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수건 쥐어짜기(?)…‘일방통행’에 뿔난 민심

▲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나라살림을 위한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가 각종 세제 개편 작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민 증세’로 비판받고 있는 정부의 세제 개편 작업은 ‘부자 감세’ 논란과 함께 심각한 사회적 반발을 낳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사실상 ‘증세’라는 점이 명백하면서도 표심을 잃고 싶지 않은 정부는 ‘증세’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


시민들은 물론, 여야를 불문한 정치권에서도 증세가 아니라면서도 ‘간접세’의 집중 인상을 예고한 정부의 ‘꼼수’에 맹비난을 퍼붓는 형국이다. 간접세가 상대적으로 소득 불균형을 높이는 ‘역진세’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재정 적자를 서민들의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는 지적이 등장한 것이다.


정부가 내년에도 올해에 비해 5% 이상(20조원)확대된 예산을 편성할 것으로 밝힌 가운데, 정부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 2008년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만 있다.


결국, 증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증세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제대로 걷어서 제대로 쓰겠다’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담뱃값 2000원 인상으로 2조 8000억원 추가 세금 확보
부족액 연간 10조원…세수 진도율은 지난해에 못 미쳐


정부는 지난 달 세제개편안을 통해 ‘배당소득 증대세제’ 도입을 밝혔다.


요지는 내년부터 고배당 기업의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 소득에 대해 원천징수세율을 인하하겠다는 것이다.기존 14% 수준에서 9%까지 낮추겠다는 것.


아울러 종합과세가 적용되는 고소득자 역시 25%의 분리과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를 두고 정부는 “기업의 배당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며 개정 추진 배경을 설명했지만, 곧바로 ‘부자 감세’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주식 소액투자자들에게도 상당 부분 혜택이 돌아간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결국은 주식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잇단 간접세 인상


이후 정부는 담뱃세에 이어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까지 잇달아 선언, 불거진 논란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


지난 11일 정부는 ‘종합 금연 대책’을 내놓고 내년부터 담뱃값을 기존 2500원에서 4500원 수준까지 대폭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흡연율 감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세부안을 끼워 넣고 보기 좋게 포장을 마쳤지만, 결국은 세수 확보를 위한 증세 대책에 다름 아니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2000원 인상안이 원안대로 관철될 경우, 3조원 가까운 세금이 추가적으로 걷히게 된다. 또 담뱃값에 ‘개별소비세’를 신설하면서 담뱃세목이 늘어났다.


특히 정부는 담뱃값에 대해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곧 담뱃값이 높아질수록 개별소비세 역시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정부는 담뱃세 인상으로 논란의 불을 지피더니 다음날인 12일 곧바로 ‘연타’를 날렸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의 지방세까지 대폭 인상한다고 밝힌 것. 정부에 따르면 향후 2017년까지 자동차는 100% 인상되고, 주민세 역시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오른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으로 예상되는 추가 세수는 약 1조 4000억원. 결국 담뱃세까지 총 4조 2000억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 사진=뉴시스

하지만 담뱃세부터 자동차세, 주민세까지 소득과 무관하게 일률 부과되는 세금을 잇달아 인상 발표하면서 서민층의 부담만 높인다는 ‘분노의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는 세금 정책을 통해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 잡는 순기능을 담당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서민 쥐어짜기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조세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조롱 섞인 비아냥이 등장하는 이유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담뱃세 인상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편중된 세제혜택을 줄여, 사회의 과세공평성을 높이는 개편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화나선 정부


정부는 서민 증세 논란이 일자,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정부가 적극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증세를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아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도 일조했다.


그는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 이슈에 대해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대답, 언론이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인정했다”며 거친 공세를 쏟아 붇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급하게 ‘소방수’로 등장했다.


그는 “정부가 증세로 정책 전환한 것이 아니다”면서 “담뱃세 인상은 국민건장 증진을 위해, 주민세는 지자체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증세는 경제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계획했던 있는 국세 세입 규모는 약 216조원. 하지만, 상반기 동안 거둬들인 세수는 1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부진한 45% 수준의 세수진도율에 그친 상황. 정부 역시 10조원 수준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수는 덜 들어왔는데도 내년 예산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확대했다. 정부는 내년에 올해보다 5.7% 늘어난 예산을 투입한다.


결국 전문가들은 세수 부족현상이 심화됐음에도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증세 카드를 완전히 떼놓고 정책적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사진=뉴시스)

여야, 한 목소리 비판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세금 인상책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당 일부 중진들까지 담뱃값과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에 대해 ‘서민 증세’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간접세를 통한 세수 확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부자 감세 정책을 철회하고,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조세 형평성을 고려해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간접세 인상은 물가 인상의 주범이고 소득 재분배 역할을 해야 할 조세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소득 역진성이 높아 서민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간접세를 통한 세수 확보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윤호중 제2정조위원장 역시 “부자 감세 철회, 법인세 정상화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서민 증세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국민적 조세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모든 서민 증세 법안에 대해서는 우선 여야,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서민·중산층의 과중한 부담을 국민과 상의 없이 발표해 놓고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일 뿐 증세는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특히 정부가 ‘증세는 없다’고 수차례 얘기해놓고 사실상 세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부가 담뱃세 인상안을 발표하자마자 왜 자동차세와 주민세 인상을 동시에 발표하느냐”며 “재정이 어려우면 서민 주머니만 짜겠다는 것이 아니냐.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냐. 없는 사람 주머니를 털어서 복지 정책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원유철 의원 역시 “복지 증대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증세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방법과 절차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증세가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눈 가리고 아웅 식’이 아니라 절차와 과정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공개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서진=뉴시스)

숨어있는 꼼수


잇단 세금 인상을 두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부의 ‘일방성’에 있다. 세금 인상의 직접 영향을 받는 것이 국민들임에도, 국민들을 전적으로 배제한 일방통행에 나선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복지 확대 등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사회적 논의가 배제된 가운데 간접세 위주로 손쉬운 증세 카드를 사용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2000원 인상 시 담뱃세 하나만으로도 내년에 늘어나는 재정수입 13조 4000억원 가운데 20%(2조 5000억원을 가정했을 때)를 채울 전망이다. 반면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강조했던 ‘재정개혁’을 통한 추가 수입은 연간 87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일각에서는 ‘손 안대고 코푼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숨어있는 세원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쉽게 추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담뱃값 인상의 경우 지방세(담배소비세 및 지방교육세)가 포함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량 감소는 지자체의 복지 디폴트를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담뱃값의 13% 수준의 개별소비세를 국세로 신설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해당안이 시행되면 지방세의 몫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담뱃세 세수 증대 효과 2조 8000억원 대부분이 국세로 돌아간다면 결국 지방정부 재정 악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한 시민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한 예산절감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채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른 수건 쥐어짜기’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의원 연금 축소를 비롯해 각종 특권을 먼저 내려놓고, 국민들과의 합의 과정을 거쳐 증세를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사진=뉴시스)

주류세 인상 가능성은


정부가 잇단 간접세 인상에 나서면서 주류세 인상 가능성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담뱃값에 포함된 건강증진기금이 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주민세, 자동차세, 담뱃세 등 대표적 ‘서민세’가 줄줄이 인상되는 가운데 주류세 역시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나온다.


실제 지난 6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남긴 발언까지 회자되면서, 주류세 인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문 장관은 “하반기에는 건강증진 예방 문제가 이슈가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은 세계에서 음주량과 그 폐단이 가장 많은 나라임에도 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담배에 부과하는 건강증진기금을 술에는 부과하지 않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긴 바 있다.


게다가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적용해 담뱃값 인상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주류세 역시 OECD 평균 이하라는 점을 강조해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내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년 이후 주류세 인상 검토 작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주류세 인상은 담뱃값과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시기와 인상폭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게다가 시점이 좋지 않다.


게다가 서민증세 논란으로 여론이 눈총이 따가운 가운데 주류세 인상까지 감행할 경우 정부로서도 그 부담감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대적 저항 움직임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회입법조사처를 비롯한 관련업계에서도 주류세의 조세저항이 특별히 크다는 점을 들어 ‘성급히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관계자는 “담뱃값 인상으로 이미 사회적 논란이 큰 상황에서 주류세 인상안까지 등장한다면 대대적인 증세 저항 운동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이는 주류업체 입장에서도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는 23일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함에 따라 담뱃값 및 주민세 인상 등을 둘러싼 여야의 증세논란이 ‘제 2라운드’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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