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해명 이후 더 커진 ‘인권 침해’ 논란

국내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카이스트에서 총장 발언에 따른 후폭풍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검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제 얼굴이 점점 검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이건희 삼성 회장 사진을 두고) “(행복이) 재산에서 오나요? 재산 많은 사람들 봐요. 얼굴 해피한 사람 있나” (노무현 등 전 대통령 사진 앞에서) “그렇다면 권력에서 오는가요? 최고의 권력 있는 사람들 다 잘못해 가지고 깜빵 아니에요” (고 최진실 등 스스로 목숨을 끊은 4명의 연예인 영정 사진 앞에서) “인기에서 오는가요? 다 자살하잖아요”


이름만 대면 국민 모두 알 만한 한 대학 총장의 발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이스트(KAIST) 신성철 총장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오후 진행된 카이스트 물리학과 콜로퀴움 강연 도중 나온 이 같은 신 총장 발언에 학생들이 인종차별 및 자살 희화화 등 의혹을 제기하며 총장 자격에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학생 측은 이런 총장 발언에 즉각 사과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신 총장 발언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신 총장 측은 총학 관계자와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해명에 나섰다.


문제는 해명 과정에서 학생 측이 신 총장의 독선적이며 반인권적 의식을 확인했다며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신 총장은 지난 4일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오해 소지가 있다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학교 발전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학생들의 인권은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해명에 학생 측은 정당한 문제제기에도 총장 유감 표명이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며 학교 건물에 대자보를 붙이는 등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총장 대응에 맞춰 향후 방안 수립에 나설 방침이다.


자살 유명인 강의자료 활용 “부적절한 처사”
총학 측 “총장 공식사과 하라…향후 대응할 것”


11일 카이스트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에 따르면 지난달 진행된 논란의 강연 이후 학소위 측은 흑인 발언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신 총장에게 이메일을 통해 입장과 해명 등을 요구했다.


학소위 관계자는 신 총장과 학생 측 면담에서 “(총장 측은) ‘성명이 무례하다’, ‘오히려 내 발언이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인종차별적이다’, ‘해당 발언은 흑인과의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비유한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등의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학소위 측은 이후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총장실을 통해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녹음본을 확보, 분석해 신 총장의 인종차별 및 자살 희화화 등 문제의 발언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 총장은 “연못 근처에서 오리랑 놀지 말라. 같이 놀다가 오리가 불러서 괜히 연못에 들어가서 죽지 마라”라고 말해 마치 최근 연이어 발생한 카이스트 자살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발언으로 학생들의 빈축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지난 신 총장 발언과 관련, 이에 반발하는 대자보를 학교 건물 등에 게시한 상태다. ⓒ 카이스트 학소위


이와 관련, 학소위 측은 “물리학과 학생회의 오픈 카카오톡 익명 제보를 통해서 (강연) 당시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 10% 이상, 외국인 교수 등을 유치하고 글로벌캠퍼스를 강조하는 학교에서의 모순적인 인종차별 행태에 실망하였고, 유명인 자살 예시, 카이스트의 자살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농담 등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4일 신 총장 측은 학소위 측 문제 제기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신 총장은 이날 답변서에서 “우리 학생들이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는 동안 행복한 삶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됐다”면서 “이날 강연에는 학생들 뿐 아니라 물리학과 교수님들이 10여 분 참석하셨는데 강연 후 여러 교수님들이 ‘매우 인상적 강연’,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유익한 강연’이라는 말씀을 해줬다”고 자평했다.


이어 “이런(인종차별적) 발언이 의도하지 않게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과 그렇게 오해한 학생이 있어 유감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의사표현은 자유롭게 하되 좀 더 책임감 있게 소통을 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신 총장, “오해소지 발언, 유감”…학생 “부족한 인권의식 드러나”


이와 관련, 신 총장은 “기관을 책임 진 총장으로서 학생들을 위시한 구성원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단 기관의 발전에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훼방하는 구성원의 인권은 보장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같은 신 총장 해명 이후 학생 반발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총장 해명에 학생들이 ‘인권보장은 시혜적 성격의 것이 아니다’란 이유로 집단행동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학소위 측은 총장 해명에 대한 반박 성명을 통해 “답변에서마저 총장의 독선과 반인권적 면모가 묻어나는 점에서 실망을 금치 못한다”며 “총장의 생각부터 바뀌지 않으면 가장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총장의 답변 중 ‘기관의 발전에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훼방하는 구성원의 인권은 보장할 수가 없다’고 명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며, 심히 실망스럽다”면서 “인권은 총장이 구성원에게 선택적으로 보장하는 포상의 개념이 아니며, 따라서 인권은 시혜적 맥락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카이스트 신성철 총장이 지난달 한 강연에서 인종차별 또는 자살 희화화 성격의 발언을 한 뒤 학내 반발이 높아지고 있다.


학소위 측은 현재 신 총장에 대해 총 세 가지를 요구한 상태다.


먼저 신 총장 측에 ▲해당 발언이 인권침해적(인종차별적) 요소를 포함할 여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의 발표 ▲향후 더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내용과 KAIST 내 인권침해적?인종차별적 표현 불허 및 구성원 전체의 인권 보장 등에 대한 선언을 요구했다.


아울러 ▲학내 구성원의 인권 감수성 증진을 위해 실질적 방안으로 인권윤리센터, 포용성위원회, 학생인권기구 등과의 적극적 논의의 장 마련 약속 등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학소위 관계자는 이날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논란은 말이 의식의 사유수단이란 점에서 유추 가능한 총장의 평소 인권의식이 드러난 셈”이라며 “향후 총장 측 반응에 맞춰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해 신 총장의 공식사과를 위한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임을 시사했다.


또 다른 학생 측 관계자는 “현재 학교에선 방문하는 외빈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이유로 학교 본관에 붙어 있는 성명의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총장의 공식적인 해명 및 사과가 있기 전까지는 성명을 철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카이스트 관계자는 “총장 해명 당시 학생들도 납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해명 이후 학생들이 이처럼 문제제기하는 것은 말꼬리 잡기에 불과하며, 총장 측의 입장표명이나 해명 등 사후 조치는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카이스트 홈페이지/ 뉴시스/ 카이스트 학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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