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60)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사진의 기술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예술성과 등장인물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서 종종 ‘트리밍 효과’를 기술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문제는 과(過)함에 있는 것이지 조금(寡)만 쓰면 나는 맛을 내는 양념이 된다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리밍 효과의 측면에서 새로 쓴 진은영의 「청혼」은 이전의 「청혼」과 전혀 다른 시적 묘사에 성공했다.

청혼/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

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 모직양말,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 모직양말,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한 사람의 존재 가치는 자기 내부에서 이뤄지지 않고 상대방을 통해, 외부자에 의해 입증된다. 이를테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 거꾸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 불신당하고 있다는 예감……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박혜진, 언더스토리, 18쪽 참조)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그림의 노부부처럼

이번 주말. 토요일에 친구의 딸이 결혼식을 올린다. 친구의 딸과는 여러 차례 같이 밥도 먹고 선술집에 치킨집 노래방도 같이 어울려 다닌 적이 지난 과거이지만 여러 번이었다. 친구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부녀가 데이트를 즐긴다고 희희낙락, 이혼 후 혼자가 된 내게 은근 자랑했었다. 그런데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침울한 표정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까 딸에게 어느 날인가, 한 잘 생긴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와 연애를 끝내는 청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사천리로 딸과 남자친구는 부모에게 승낙을 받고 둘이 가족이 되는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 담긴 예쁜 청첩장도 찍었고 주변에 돌렸다. 청첩장을 물론, 나도 한 달 전인가, 친구에게 선물처럼 받긴 했다.

그 즈음에 이르러서, 나는 진은영(1970~ )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년)를 오프라인 한 서점에서 직접 구입했다. 앞의 시편 「청혼」은 본문 첫 장(9쪽)에 그 전문이 보인다. 도대체 이 시가 얼마나 좋았으면, 인천 근대문학관 유리벽에도 커다랗게-하얀 글씨-장식되어서 등장한다.

또 하나, 같은 제목을 단, 그러니까 「청혼」이란 시는 천양희 시인의 필사 노트 《나를 살린 문장들》에서도 소개되어 나온다. 그런데 5연의 시가 아니고 단연 구조. 이 점에서 달라 보이면서 차이점이 생겨난다. 다음이 그 시이다.

청혼/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받고 싶고, 당신에게

비를 주고 싶고, 아첨하지 않는 순간 속에 살고 싶고,

모든 맹세들을 당신과 나의 팔에 적었으면 좋겠고,

술래였던 당신을 잡고 싶고, 별들의 소리가 항상 우리의

귓가에 웅성거렸으면 좋겠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사람을 위해 쓴 잔을 마시고 싶다

독자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 어떤 시가 낫다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딸에게 앞의 시보다는 뒤의 시가 좋아 보인다고 말할 것이다. 아니, 결혼서약서로 시낭송을 서로에게 읽어줄 것을 부탁해 보라고 귀띔할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 ‘나’는 신부가 자연 되고, ‘당신’은 신랑 지위를 확보한다. 더군다나 둘이 합창으로 “나는 인류가 아닌 단/한 사람을 위해 쓴 잔을 마시고 싶다”고 친지와 하객 앞에서 듀엣으로 선언이 끝나면 이에 호응하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시집의 해설을 적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5연의「청혼」전문을 이렇게 해석했다. 다음이 그것이다.

다섯 개의 연이 A-X-Y-A'-Z의 구조를 이룬다. A와 A'가 일종의 후렴이라면, X와 Y는 짝을 이루며 마주 보는 본론이고, Z는 마무리이다. 후렴부터 볼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애매하다. “오래된 거리처럼”이 ‘너’의 속성인지(‘오래된 거리 같은 너를 사랑해’),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의 속성인지(‘너의 오래된 거리를 사랑하듯 사랑해’)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문맥상 후자일 듯하다. 유년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만큼 오래된 관계인 두 사람이라는 것일까. 그렇게 시간의 깊이를 소중히 여기는 이의 청혼이 더 아름답다는 것일까. 이럴 때의 청혼은 결혼으로 가기 위한 단계적 의례라기보다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불가결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이벤트에 가까울 것이다. (같은 책, 118쪽 참조)

아무튼 두 편의 「청혼」이란 제목을 단, 진은영의 시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나는, 세 점의 그림이 영화나 소설 따위에서 말하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그림은 <주부>라는 그림이다.

월리엄 헨리 마겟슨, 주부,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표지.
월리엄 헨리 마겟슨, 주부,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표지.

그린 이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월리엄 헨리 마겟슨(William Henry Margetson, 1861-1940)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The Lady Of The House>라고 제목이 붙었다. 하여간 이 작품은 이정아 작가의 역작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팜파스, 2015년)에서 겉표지로서 나는 처음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책속에서 이정아 작가는 그림 설명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다음이 그 핵심 내용이다.

“부드러운 우윳빛 접시, 종처럼 대롱대롱 걸려 있는 찻잔, 소박하지만 세월의 맛이 살아 있는 나무 테이블 그리고 커다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까지.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 설렐 만한 주방에서 한 여인이 요리를 하고 있다. 화사한 꽃무늬의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이 집의 젊은 안주인이다. (중략) 분위기로 보아 간단한 점심을 준비하는 것 같다. 샐러드를 버무리는 손길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자연스레 벌어진 입술과 살짝 치켜든 새끼손가락이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같은 책, 164쪽 참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

부부의 단단한 세계?

이 문장과 그림을 통해서 나는 친구 딸의 달콤한 미래의 신혼 모습이 상상이 되었고 그들 부부의 인천에서 새출발 행복한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면서 친구의 딸과 신랑이 백년해로 잘 살길 바랄 뿐이다. 하여, 언젠가 그들이 여행에서 관람할지도 모를,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 점 <모직양말>을 앞에서 소개한 것이다. 다시 앞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그림을 그린 이는 국내에는 좀 생소한 화가,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Daniel Ridgway Knight, 1839~1924)라고 한다. 또한 화가는 꽃과 여자로 가득한 자연의 명화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데 미국 출신으로 프랑스에 건너가 정착하고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로 볼 수 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친구 딸의 결혼을 축복하면서 나는 그들 신혼부부가 그림 속 노부부처럼 살길 희망한다. 그림 <모직양말>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화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 해진 양말이 테이블 위에 보인다. 그리고 동전을 세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이 부부가 진은영 시에서 ‘나’와 ‘당신’으로 감정이 이입된다. 기꺼이 “단 한 사람을 위해 쓴 잔을 마시”려는 부부애가 그림에는 번득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인가, 친구를 또 만났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아내가 딸 시집 보내는 것을 섭섭해 한다고 그랬다. 그럴 만하다. 다 키운 자식을 하루아침에 도둑을 맞은 기분과 다를 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끝에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친구는 나를 보고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날의 사연은 대충 이렇다.

딸의 친구들끼리 내기를 했다. 내기는 요컨대 “딸의 아빠 ○○○씨가 운다”, “아니다. 우리 아빠는 절대 안 울어”라는 식이었다. 이 내용을 가지고서 딸이 아빠에게 고자질하는 전화였다. 그러니까 아빠는 그 날 울면 절대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곁에서 그 내용을 들었던 나는 “운다!”에 지지했다. 왜냐하면 딸을 너무 사랑한 아빠가 내 친구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 결과가 어떻든 결혼식 날이 오면 명명백백 다 밝혀지겠지만. (웃음)

나는 그 친구에게 위로의 차원에서 이 그림을 조만간 꼭 보여주고자 한다. 친구의 아내와 더불어 감상하라고 말을 덧붙이면서. 그림의 제목부터 말하자. 말하자면 <떠나는 배>가 그 제목이고, 화가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던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 떠나는 배,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펜실베니아 아카데미.
다니엘 리즈웨이 나이트, 떠나는 배,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펜실베니아 아카데미.

이 그림은 사이즈가 제법 된다. 크기가 직사각형 168.3×211.1cm가 되기 때문이다. 그림에선 엄마와 딸로 보이는 모델이 남편과 아빠를 전송하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딸을 지우고 아내와 남편이 시집을 가는 딸을 전송하는 그림으로 감상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을 읽고 감상을 하면 무엇보다 내 속이 다 편해진다. ‘나’의 구멍 난 상처를 그림이 치유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한 사람(딸)은 떠나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오른 손을 들어 하트 모양을 지금 열심히 그려내고 있다. 또 한 사람(아내)은 떠나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까치발로 왼손을 입에 대고 큰 목소리로 외친다. “당신,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멀어진 떠나는 배에서 어떻게 알겠는가. 그럼에도 뱃전에서 그는 이렇게 응답했을 테다. “알았어, 잘 갔다 올게”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대화의 방식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고서는 말문이 트이지 않는 법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진은영의 단연 「청혼」은 수수한 느낌을 청자인 독자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다섯 개의 연이 A-X-Y-A'-Z의 구조를 이룬 「청혼」이란 시는 ‘트리밍 효과’를 확실히 청자인 독자에게 새롭게 각인시킨다. 이 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해설에서 신형철이 말한 “그러니까 좋은 시는 rhyme(미적인 것)과 reason(논리적인 것”(111쪽)을 겸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진의 기술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예술성과 등장인물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서 종종 ‘트리밍 효과’를 기술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문제는 과(過)함에 있는 것이지 조금(寡)만 쓰면 나는 맛을 내는 양념이 된다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리밍 효과의 측면에서 새로 쓴 진은영의 「청혼」은 이전의 「청혼」과 전혀 다른 시적 묘사에 성공했다.

◆ 참고문헌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 2022. 9쪽, 118쪽 참조.
박혜진, 《언더스토리》, 민음사, 2022. 18쪽 참조.
천양희, 《나를 살린 문장들》, 모루와정, 2015. 114쪽 참조.
이정아,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팜파스, 2015. 18쪽 참조.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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