주장이다.


권 의원은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며 법적대응을 시사했다.


법사위원장 사퇴 요구 빗발…공수처 설치 탄력


권 의원은 안 검사의 의혹 제기를 일축했지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권 의원이 법사위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외압 의혹의 중심에 있는 권성동 위원장은 법사위워장직을 즉각 사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도 “권 의원은 즉각적으로 법사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하고, 법사위원장직에 있었기 때문에 이 수사가 축소되고 외압이 일어났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백혜련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법사위가 법무부나 검찰을 다루는 파트 아니냐, 법사위원장 자리에 있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며 “권 의원은 당장 지금 법사위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권 의원의 법사위원장직 사퇴를 촉구함과 동시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안미현 검사의 부당 외압 폭로는 국회 법사위원장과 전직 검찰총장(김수남 전 총장), 최종원 춘천지검장 등이 연루된 만큼 검찰 자체 진상조사에 기대를 걸기 어렵고, 아울러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또한 검찰의 셀프조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공수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에는 특별검사 및 국정조사, 성추행 셀프조사에는 민간 위원회 구성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검찰 조직을 개혁하기 위해선 서둘러 공수처를 신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검찰 내 성추행 사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통해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공수처 설치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다시 당부드린다”며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일련의 사건은 검찰의 잘못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며 “그 방안으로 국민들께서 가장 공감하고 있는 것이 공수처 설치”라며 거듭 강조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한 권성동 위원장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해명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권성동 위원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퇴장해 파행됐다.

너무 오래 쌓인 적폐의 결과?…기획적 야당 탄압 의심하는 한국당


검찰 조직의 잇단 내부 폭로로 공수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여론에 무게가 실리면서 민주당은 명분을 얻게 된 반면, ‘옥상옥’, ‘야당 탄압의 또 다른 칼’, ‘민변 검찰청 신설’ 등의 이유로 이에 반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여론의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당은 특히 성추행-강원랜드 채용비리 외압 폭로에 소속 의원들이 연루돼 있다는 점에서 예전처럼 완강하게 공수처 신설을 반대할 처지도 못되는 상황이다.


다만, 현 정권이 공수처 신설을 위해 한국당 의원이 엮이게끔 조직적이고 치밀한 기획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난 5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재한 3당 원내대표 회동 직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의장실을 빠져나오면서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이렇게 야당을 탄압한 적이 없다”면서 “전부 조직적이고 이렇게 기획적으로 할 수 있느냐”며 우원식 원내대표를 향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우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저지른 적폐가)너무 오래 쌓여있어서 막 나오는 걸 어떻게 하느냐”며 “(그리고)검사가 나와서 얘기한 것이지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집권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어떻게 그렇게 국회 의정활동을 잘 하시고, 사생활 관리도 잘했는지 모르겠다”고 비꼬면서 “국정운영에서 제대로 할 판단은 하지 않고 모든 걸 기획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 반드시 한국당 의원이 엮이게끔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 원내대표는 한 숨을 내쉬는 김 원내대표를 바라보며 “이런 일을 기획해본 사람들 눈에 보면 다 기획으로 보인다”고 응수했다.


우 원내대표는 기획적 야당 탄압이라는 김 원내대표의 주장을 일축했지만, 한국당은 여권이 방송장악을 통해 무차별적 폭로를 지속하리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최승호 MBC 사장이 부임 후 직접 언급한 이른바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지난 보수정권과 우리 야당을 표적 삼아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한국당은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행하는 이런 무차별적 폭로 보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 뉴시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