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57)

심상훈(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심상훈(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오랫동안 나만의 시간이 이어지는 기도발에는 사유(thinking)가 신선하게 창조되고, 의지(wanting)가 바위처럼 다져지며, 느낌(feeling)이 음악처럼 활발하게 태도로 생동하는 삼각형(△=人)의 안정된 그림, 그런 신비하고 영험한 힘이 존재한다. 하여, 오래된 기도가 인생 역전에선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내 친구는 마음이 아니라 노동하는 몸이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앞으로도 나는 사랑하고 또 존경할 것이다.

오래된 기도/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동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16세기, 판화,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미술관.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16세기, 판화,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미술관.

“<기도하는 손>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모습의 소묘입니다. 힘줄이 살짝 불거지고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 손은 섬섬옥수라고 할 만큼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의 손이겠지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강상중, 《구원의 미술관》, 170쪽 참조)

그의 성공, 오래된 기도

10월 23일. 날은 전형적인 가을이어서 쾌청했던 일요일이었다. 아침부터 친구 셋이서 모여 동문에서 출발, 지동시장을 지나가고 화홍문, 광교산을 오른쪽에 두고 온종일 가볍게 산책했다.

수원의 아름다운 성곽, 그 산책길과 광교저수지, 내가 태어난 연무동에서 점심 칼국수를 우리가 먹는 동안 휴대폰의 만보기는 1만보를 기록했다. 이렇듯 걸음과 걸음, 걸음은 이른 낙엽처럼 우정으로 차곡차곡 우리들 마음에 하염없이 쌓여갔다.

그리고 오후 3시, 그곳에 산다는 한 친구를 불러냈다. 넷은 이렇게 일행이 되었다. 우리는 막걸리 한 병과 도토리묵을 안주로, 오미자차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시간 동안의 수다를 남자끼리 넷이서 출발했고 박장대소 공감했다.

가장 늦게 온 친구. 수다 중에 느닷없이 친구 입에서 기도란 말이 터져 나왔다.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행동이었다. 순간, 속으로 난 움찔했다. 저 친구에게 저런 면도 있었구나, 생각이 드니 아연 깜짝 놀랄 밖에.

헤어지면서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때 내가 보고 만진 그의 손은 한마디로 뒤러의 그림이었다. 그야말로 그림처럼 ‘힘줄이 살짝 불거지고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 손’을 친구는 체온과 무늬로 지니고 있었다. 이 손으로 그는 오랫동안 기도했던 거구나, 이 점을 반추하고 곱씹으면서 나는 벅찼으며 한편 감동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 늘 밝은 표정만을 지어졌다니. 자기의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은 깊숙이 묻고 그냥 씩씩하게 살아왔다고 말하니. 그의 과거가 친구의 오늘, 현재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누구든지 없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의 모임을 주최한 한 친구가 돌연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야! 그 친구가 계산한 것은 오늘, 내가 처음 봤다!”고 감탄을 했던가. 사실상 그는 주변의 온갖 서러움과 멸시를 딛고 과거의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냈다. 열심히 성실하게 하루하루 노동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악착같았다. 그를 옆에서 지켜봤던 친구들의 목격담은 그랬다. 이렇게 알뜰살뜰 저축하고 함부로 허튼 데에 낭비하지 않고 결혼 이후, 이혼을 불사르며 부를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성공적으로 마침내는 이룩한 구두쇠로, 자수성가형 수십억 부자에 그는 해당한다.

앞으로 나는 이문재(李文宰, 1959~ )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대할 때마다 오늘 이야기 주인공 나의 친구를 쉽게 그려내며 떠올릴 것이다. 참고로 이 좋은 시는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보인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시는 그림과 같이 한 공간에 놓고 아울러 감상해야 제 맛이 우러난다. 시와 어우러지는 그림으로 나는 ‘독일의 다빈치’라고 불리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가 그렸다는 <기도하는 손>(1508년 作)을 독자에게 적극 권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된 기도」가 내미는 화자의 그 손은 내 친구처럼 오래된 기도를 해온 사람만이 긍지로 내보일 수 있는 ‘힘줄이 살짝 불거지고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는 손’이 도무지 아니고는 ‘오래된’을 강조할 수 없어서다. 더불어 긴 시간의 이력을 가시화로 선뜻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상중 교수는 뒤러의 판화 <기도하는 손>과 관련해서 이런 전설을 책에다 양념으로 풀었다. 그래서 내용이 참 맛있다. 그 속 깊은 우정이 돋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젊은 날의 뒤러에게는 화가가 되기 위해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너무 가난해서 그림 공부에 쓸 돈이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둘은 번갈아 육체노동을 하여 그림 수업에 들어가는 돈을 마련해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뒤러의 친구가 몇 년인가를 일하고, 그 돈으로 뒤러는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뒤러는 화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가득 찬 뒤러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이제 그만 교대하고 그림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거칠고 힘줄이 불거진 손을 뒤러에게 보여주며 이것 보라고 이제 자신은 섬세한 예술을 할 수 있는 손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걸로 됐다면서 뒤러에게 자신의 몫만큼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배려에 감동한 뒤러는 감사의 표시로 친구의 손을 그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이 그림을 남겼다고 합니다. (같은 책, 170~172쪽 참조)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우정이 아주 돋보이는 뒤러와 친구 사이의 우정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년이 된 후에도 지속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관련, 우리가 참고를 함직한 좋은 글로 나는 중국의 석학 위치우위(余秋雨, 1946~ )가 쓴 문장을 여기에다 그대로 인용한다.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우정은 오로지 어린 시절에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무척 슬픈 이야기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인생이 얼마나 고독하고, 험난한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정은 다만 즐거운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옛일을 회상할 때 가미되는 이야기들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우정의 진정한 의미는 성년이 된 후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별 의미를 갖지 못했는데 최고의 상황에 이를 수는 없다. (위치우위, 《사색의 즐거움》, 284쪽 참조)

그렇다. 우정의 진정한 의미는 성년이 된 후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은 즐거운 유희로 비슷해서 가짜이고 성년 시절의 우정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미술관.

이문재 시인의 좋은 한편의 시! 「오래된 기도」와 잘 어우러지는 또 다른 명화가 있어 지면에 올린다. 명화란 반 고흐가 사랑했고 존경했고 인정했던 선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가 그린 <만종(晩鐘)>(1859년 作)이 그것이다. 그림 제목의 ‘만(晩)’은 ‘저녁 시간’을 함축한다. ‘종(鐘)’ 자는 ‘종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저녁의 종소리’로 해석된다. 이 ‘저녁의 종소리’는 새벽부터 논밭이나 들판에 나아가 일하는 농부에게 있어서 하루의 고된 시간의 일정을 끝마쳐야 하는 꿀맛 같은 휴식을 부여한다.

같은 책에서 강상중 교수의 그림 설명은 이랬다. 다음이 그것이다.

붉게 기운 석양 아래 저녁 종이 울리고 부부로 보이는 남녀는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대지가 화면의 3분의 2를 점하고 있어, 농민에게 대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 발치에 놓인 바구니 속에는 조그만 감자가 몇 알 들어 있을 뿐입니다. 아마 하루 종일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해도 그것밖에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들은 모자를 벗고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기도를 올립니다. (같은 책, 178쪽 참조)

만약에 강상중 교수가 이문재의 시를 익히 알았더라면 (인용한) 문장의 말미에다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문재 시인의 한편의 시가 생각납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의 기도는 한마디로 오래된 기도의 태도이고, 하루나 이틀 사이에 습관이 되지 못해서 성급하게 만들어 낸 그런 기도의 느낌이 인상에서 전혀 들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에둘러 나머지 문장을 채우고서 혹 적었으리라, 라고 나는 감히 상상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나는 특히 좋았다. 기도할 일이 생기면 눈을 가만히 감으면 된다고 절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도에 대해서 강상중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일목요연 설명했는데 인상적이다. 하여,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기도란 적극적인 행동은 아닙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병이 낫지도 않으며, 가난으로부터 구제할 수도 없고, 또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도 못합니다. 기도에는 아무 힘도 없는 듯 보이지만 역시 대단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기도는 즉시 효과를 보이지도 않고 무력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겸허한 기도에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어 어딘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기도밖에 못한다고 하는 것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말을 잃더라도 기도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보다 기도가 더 원시적임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모든 말이 허무해지는 순간일지라도 기도하는 이의 태도는 전해지는 것이지요. (같은 책, 181쪽 참조)

오랫동안 나만의 시간이 이어지는 기도발에는 사유(thinking)가 신선하게 창조되고, 의지(wanting)가 바위처럼 다져지며, 느낌(feeling)이 음악처럼 활발하게 태도로 생동하는 삼각형(△=人)의 안정된 그림, 그런 신비하고 영험한 힘이 존재한다. 하여, 오래된 기도가 인생 역전에선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내 친구는 마음이 아니라 노동하는 몸이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앞으로도 나는 사랑하고 또 존경할 것이다.

이문재의 다섯번째 시집에 해당하는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등장하는 시편들은 일찍이 우리시대의 뛰어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비평을 새삼 오늘도 다시 찾고 되새기게 만들었다.

“반성과 몽상과 실천의 연대, 곧 나올 다섯번째 시집에서 내가 읽고 싶은 바로 그 경지이다. 이문재의 시는 느려지면서 깊어졌다. 이제는 넓어지면서 자유로워질 것이다.”(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371쪽 참조)

신형철의 평론은 옳았고 한마디로 적중했다. 이문재의 여섯번째 시집 제목이 《혼자의 넓이》(창비, 2021년)로 이미 나타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20년 전에 처음 만났던 오래된 기도의 주인공, 광교산 마을로 집을 사서 이사를 간 내 친구도 지금은 느려지면서 깊어졌고, 넓어지면서 한편 자유로워 보였다. 보기에 참 좋았다.  ylmfa97@naver.com

◆ 참고문헌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이문재, 《혼자의 넓이》, 창비, 2021. 강상중, 노수경 옮김 《구원의 미술관》, 사계절, 2016. 168~182쪽 참조.  위치우위, 심규호·유소영 옮김 《사색의 즐거움》, 이다미디어, 2010. 284쪽 참조.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2011.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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