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지대계’ 교육부…정권 아바타 신세 전락?

▲ 그간 들어서는 정권에 따라 정책이 크게 흔들려온 교육부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좌우하는 교육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교육부가 흔들리고 있다.


새로 들어서는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 수시로 바뀌는 정책에 국민들의 백년은커녕 ‘오년지대계(五年之大計) 교육부’란 냉소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대통령 탄핵정국에 이어 조기 대선 정국이 형성되면서 각 후보들의 교육정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유력 대선주자들이 잇달아 교육부 기능 축소, 더 나아가 폐지론 카드까지 꺼내들며 ‘교육개혁’이란 키워드에 여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먼저 교육부 폐지론에 대한 정당성은 충분히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탄핵’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영원히 치부로 남게 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부가 제시한 교육정책은 국민 여론과 동떨어져 표류한 정책이 많았다.


이 중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정유라를 중심으로 한 교육농단, 국정교과서 강행, 대학 구조조정 실패, 대학 입시개혁 답보 등으로 교육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민 6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집계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무려 7명이 교육부 기능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기대선 정국…유력후보 ‘폐지’ 주장 봇물
시도교육청, ‘중립’ 국가교육위 도입 추진


‘교육부 축소·폐지론’은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왔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른바 ‘벚꽃대선’ 정국이 현실화한 가운데 과거 그 어떤 대선보다 교육개혁에 관한 공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유력 대선주자 대부분이 교육부의 기능 축소·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어 차기 정권이 들어설 경우 이들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교육부 축소론’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교육부 폐지론’으로 불거진 정치권의 ‘교육부 축소·폐지를 통한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전국 시도교육청을 거쳐, 국민 여론으로 들불 번지듯 번져가고 있다.


세부적 사항에선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교육부의 억압이 지나치고 기능이 비대해 국가교육위원회 등을 별도기구로 대체해 이른바 ‘권력 분산’ 틀을 다시 짜야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견의 골자는 중립 가치의 국가교육위원회를 꾸리고 그 아래 교육지원처가 보좌하는 형태로 전환해 국가교육위가 미래 로드맵을 제안하면 교육지원처가 실행하게 하는 방식이다.


▲ 최근 교육부에 대한 축소나 폐지론이 불거진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그간 교육부가 정권 입맛에 따라 정책변경이 이뤄져온 점을 경계해 정권이 바뀐다 해도 국가교육위를 통해 장기간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앞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10명의 교육감이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개혁 정책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들 교육감은 유·초·중등 교육을 시도교육감 권한으로 명확히 규정, 교육부 권한을 축소하고 이른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국가 교육 의제 설정 및 추진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에 대한 구체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교육부 기능축소 및 폐지를 전제로 이미 지난 1990년대부터 제기된 가칭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진 데는 지난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모교였던 이화여대 사태에서 촉발됐다는 점과 국정 역사교과서 파행, 대학 구조조정 실패 등 교육부 책임론이 크게 불거지고 있다.

'파행' 국정 역사교과서…연구학교 신청 전국 '단 한 곳'


이들 모두가 중대한 사안임에도 교육부 폐지론에 이른바 ‘스모킹 건’으로 작용한 것은 국정교과서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국민 다수가 반대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사업은 추진 단계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사업 초기부터 역사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일선 학교들이 교육의 자율성·다양성 침해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으나 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따른 정부 방침에 교육부는 결국 여론을 뒤로 한 채 사업을 강행했다.


이 같은 결과 탄생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사회적 혼란만 부추겼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44억원이란 국민 혈세가 대거 투입된 국정화 사업은 2017년 새학기 국정교과서 보급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2018년 국·검정 혼용으로 급작스레 선회했다.


또한 국정교과서의 시범사용을 전제로 한 일선 학교들의 연구학교 신청은 파행 끝에 전국 단 한 곳의 학교만이 최종 신청했다.


보조교재 수준으로 전락한 국정교과서는 이마저도 극히 일부 학교에서 채택될 전망이지만 여전한 학부모, 교사, 학생의 반발에 따라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교육정책의 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교육부가 정권 지시에 따라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시민사회에선 ‘정권의 아바타’란 교육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앞세워 이른바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교육계 의견이 나온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또 하나의 교육부 개혁 관련 중심축으로 국정교과서 문제와 함께 정부 주도의 ‘불통’식 대학 구조조정 과정이란 의견도 나온다.


교육계에서 그간 끊임없이 흘러나온, 이른바 돈을 미끼로 한 ‘대학 줄세우기’식 구조조정 정책으로 교육부는 장기간 신음해왔다.


지난 2015년 말부터 교육부는 대학들에 재정지원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추진된 ‘코어·프라임 사업’ 등은 대학 내 심각한 갈등을 유발, 사회적 논란을 키웠다.


특히 교육부가 내놓은 촉박한 사업 일정에 각 대학들은 사전고지 미흡 등 불충분한 소통으로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이화여대의 경우 이미 신청했던 사업을 철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학교 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교육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최경희 전 총장으로 대변되는 이화여대 ‘불통’에 따른 일련의 사태에 더해 정유라 입시·학사관리 특혜 의혹 등이 터져 나오며 교육부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특히 정씨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이화여대의 정부 사업 싹쓸이 의혹에 대한 파장은 여전히 큰 상태다.


협의회, 국민 10명 중 7명 축소·폐지 찬성
일각, ‘컨트롤 타워’ 교육부 전면 폐지 우려


교육부 축소·폐지론이 불거진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48년 ‘문교부’로 출발한 현재 교육부는 그간 4번에 걸쳐 이름이 변경됐다. 1990년 당시 문화부 분리에 따라 처음 교육부란 이름이 등장한 이후, 김대중 정부 ‘교육인적자원부’로 명명되며 부총리 급으로 격상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 본격적으로 논의된 교육부 폐지 정책에 따라 ‘교육’ 두 글자를 뺀 ‘인재과학부’로의 개편 시도가 있었지만 강한 반발에 부딪쳐 ‘교육과학기술부’로 안착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교육부’로 탈바꿈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주장했던 중립적 기구 ‘국가교육위원회’ 신설이 이번 ‘벚꽃대선’에서도 공약으로 거론된 가운데, 실제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먼저 교육부가 담당한 ‘컨트롤 타워’ 기능을 과연 ‘국가교육위원회’가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을 바탕으로 한 ‘교육부 폐지 반대’ 의견이 나온다.


국가교육위 성공의 열쇠는 ‘독립성’ 확보다. 국가교육위가 대통령 또는 국회에서 추진하려는 정책을 거부해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가교육위에 독립적 예산은 물론, 조직·인사권이 부여돼야 하며 입법권 또한 필수로 보인다. 각 정부부처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인 만큼 긴 논의를 거쳐 이런 권한이 주어진다 해도 실제 기대 역할을 충족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의견도 많다.


교육정책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교육부가 관장하는 법률은 72개, 시행령 역시 106개에 달한다.


교육부가 사라져도 또 다른 기관이 법령에 대한 해석·개정 등 적용해야 할 필요가 발생하고 이런 과정에서 시도교육청이나 대학, 교원단체 등 교육계 전반적인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면 지금보다 더 큰 교육 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 폐지로 컨트롤 타워 부재 시 더 큰 혼란 우려"


▲ 국민 10명 중 7명이 교육부 축소·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는 가운데, 이준식 교육부장관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계 전반적 분위기는 이번 조기대선을 통해 야권 후보가 당선될 경우 교육부 축소나 폐지 방침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크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교육부 기능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나 ‘교육부 폐지 찬성’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개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이 같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교육부 불신에 대한 국민 민심은 국정교과서 사태와 대학구조조정 논란 과정을 거쳐 크게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과 시도교육청, 국민 여론이 교육부 축소·폐지론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결국 다음 정권에선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보다 면밀하고 현실성 있는 대책 마련이 수반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진제공=뉴시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