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는 ‘학문 생태계’…국가 미래 멍든다

▲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국내 고등교육의 산실인 대학교가 시름하고 있다. 정부가 대학정원을 오는 2023년까지 16만명 감축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대학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인위적 재편 움직임에 상아탑이 멍들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대적 정원 감축의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생존을 위해 겉으로 보이는 수치에만 치중한 나머지 학문 연구 기관으로서의 내실 다지기에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내 대다수 대학들은 냉정한 현실의 흐름과 상아탑 고유의 역할 간 괴리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 ‘글로벌 대학’이란 거창한 구호를 내걸기에 앞서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할 상황에 처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국내 대학들이 당면한 과제와 현재 각 대학들이 추진 중인 특성화 전략에 대해 집중 점검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주>


학령인구 감소 추세, 정부 지원축소 압박까지 ‘이중고’
인문학·예체능 죽이기 ‘만연’…인위적 구조 재편 ‘문제’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분골쇄신’의 각오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극한 경쟁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런 추세는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몇 년 전 부터는 등록금 의존 경향을 낮추기 위해 연구 작업물을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주식회사를 만들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움직임도 속속 관찰되고 있다. 아울러 유행처럼 번진 ‘제2캠퍼스’ 설립 붐은 글로벌 대학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또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입시전형 일정에 치열한 신경을 펼치는가 하면, 해외 인재들을 끌어오기 위해 해외입학설명회를 열고 경쟁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 같은 치열함은 교수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철밥통’으로 여겨졌던 교수직은 더 이상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강의평가에 따라 인사 불이익이 돌아가거나, 실적이 부진한 교수들은 ‘퇴출 1순위’에 오른다. 충분한 연구 실적과 우수한 강의 능력을 동시에 요구받는 ‘피곤한’ 직업이 된지 오래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등으로 불리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취업으로 고민한다.


대기업 취업을 위한 이른바 ‘고 스펙’을 만들기 위해 해외어학연수와 인턴십 등에 뛰어든다. 물론 고시 공부나 공무원 시험에 발을 걸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대학 안팎에서 구성원들 모두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학의 경쟁력 자체가 높아졌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렇다’는 대답을 쉽게 꺼내놓지 못한다.


해외유학생들이 많아지고, 학교 건물이 최신식으로 바뀌는 등 외형적 발전을 거듭했지만 대학이라는 기관의 근본 취지에 맞는 경쟁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엔 ‘짙은 그림자’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제공=뉴시스)

‘정원 감축’ 후폭풍


최근 대학가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정원 감축이다.


교육부가 오는 2023년까지 국내 대학의 총 정원을 16만명 감축시키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대학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교육부가 이 같은 목표를 제시한 것은 국내 학령인구 자체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


이는 곧 해당 시점 이전에 16만명의 정원을 줄이지 못하면 대학이 소화할 수 있는 정원이 그 만큼 남게 된다는 뜻이다.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방법을 동원해 학령 감소와 대학 정원간의 괴리를 ‘연착륙’ 시키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교육당국이 빼든 카드는 정부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 중 ‘정원감축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음으로서 대학들에게 정원 감축에 대한 반 강제적(?)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특성화사업(CK I·II)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이른바 ‘명문 사립대’들이 대거 탈락했다. 이에 반해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원감축 계획을 제출한 충청권역 대학들이 그 자리를 대거 차지했다.


또 무려 10%에 달하는 정원감축 계획을 밝힌 전북대는 대학특성화사업 최고액을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즉, 교육당국은 각 대학들의 정원감축 의지를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음으로써 실제 정원 감축으로 자연스레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업계관계자들은 “당장은 힘들지만, 어차피 인구구조학상 앞으로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들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면서 “정원감축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급격한 정원감축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추가적 논의 역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예전부터 지속돼왔지만, 교육부가 구체적인 시점과 정원감축 규모를 밝히면서 취업률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다수의 기초학문들이 대학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교육업계에 따르면 현재 기초인문학 관련 학과가 통폐합된 곳은 이미 수십군데에 달한다.


중앙대, 청주대, 경남대, 대전대, 배재대, 동아대 등에서는 국문과나 철학과, 혹은 각종 어문학과와 복지학 관련 학과가 문을 닫기로 결정됐다.


해당 학과의 교수들과 학생들의 반발로 이들 학교에서는 여전히 항의 시위 등 갈등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친 사립대 비중


게다가 대학 정원이 감소하면서 대학들의 재정 문제 역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정원 감소는 곧 재정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업계에 따르면 호주나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전체 대학생의 90% 내외가 국공립대에 소속돼 있는 반면 국내 대학의 경우 20%대에 불과하다.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역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의 주요 사립대가 25~30% 대에 불과한 반면 국내 사립대는 6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사립대의 재정을 심각하게 위협할 잠재적 불안요소가 된다. 정원이 줄어들수록 대학의 곳간은 그만큼 말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 지원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OECD 국가의 고등교육 공교육비 가운데 정부가 지원하는 재원의 비중은 평균 70% 안팎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 사진=뉴시스

지방대의 위기


대학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서울 소재의 주요 대학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역 대학들의 경우 오는 2017년까지 평균 10% 내외의 정원 감축이 예정된 곳이 대부분이다.


통폐합을 예고한 일부 대학들에선 대학과 학생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대학들은 학교의 재정지원 카드를 쥐고 있는 정부와 학생들 사이에 끼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샌드위치 상태가 되고 만 것.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싶지만 ‘대의’를 위해 구조조정의 칼을 빼든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지역대학에 강한 후폭풍이 불어 닥치고 있는 것은 지역특성화 사업과 연계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관계없는 학과들을 묶어 기이한(?) 학과명을 가진 신설학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학과 특성화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이 자행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기초학문이나 예체능계열 등 취업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비실용’ 학문들이 대거 포함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기초학문에 대한 경시 풍조와 대학의 존재 목적에 대한 몰이해가 겹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지방대학 특성화라는 이름으로 수십년 이상의 전통을 기진 학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률과 충원율만이 대학 구조조정을 결정케 하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지표가 아니다”면서 “특히 수도권대와 지역 대학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지표부터 재점검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학마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이나 지표를 사용함으로써 어문학과를 비롯한 인문·자연·예체능 죽이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이 인위적인 방식으로 특정 분야에 치중한 구조조정을 강항하다가는 결국 인력 불균형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고 지적한다.


생존을 위해 일정 부분의 조정 작업은 불가피하다고 쳐도 근본적으로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률과 충원율이란 ‘절대 장벽’ 앞에 지역 대학들이 처한 상황은 절박하기만 하다. 다만 대학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이 실용학문 위주로만 지역 대학의 교육이 돌아서게 된다면 결국 수도권 대학으로의 편중 현상만 가속화시킬 것이란 점을 인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대학 교육 생태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대학 특수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 사진=뉴시스

패러다임의 전환


일각에서는 대학의 위기 상황을 대학교육의 시스템 자체에서 찾고 있는 시각도 있다. 정부 정책과 떼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요구치와 대학의 인재 육성 역량 사이에는 아직도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취업 포털은 대학생 절반 이상이 자신의 대학 전공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입학 전에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였다. 이는 곧 대학의 전공 교육이 학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게다가 국내 대학생들은 전공 공부보다는 공무원 시험과 영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에 따르면 3학년 이상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주당 평균 3.94시간을 영어 공부에, 2.4시간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전공 시험을 위해서는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대학생들이 이른바 ‘스펙’ 비용으로 사용하는 비용은 인당 1000만원이 훨씬 넘는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교육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학생들이 선택한 전공과 취업이 별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공만 공부해서는 취업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들이 이런 상황을 좌시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학들은 취업관련 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단순 상담이나 정보 제공 등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학 교육 시스템 차원의 대대적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 교육과 실제 직업과의 연계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과목이나 수업 방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요지다. 이는 곧 대학교육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대학이라는 존재의 근본 목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교육업계의 치열한 고민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근본 해법에 대한 갈증은 갈수록 커져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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