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 날려도 파생상품 무서워 손도 못 대”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1차는 소주로 간단히 하고, 2차는 룸으로 간다. 자칫 잘못하면 은행이 마진을 무지 많이 남기는 것으로 알아버릴 수 있다. 순박한 사람들(중소기업)한테 그런 모습을 비추면 오히려 디마켓팅이 될 수 있다”

은행들은 어떻게 중소기업에 키코(KIKO)를 팔아넘겼나를 알 수 있는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다.

지난 2010년 검찰이 키코(KIKO) 피해자를 수사하면서 확보한 은행측 녹취록에는 은행이 키코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마케팅 행태를 자행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키코 공대위 검찰 재수사 촉구
4개 은행들, 고위험 알고도 장기거래 유도했다?


전략적으로 키코 판매?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4월 8일 여의도에 다시 모였다. 2010년 검찰이 키코상품을 판매한 4개 은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수사보고서의 녹취록을 인용,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했다.

공대위는 “키코 사건은 검찰 수사결과 은행의 무혐의로 결론지어졌지만, 2010년 작성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은행들이 키코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2008년 1월 8일 녹취록에는 “옵션상품이 이렇게 위험한 상품인줄 확실히 깨달았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은행이 키코 판매를 통해 억대에 가까운 마진을 챙긴 정황도 제기했다.

녹취록 곳곳에는 “그래도 4만5천불 이상 남는다. 선물환은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요번 건을 하면 마진 이빠이(최대로) 해서 11만불 이상 나온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하게 마진을 많이 땡긴다” 등의 발언이 나왔다.

공대위는 “은행들이 선물환보다 키코가 더 많은 이익을 남긴다고 판단, 전략적으로 키코를 판매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수출 中企 ‘싹쓸이’

키코(KIKO)는 '녹인 녹아웃'(Konck in-Knock out)의 약자로 기업과 은행이 미리 정한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기업이 환차익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를 떠안도록 설계돼 있는 환(換)테크 파생금융 상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환율 하락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내 많은 중소기업들이 가입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자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으면서 크나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2010년 10월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키코 피해기업은 738개사, 피해금액은 3조2247억 원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키코상품 판매 이후 1년이 지난 2008년부터 환율상승으로 7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중 200여 기업이 부도·파산 등으로 회복불능 상태에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키코 피해기업들이 민사소송에 패소하면서 재판에서 이긴 은행들이 수천만원대의 법정소송비용을 피해기업에게 청구하고 있다. 최대 1000여개사 10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거래 손실 급증


키코 사태를 겪었던 중소기업들은 원/달러 환율하락으로 인해 실적이 악화되고 있지만 통화선물 등의 환 헤지를 통해 환율변동을 할 수 있지만 키코 사태를 겪으면서 환 헤지를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지난해 환율변동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환 헤지를 통해 수익성을 유지한 것과 달리 국내 중소기업들은 환율문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해 문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100여개의 수출중소기업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16%가 환율문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

지난해 6월 기준 116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연말 1055.4원으로 내려앉았다. 수출대금의 10%가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은 키코 여파로 인해 환율문제는 내버려두고 있다. 적자전환 이유 대부분도 이런 환율문제 때문이다.


대법원까지 은행편?


지난해 9월 대법원은 “키코 상품은 환 헤지에 부합한 상품으로 불공정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은행측의 손을 들어줘 많은 중소기업에게 충격을 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이인복·박병대·양창수 대법관)는 지난 9월 26일 수산중공업·세신정밀·모나미·삼코가 “키코 상품 계약에 따른 피해액을 배상하라”며 우리·한국씨티·신한·한국스탠다드차타드·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 4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선고에서는 수산중공업과 세신정밀(피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게 패소를 확정됐다. 또 세신정밀(피고 신한은행)과 삼코(일부) 사건에선 기업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반면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던 삼코 사건 일부는 기업 일부 승소 취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던 모나미 사건은 기업 패소 취지로 각각 파기환송 했다.

재판부는 키코 계약이 불공정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거나 사기·착오로 인한 계약이어서 취소해야 한다는 기업 측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간 기업들이 주장해 온 무효, 취소, 콜옵션 행사 포기,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 등의 상고이유는 모두 기각했다.


키코 재수사 촉구


지난 4월 8일 보다 못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일부 의원들이 8일 수사당국에 키코 사태 재수사를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주·민병두·박민수·박영선·서영교·이종걸·임내현·전해철·정세균·정호준·최민희 의원은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2010년 당시 키코 상품 판매 4개 은행에 대한 검찰의 사기혐의 수사보고서 일부를 공개하고 당국의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검찰은 키코 사건 수사기록 일체를 공개하고 키코 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재수사를 촉구한다”며 “키코 사태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한 금융감독당국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은 키코가 위험한 상품인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수수료가 없다며 키코를 판매한 은행의 사기행각도 확인됐다”며 “은행이 키코 판매를 통해 엄청난 마진을 취했음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뒤늦게 나서


한편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주요 금융회사 파생상품 담당자를 소집, 수출 중소기업에 고위험 환헤지 상품을 팔 때 해당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릴 것을 주문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자칫 중소기업에 큰 피해를 준 2008년 ‘키코(KIKO)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5월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산업은행, 삼성증권, 도이치뱅크 등 17개 금융회사의 파생상품 담당 임원을 불러 ‘목표상환선도’(TRF·Target Redemption Forward) 등 고위험 환 헤지 상품 판매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TRF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경우 일정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반대로 상승할 경우 무한대의 손실을 볼 수 있어 제2의 키코로 불리는 상품이다.

키코 사태를 겪으면서 원/달러 환율문제에 대해 환 헤지를 전혀 하지 않는 국내 수출중소기업 리스크가 커지면서 제2의 키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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