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입장표명 속도 따라 소통이미지 타격 예상도…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나가사키 원폭의 7.8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6차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안보불안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대치중인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레드라인’ 설정이 여전히 명확히 제시되고 있지 않아 향후 야권의 공세가 더욱 매몰차질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외교부 강경화 장관과 통일부 조명균 장관은 5일 국회에서 개최된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냐고 묻는 바른정당 정양석 의원의 질문에 “어떤 선을 넘었다, 안 넘었다 하기 힘들다”며 레드라인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두 장관은 “우리 의견도 제시했지만 마지막엔 대통령이 결정안 사안”이라며 사실상 레드라인의 규정 자체가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인 사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레드라인’을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은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는 발언 직후부터 ‘김정은 정권에게 핵실험과 ICBM 개발에 대해서는 관여치 않겠다고 표현한 것’으로 해석 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야권의 안보 공세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섰고 그 규모가 역대 최고수준을 나타냈으며 청와대 측은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내놨다는 것에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직자들의 언급에선 ‘레드라인을 넘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는 취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두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이 ‘레드라인’에 관해 매서운 비판을 쏟아내는 현 정국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소통’인가 ‘쇼통’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바른정당은 이날 6차 핵실험에 대한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점검을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기로 했다.


바른정당 원내수석부 대표인 정 의원은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국회 운영위 소집을 요구하겠다”며 “대통령이 못 나오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라도 불러서 어떤 대책을 논의하고 있고, 대통령 생각이 무엇인지 따져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수석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는 대화하자고 구걸하다시피 하면서 야당과는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문제를 수습할 사람은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야당이 대통령에게 회담 제의를 해도 인색하기 짝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정 수석은 그러면서 “북한이 그동안 6번의 핵실험을 했는데 역대 대통령들은 핵실험 다음날 야당 대표와 만나 안보에 관한 인식을 공유했다”며 “우리 대통령은 왜 이렇게 야당과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공유에 인색한가”라고 문 대통령의 명확한 의사표명 및 소통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보수성향이 좀 더 짙은 것으로 평가되는 자유한국당 측은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날 오후 2시 10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과 김장겸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아가기도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러시아 정상과의 회담을 위한 오는 6~7일 러시아 순방일정을 이유로 면담 불가를 통보했으며 임종석 비서실장 또한 면담을 거부해 이러한 계획은 무산됐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대통령 면담에 실패한 이후 청와대 영빈관을 나온 뒤 “(청와대) 분수 앞을 지나는 시민들하고도 (차량에서) 내리셔서 인사하고 들어간 대통령이 제1야당 의원 전원이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면담은커녕 비서실장도 면담을 거부하는, ‘쇼(show)통’의 모습을 청와대에서 보여주신 것 아닌가 생각 돼 대단히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집권초기부터 ‘소통’을 주요 키워드로 꼽았던 문 대통령이 안보문제에 관해선 소통을 거부하는 형국을 보여주기식 소통이라는 의미의 ‘쇼통’이라며 비꼰 것이다.


사실상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은 당시 정가에서 레드라인으로 추측됐던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에 비해 기준이 약화 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베를린 구상’ 등으로 대표되는 ‘북한과의 대화 국면 추진’을 위해 다소 레드라인의 범위를 넓게 잡았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렇게 범위를 넓게 잡았음에도 북한이 도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과격하게 나오면서 문 대통령의 입장이 다소 난처해진 것 아니냐는 진단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의 해법 모색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는 북한의 이번 핵실험 도발을 레드라인을 넘긴 것으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대북기조 설정을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관측된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이처럼 레드라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지속적으로 거부할 경우 지금까지 쌓아왔던 소통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향후 입장 표명 속도가 주목된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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