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지는 게임’…“대권 승리 노린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3개월여를 앞둔 현재, 야권은 지형 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분열을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연쇄탈당이 이어지면서 야권은 분열과 함께 지형이 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는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만약 일여다야 구도로 이번 총선을 치른다면 야권 지지층의 표가 갈려, 집권여당의 승리가 뻔 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 등이 총선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야권의 지형 재편을 몰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총선 포기론’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총선을 포기하고 야권의 지형을 재편시켜 차기 대선에 노림수를 두고 있는 안철수발(發) 총선 포기론에 대해 살펴봤다.


安‥결국 탈당 카드 꺼내들어
제1야당 쪼개져…총선 ‘참패’


지난달 13일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날을 세우며 문·안·박 연대 및 혁신전당대회를 주고받던 안철수 의원은 결국 탈당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정치’ 위한 창당


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오늘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을 떠난다”며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안 의원은 “이대로 가면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다”면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 그러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며 탈당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탈당에 이어 안 의원은 지난달 21일 독자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안 의원은 “국민과 새정치민주연합 당원, 지지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며 “그 빚을 갚을 길은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를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면서 올해 2월 설 연휴 전까지 신당을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큰 둑이 무너지다‥연쇄탈당


이와 같이 안 의원이 더민주 탈당과 함께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자 더민주 호남지역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쇄탈당이 연출됐다.


안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에 앞서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과 황주홍 의원(전남 장흥·강진·영암), 호남지역 의원은 아니지만 전라남도 영암이 고향인 문병호 의원(인천 부평갑) 등이 지난달 17일 더민주를 동반 탈당했으며 20일에는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구갑)이 탈당을 단행했다.


이어 23일 광주 북구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임내현 의원이 “2006년 입당한 이래 지방선거 패배, 대선 패배, 총선 패배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결 같이 지지를 보내고 몸담아 왔지만 이제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안철수 신당과 함께하며 낡은 진보를 청산하고 중도세력 나아가서 합리적 보수까지 외연을 넓힘으로써 정권교체의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며 탈당에 동참했다.


28일에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에 경찰 수뇌부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했던 권은희 의원(광주 광산구을)이 광주시당에 팩스로 탈당계를 제출하고 탈당을 공식화 했다.


같은 날 수도권 현역 의원인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구갑)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저는 19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현실정치를 떠나고자 한다”며 20대 총선 불출마 입장 표명과 더불어 탈당을 선언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를 넘긴 병신년 새해에도 탈당은 이어졌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공동으로 창당하며 당내 비주류 핵심으로 꼽히던 김한길 의원이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오늘 당을 떠난다.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다시 시작하려 한다”며 총선승리와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위해 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친노의)패권정치는 급기야 어렵사리 모셔온 안철수 의원을 밖으로 몰아내고 말았다”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의 무서운 힘 앞에 저의 무력함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친노 세력을 정조준 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김한길 의원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의원 외에도 심각하게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 규모는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다”며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준(현역의원 20명 이상)을 이미 넘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발언대로 지난 8일 수도권 4선 의원인 김영환 의원(경기 안산시 상록구을)도 탈당을 강행했다.


이처럼 안철수발(發) 탈당이 연쇄 탈당이 어지면서 더민주의 의석수는 127석에서 117석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10일 탈당을 예고하고 있으며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주승용 의원이 오는 13일 탈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득 될게 없는 분열


이에 따라 더민주를 떠나 호남지역 민심을 발판삼아 창당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안철수 신당과 천정배 신당, 박준영 신당 등이 총선을 앞두고 광범위한 통합을 이뤄내 현재의 양당구도를 깨고 제3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제1야당이 기존의 더민주와 통합신당, 이렇게 둘로 쪼개져 야권의 지형이 새롭게 재편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는 4월 13일 치러질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권의 표가 분산돼 불과 몇 천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는 수도권은 여당이 압승을 기록할 공산(公算)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수도권 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충청권 역시 여권 인사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야권은 수도권과 충청권 대부분을 여당에게 내주고, 야권 강세지역인 호남에서도 더민주와 통합신당의 나눠먹기로 승자 없는 공허함만 남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기 위해 더민주와 통합신당은 총선이 가까워지면 연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은 신당을 창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합종연횡(合從連衡) 등의 연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유일한 야권 대선주자 ‘옹립’
‘공멸’, 총선·대선 둘 다 놓쳐


통합신당의 궁극적 목표


그렇다면 야권의 지형 재편은 더민주나 통한신당 둘 다 총선에서 득 될게 없는, 오히려 자폭에 가까운 행보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김한길 의원과 박지원 의원 등이 통합신당 카드를 문재인 대표에게 꺼내든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야권이 이미 내년 총선을 포기하고 차기 대선을 위해 철저히 망가지는 ‘총선 포기론’을 거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야권의 분열은 총선에서 지지층의 표를 분산시키는데도 안철수 의원 등이 통한신당을 추진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더민주를 밀어내고 제1야당으로 부상하기 위함이라기보다 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문재인 대표와 친노 측에 전가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평론가는 “분열로 인해 총선에서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게 되면 통합신당 세력은 그 책임을 문 대표와 친노 측에 물어, 유력 대선주자인 문 대표를 끌어내리고, 집권여당 후보에 맞설 강력한 야권 후보로 안 의원을 옹립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평론가의 발언은 현재 문재인·안철수·박원순 등 야권의 빅3 대선주자 가운데 안 의원을 유일한 야권의 대선주자로 옹립하기 위해 통합신당 세력은 이미 총선을 포기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안 의원 등 통합신당 세력이 탈당과 신당 창당의 배경으로 총선 승리나 제1야당 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정권교체’에 역점을 두고 있어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총선 포기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야권 재편의 진원지


이러한 총선 포기론은 지난달 5일 동아일보 칼럼에 안 의원의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거론됐다.


당시 한 교수는 칼럼에서 “제1야당 지도부의 협량한 정치력, 강고한 기득권, 골수에 밴 듯한 흑백논리, 철저한 무책임이 거대한 후폭풍과 민심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패권적 당권세력이 털끝만큼의 반성도 없이 자신의 입맛대로 독주하겠다니, 이것은 오만과 착각의 극치요 당을 지지해온 유권자에게 떠날 테면 떠나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같다”며 문 대표와 당내 주류세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한 교수는 이어 “상황이 절박하면 길이 열리고 막다른 골목에 서면 시공이 압축되며 모든 질료가 섬광처럼 분해된다. 분노와 초조, 환멸, 압력과 열망이 뒤엉켜 의식의 탈바꿈을 이끈다”며 “묻지 마 투표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정당에 예속된 유권자의 의식이 해방된다. 이런 자유인의 물결은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나는 이런 의식 변화가 커다란 정치 변동을 이끌 가능성을 예상한다. 이런 물결을 타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들이 모여 야권을 개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야권의 지형 재편을 예고했다.


아울러 한 교수는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돌연변이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면 신당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고 야권 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1야당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아직까지는 127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처럼 보이지만 순식간에 군소 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이미 내홍을 겪고 있는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망성이 없음을 관측하고, 차기 대선을 위해서 제1야당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안철수 배후설’


이와 관련해 더민주 혁신위원을 지낸 서울대 조국 교수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철수 의원의 강력한 지지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총선 포기론이 실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의 지적은 안 의원의 멘토로 알려진 한 교수가 총선을 포기하고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문 대표와 친노세력에 전가한 이후 차기 대선을 노려야 한다고 안 의원에게 주문했고, 이를 안 의원이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얘기다. 즉, 안 의원이 배후에는 한 교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의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거론됐던 한 교수는 지난 7일 위원장직을 수락해 ‘안철수 배후설’을 뒷받침했다.


공멸(攻滅)의 길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교수의 총선 포기론 시나리오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면서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분열로 인해 여당에게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180석 이상을 내주게 되면 한 교수의 시나리오대로 야권은 철저하게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야권에서는 책임론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동정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동정론이 야권 지지세력에 이어 중도층까지 확대되면 차기 대선에서 진보세력과 중도세력의 규합으로 야권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총선 참패의 책임론에서 문 대표 측 뿐만 아니라 통합신당 세력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더민주와 통합신당이 총선 참패의 책임을 놓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인다면 동정론은커녕 양측 모두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처럼 총선에서 참패한다면 통합신당 세력들 역시 야권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오히려 문 대표 측의 역공에 무너질 수 있다.


또한 더민주와 통합신당이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공방을 벌인다면 여론의 비판을 불러와 총선과 대선을 모두 놓쳐버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승리의 여신은 누구 편?


이처럼 20대 총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불거진 야권의 분열은 총선 포기론을 낳고 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참패를 기록한다면 과연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둘 중에 누가 철저하게 망가진 야권의 희망으로 떠오를지 사뭇 궁금해진다.


둘 다 아니라면 이들의 경쟁 구도를 지켜만 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회를 틈 타 야권의 맹주로 급부상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이 모든 것은 총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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