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강은교 시인의 좋은 시 「물길의 소리」에서 내 마음(以意)을 두들기는 그림 세 점이 펼쳐짐을 차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고백하자면 이 시에서, 가장 먼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가 1875년에 그렸다는 명화 <비 내리는 예르>가 떠올랐다.

물길의 소리/강은교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리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

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

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

고기들이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내리는 예르,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아트 박물관.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내리는 예르,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아트 박물관.

십일월과 십이월이 임무 교대로 마주치는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이다. 하릴없이 저녁이 와서 앉히는데 비가 후드득, 함께였다. 빗물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 바삐 바삐 거실에서 안방으로 달려갔다.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귀에다 양 손을 사모하듯 대보았다.

십일 년 만에 박웅현 작가의 저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2011년)를 재독(再讀)하고 있다.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다음이 그것이다.

문학동네 판 《안나 카레니나》를 번역한 박형규 선생의 해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악인도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보통명사는 등장인물 성격의 한 가지 측면만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스님이 ‘사람은 물이다’라고 표현한 것과 일맥상통하죠. 물은 고요한 곳으로 흘러갈 때는 얌전하지만 폭포를 만나면 거세지죠. 물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저도 그래요. 나쁜 사람 만나면 거칠어지고, 좋은 사람 만나면 착해지고, 조용한 사람을 만나면 차분해지죠. 이게 저고, 안나고, 브론스키고, 바로 우리들입니다. 때문에 톨스토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아주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극적인 게 아니라 매우 사실적인 거예요. (같은 책, 300쪽 참조)

‘사람은 물이다’라는 구절에서 퍼뜩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앞의 시 「물길의 소리」가 그것이다. 이 시는, 무려 내가 네 번이나 탐독했던 철학자 강신주의 역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년)에도 보인다. 또 천양희·신달자·문정희·강은교·나희덕 5인의 공동 시선집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북카라반, 2020년)에도 시가 나온다. 그러니까 나는, 부산 동아대학교 명예교수인 강은교(姜恩喬, 1945~ ) 시인의 「물길의 소리」와 시절인연이 깊다고 농담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와 그림의 마주침, 이의역지以意逆志

이의역지(以意逆志)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자성어는 본래 맹자의 공부법에서 유래됐다. 고전 《맹자》만장상편이 그 출처다. 원문과 해석을 같이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시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글로 말을 해치지 않고, 말로 뜻을 해치지 않는다. ‘자신의 뜻으로 작자의 뜻을 찾아 아는’ 것이 시를 안다고 할 것이다. [說詩者, 不以文害辭, 不以辭害志, 以意逆志, 是爲得之, 如以辭而已矣]

쉽게 정리하자. 그러자면 맹자가 말한 ‘이의역지’란 내 마음의 소리(以意)-지식-를 가지고서 시인(작자)의 뜻을 헤아려야(逆志)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내 마음의 소리, 지식인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강조한 공부법 팔자[호학심사好學深思, 심지기의心知其意]와 밀접한 관련이 맺어진다. 한자인 여덟 글자를 광고인 박웅현은 책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이 팔자는 행복으로 ‘나’를 안내하고 견인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 心知其意,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비단 책뿐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놓으면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잔디이론으로 봅니다. 저쪽 잔디가 더 푸르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이십 대라 좋겠다, 영어도 잘하고 부럽다, 잘 생겨서 좋겠다, 돈 많아서 좋겠다, 다 좋겠다예요. 그런데 어쩌겠다는 겁니까. 나를 바꿀 수는 없어요. 행복을 선택하지 않은 거죠. (박웅현, 《책은 도끼다》, 346쪽 참조)

내 마음(心)의 소리(音)는 호학심사 심지기의, 라는 팔자의 공부를 개인이 내공으로 무릇 긴 세월에 걸쳐서 쌓게 되면 자연 나의 뜻, 생각, 지식의 결정체인 ‘意’가 성립된다. 이 점을 철학자 강신주는 책에서 ‘라이프니츠’라는 철학자를 들어 강은교의 시를 해석했던 셈이다. 다음이 그것이다.

라이프니츠(1646~1716)라는 철학자를 아는지요? 모든 개체들에게는 타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과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을 하여 유명한 인물이지요. 그렇지만 《신인간오성론》에서는 개체에게는 창이 있을 수도 있다는 다소 모순된 주장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미세 지각(Petites Perception)' 이론입니다. 미세 지각 이론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일상적인 지각은 너무도 다양한 수많은 미세 지각들이 쌓이고 종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의 미세 지각 이론을 접하다 보면 우리는 교향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됩니다. 웅장하고 거대한 교향곡의 흐름이 폭포 소리에 비유될 수 있다면, 교향곡을 구성하는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비올라 소리, 클라리넷 소리, 드럼 소리 등은 물방울 하나하나의 소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중략) 강은교 시인이 노래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물가에 함께 앉아 있던 다정한 지인은 시인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넵니다.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말이지요. 이 짧은 한 마디의 말로 시인은 물소리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듭니다.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85~87쪽 참조)

어쨌든 나는 강은교 시인의 좋은 시 「물길의 소리」에서 내 마음(以意)을 두들기는 그림 세 점이 펼쳐짐을 차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고백하자면 이 시에서, 가장 먼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가 1875년에 그렸다는 명화 <비 내리는 예르>가 떠올랐다. 그림을 보자. 숲이 보인다. 계절은 여름 같다. 나무와 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 산등성이로 희미하게 마을이 드러난다. 강가에 조그마한 배가 한 척 덩그러니 매어있다. 화가의 그림에서 빗방울은 서로 크기를 다르게 해서 동그라미를 그려낸다. 아름답다. 그런데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빗방울이 툭, 툭툭, 툭툭툭, 하고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관람자의 귓가에 심금으로 어느덧 파고든다. 잔잔하게 음악처럼.

이 그림을 책에 소개한 이정아 작가는 다음과 같이 화가 카유보트를 설명했다. 다음이 그것이다.

카유보트는 인상파 화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우리가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수많은 걸작을 감상할 수 있는 수혜를 누리는 것은 모두 카유보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가보다는 수집가로 더 유명하던 카유보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으로 친구인 인상주의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했다. (중략) 인상주의 작품의 최초 수집가가 바로 카유보트다. 1894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컬렉션에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드가, 세잔의 중요한 작품 68점이 포함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면서 모든 작품들이 미술관에 전시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정아,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231쪽 참조)

시에서, 내가 두 번째로 생각하며 마주친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명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1889년 作)이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잘 알려진 빈센트의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하다. 유명해서 오히려 소홀하게 보고 말았다. 그런데 강은교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이 그림을 보는 내 안목이 한층 성숙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감정이 들어서 행복감이 십일월인데도 생겨난다.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라는 부분이 특히 빈센트의 그림처럼 나를 치유하며 다독인다. 그래서 그랬는가. 그림 속의 남녀 중의 남자가 강은교 시에서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그림이 보이면서 해석된다.

그림 속의 남녀는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인다. 중년의 바람 난 커플의 데이트 장면일까. 아니면 지인 친구 사이의 강변 데이트일까.

고만고만 행복을 낚을 것인가

나름나름 불행을 낚을 것인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저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빈센트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강물이, 별들이 그렇게만 속삭이는 것처럼 이 그림은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명화를 말하자면, 파리에서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 장 루이 포랭(Jean-Louis Forain, 1852~1931)이 그린 <낚시꾼>(1884년 作)이란 작품이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중절모의 남자는 겉옷을 옆에 벗어 던지고 낚시에 집중한다.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의 곁을 지키는 개도 그림에는 등장한다.

장 루이 포랭, 낚시꾼,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사우샘프턴 시립미술관.
장 루이 포랭, 낚시꾼,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사우샘프턴 시립미술관.

단순히 낚시에 몰입하는 모습은 아니다. 어쩌면 그림 속의 낚시꾼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 까지도 일찌감치 체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오늘도 낚시를 하는 것일지도.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개는 더 이상 개 소리를 내지 않고 주인처럼 강물을 하염없이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언제까지 저 낚시꾼처럼 물길의 소리를 듣게 되고, 또 들을 수 있을까. 햐, 시 좋고 그림들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답다.

◆ 참고문헌
강은교,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문학사상사, 2004.
천양희·강은교 외,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북카라반, 2020. 147쪽 참조.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동녘, 2010. 84~99쪽 참조.
박웅현, 《책은 도끼다-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북하우스, 2011. 300쪽 참조.
이정아,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팜파스, 2015. 229~231쪽 참조.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서희정 옮김 《인상주의: 일렁이는 색채, 순간의 빛》, 미술문화, 2021. 78~79쪽 참조.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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