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소나무의 줄임말은 이다. ‘은 다른 의미에서 ()’의 위상을 바라본다. 이 한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거느리다는 그런 뜻이고, 가장을 의미하는 우두머리라는 표현도 내포한다.

아름다운 관계/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서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석도, (황산소나무(제19첩)), 중국 청대.
석도, (황산소나무(제19첩)), 중국 청대.

소나무의 줄임말은 , 뜻은 으뜸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무 중에서 소나무를 으뜸으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한자는 송()이다. 송은 목()과 공()을 합한 형성문자로, 중국 진()나라 때에 만들어졌다.”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나무사전, 36쪽 참조)

 

소나무와 아름다운 관계

 

나무 인문학자 강판권 교수의 명저 역사와 문화로 읽는나무사전소나뭇과 소나무 편에는 중국 명청 시대의 유명한 화가이자 스님인 석도(石濤, 1642~1702)의 그림 <황산소나무(19)>이 아연(俄然) 등장한다. 다시, 이 그림을 가까이 대하는 순간 부지불식 내 입술을 비집고 한 줄의 시가 기어코 터져 나왔다.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로 시작되는 박남준(朴南濬, 1957~ ) 시인의 명시 아름다운 관계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그림에서 퍼뜩 시 한 줄이 떠올랐던 셈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따금 그림 속 바위 같은 곳에서 자란 소나무를 졸지에 마주친다. 그러면 너나없이 일행 중에 한 사람은 꼭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라는 말을 가장 먼저 침묵을 깨트리면서 감동에 찬 목소리로 꺼내들 것이다. 그렇다. 박남준 시의 첫 줄 낭송은 신분을 막론하고 독자의 몫이 된다.

이렇듯 선창(先唱)을 떼면 이윽고 시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후창(後唱)으로 상상되면서 내 귓가로 어느새 파고드는, 요컨대 나머지 부분의 시가 줄줄이 낭송 되어 독자에게 바짝 들려온다. 시가 맑고 또 달콤하다. 독자가 되어 두 눈을 감으면, 예컨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라는 구절에서 혹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이라는 부문에서 묘하게 감동이 한꺼번에 모여든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에 주목한다. 그림으로 응시한다. 그리하여 시인의 자백처럼 우리는 모두 지난 과거의 나를 되돌아본다/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을 자꾸 낮게 읊조리면서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라고 진심으로 과거의 나를 되묻게 될 것이다.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온다. ‘의 청춘은 가고 머잖아 노년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기는 그런 미래가 있다. 더욱이 열정도 죽고 희망도 사라지는 어느 날 는 온통 쓸모없는 이끼들과 마른 풀들로 사방이 포위되는 갑갑함에 짓눌린다.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은 생겨난다. 그런 여유 덕분에 사소하고 하찮은 나날은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는 이치처럼 우리로 하여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사랑이라는 노력 따위를 내 인생에서 기꺼이 수고하고 차츰차츰 넓혀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에 가능해지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시간은 흐르고 흘렀던가에 계속 근거한다. 그 뿌리를 틈에 안기면서 성장한다.

명말청초의 화승 석도가 그린 황산의 기이한 바위와 그 바위 위에 멋지게 그린 소나무는 지금의 독자로 하여금 아름다운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그루라서 짠해 보이는 것은 차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화가 자신의 불우했던 이력과 삶, 이상과 꿈이 고스란히 바위와 한 그루 소나무로 투영된 것일지도.

석도의 본명은 주약극(朱若極). 주약극은 명나라 황제의 핏줄이었다. 그의 나이 4세 때, 나라의 운명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완전히 뒤바뀌는 시대적인 불운을 몸소 겪어야했다. 기록에 따르면 석도의 재주가 어려서부터 아주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뛰어난 자신의 재주를 다 속세에서 피우지 못했다. 그랬기에 황산으로 올라가 스님이 되었다는 그런 풍문이 전설처럼 뒤따른다. 화 뿐만 아니라 미술 이론가로서도 명성을 떨친 개성주의 화가로 후세에 평가받고 있다. 어쨌든 석도의 <황산소나무(19)> 그림은 시인으로는 크게 명성을 떨쳤지만 벼슬살이에선 아주 불우했던 당나라 시인 이백의 남헌의 소나무(南軒松)을 찾아보도록 유혹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南軒松/李白

南軒有孤松 남헌유고송

柯葉自綿羃 가엽자면멱

淸風無閒時 청풍무한시

瀟灑終日夕 소쇄종일석

陰生古苔綠 음생고태록

色染秋煙碧 색염추연벽

何當凌雲霄 하당릉운소

直上數千尺 직상수천척

 

남헌에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

가지와 잎이 절로 빽빽이 덮였네.

맑은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

밤이나 낮이나 늘 상큼하다네.

음지에 오래된 이끼가 파랗게 돋아

그 빛이 가을 안개를 푸르게 물들이네.

어찌하면 하늘을 뚫고 자라나

곧바로 수천 길을 뻗어 오르겠는가.

이 한시를 나는 2012년 이종묵 서울대 교수가 쓴 우리 한시를 읽다라는 책에서 처음 접한 바 있다. 다시 여기에 소개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백의 시와 석도의 그림, 나아가 박남준의 시가 지향하는 시선이 소나무를 공통 바라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바라봄인데 시간은 찰나에 있지 않고, 오래 주목한 결과의 작품이라는 것. 석도의 그림은 세잔의 화법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관찰하고 응시한 결과가 집약된 것이라면 이백과 박남준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하루나 이틀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볼 수 없는 오랜 기간의 통찰력이 빚은 결과물이 시로 녹아들어 탄생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나무’ ‘이끼’ ‘바람이란 시어가 이백의 한시와 박남준의 시에서 같이 언급되고 변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시의 전형적인 창작 기법인 선경후정(先景後情·먼저 자연이나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고 난 후 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마지막에 읊는 것을 의미함)’의 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매우 닮아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백이 남헌이란 특정한 장소에서 건너편 소나무에 오래 집중하고 있다면 박남준은 석도와 마찬가지로 바위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오래 소나무의 생태를 자세히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살폈다는 것이 그 사소한 차이점이라고 예로 들 수 있다.

이백이 근경(近景)의 특정한 장소인 남헌에서 바라본 소나무를 그림처럼 그렸다고 한다면, 석도와 박남준은 원경(遠景)의 장소에서 바위와 소나무를 관찰한 것이 좀 색다르다. 보통 ()’ 자의 쓰임은 정자나 돈대, 혹은 누각 모양의 건축물에 명칭으로써 일컬어지고 붙게 마련이다.

조선의 선비 서유구가 쓰고 안대회 교수가 우리말로 직접 번역해서 옮긴 책 스테디셀러 산수간에 집을 짓고에는 송헌(松軒)’이란 내용이 등장한다. 다음이 그 간추린 내용이다.

송헌(松軒)

동산 안에서 훤히 트여 밝고 상쾌한 곳을 선택하여 송헌을 짓는다. 높다라고 험준한 장소를 고르지 말고 맑고 그윽한 장소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창 여덟 개를 영롱하게 내고, 좌우에는 푸른 솔 몇 그루를 심되 가지와 동아리가 검푸르고 예스러우며, 구불구불하여 그림처럼 아름다운 소나무를 골라 심는다. (같은 책, 80쪽 참조)

앞의 글에서, ‘창 여덟 개에 해당하는 누각 건축물 이름엔 반드시 ○○이라고 붙이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몇 그루의 소나무를 강조했기에 이름하여 송헌이라고 명칭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꼭 정석은 아닌 듯하다. 예를 들자면, 경기도 수원의 화홍문(華虹門)’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특히 그러하다. 방화수류정은 여덟 개의 창을 냈으니 마땅히 이름을 방화수류헌이라고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물며 화홍문은 전형적인 루()의 건축물로 보이니 마땅히 화홍루라고 편액을 다는 것이 맞을 테다.

전남 담양의 유명한 정원 소쇄원의 명칭은 이백의 시에서 실은 따온 것이다. 남헌송의 소쇄종일석(瀟灑終日夕)’이라는 시구의 소쇄와 정원(園林)을 뜻하는 이 무릇 합쳐진 것이다.

경기도 수원,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모습.
경기도 수원,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모습.

용을 사랑했던 왕.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와 수원은 깊은 인연이 있다. 정조와 채제공, 다산 정약용에 의해 수원 화성이 도시화되고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수원의 야경을 아름답게 연출해 주말과 공휴일이면 방문객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방화수류정의 이름도 사실 한시에서 무상 빌린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 성리학자로 유명한 정호(程顥, 1032~1085)가 쓴 한시 춘일우성(春日偶成)이 바로 그것이다. 본문 앞에 엷은 구름에 산들바람 정오가 가까운 때, 꽃 찾고 버들 따라 앞개울을 건너노라(雲淡風輕近午天, 訪花隨柳過前川)”라는 두 구절에서 뒷부분(訪花隨柳)을 그대로 누각의 이름으로 차용한 것이다.

경기도 수원  방화수류정- 용연
경기도 수원  방화수류정- 용연

아무튼 화홍문 공영주차장에 차를 두고,걸어서 곧장 방화교로 직진해서 건너는 것보다 화홍문 못 미쳐서 샛길 개울을 건너 세 그루의 소나무가 섬을 이루는 용연(龍淵)이 보일 때까지 느릿느릿 산보하는 것이 사계절 운치를 배가한다. 또한 한시 읽는 맛에서 더욱더 실감을 더해준다. 게다가 연못 가운데, 그 섬엔 멋지고 고급스러운 소나무 세 그루가 싱싱하게 늠름하게 서 있다. 섬에 작은 정자를 짓고 이름을 붙인다면 삼송정(三松亭)’이 어울린다. 그곳을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이 연애 끝에 만약 결혼에 골인한다면 세 식구를 기념하는 관광 명소로 기쁨과 행복을 그득 안겨줄 테다.

소나무의 줄임말은 이다. ‘은 다른 의미에서 ()’의 위상을 바라본다. 이 한자는 가족을 부양하는 거느리다는 그런 뜻이고, 가장을 의미하는 우두머리라는 표현도 내포한다. 그렇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의 그 ()’이 나는 소나무의 성정이고, 바위 위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이 시대의 젊은 남자의 치열한 삶의 인상으로 자꾸만 비춰진다.

참고문헌

박남준, 박남준 시선집, 펄북스, 2017.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나무사전, 글항아리, 2010. 36쪽 참조.이종묵, 우리 한시를 읽다, 돌베개, 2009. 91쪽 참조.서유구·안대회 옮김, 산수간에 집을 짓고, 돌베게, 2005. 80~85쪽 참조. ylmfa97@naver.com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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