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소설가.
언론인,소설가.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선() 부하 강을(江乙)이 정국을 이야기하다가 폐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을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무슨 뜻이오?”하고 왕이 묻자 강을이 설명했다.

여우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호랑이가 잡아먹으려고 하자 나는 하늘이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한 짐승인데 나를 잡아먹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내 말을 못 믿으면 따라와 보십시오.’하고 여우가 앞장서고 호랑이가 뒤를 따라갔다. 숲속의 모든 짐승이 그들을 보자 달아났다. 여우가 무서운 게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호랑이가 무서워서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눈치를 못채고 여우에게 속았다.

시끄러운 요즘 정국에서는 사자성어 싸움이 한창인데 한 국회의원이 사자성어를 인용했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자성어 전쟁이 일어난 것은 정진석 국회 부의장의 소이부답(笑而不答)’에서 시작되었다. 이 용어는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한자 4자로 된 용어라는 면에서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이어서 이준석 국민의 힘 전 대표가 양두구육(羊頭狗肉), 삼성가노(三姓家奴) 같은 문자를 날렸다. 양두구육은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파는 일인데 내가 총선 때 많이 했다고 했다. ’삼성가노는 이 전대표가 말하는 윤홱관을 지칭한 말로 총선 때 성이 다른 세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에 맞서 망월폐견’(望月吠犬)이란 말로 반대측에서 응수했다. ‘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는 뜻이다. 이에 이 대표는 사자성어만 보면 흥분하는 우리 당의 의원들을 위해서 작금의 상황을 표현 하자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응수했다. 이 사자성어는 진나라의 위세 등등한 권력자 조고(趙高)는 대신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고 위세에 눌려 맞다고 한 사람은 살려주고 아니라고 바른말하는 부하를 죽인데서 비롯된 말이다.

위세 앞에 모두가 복종한다는 뜻이다.

정말 고사(古史) 공부 안하면 정치하기도 힘 든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정치판뿐 아니라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새로운 유행어나, 한자 단어를 모르면 소통하기 어렵다. 지난 추석에도 어른들이 주의해야할 말을 뉴스로 취급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나 손자, 손녀들에게 시집 언제 가느냐?” “참하게 생겼다. 신랑 귀염 받겠다.” “어서 애기 낳아라.” 등의 말을 하면 망신당할 수 있다고 경고도 했다. 가정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상사들이 여직원보고 예쁘장하네. 남자한테 인기 많겠다.” “애 잘 낳게 생겼다.” “치마는 왜 안 입냐?” 같은 말을 걸면 성희롱으로 당장 고소 당할 수도 있다.

언어와 문자로 인한 이러한 소통의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세대별로도 큰 차이가 있다.

1020 세대와 5060 세대, 그리고 라떼 세대는 소통에 각각 다른 용어를 많이 쓴다. 세대 간에 서로 통하지 않는 주요 원인은 대체로 2가지를 들 수 있다.

우리 교육 역사에서 한자를 전혀 배우지 않은 세대가 있다. 우리말의 뜻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크다. 이 한자교육 공백 시대가 우리 역사에 한 동공을 이루고 있다.

둘째는 핸드폰 PC 같은 새 문명 이기가 소통의 방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1020 세대나 3040 세대는 약자를 즐겨 쓴다. 약자의 단계가 도를 넘어 한글의 자음만 가지고도 잘 통한다. 그러나 이 세대는 한자에 약하기 때문에 잘못 전달해 심심(甚深)한 사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에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합니다.”고 화답을 하는 판국이다.

문해력 교육을 하는 사설 기관이 많이 생기는가 하면, 문해력을 돕기 위한 책도 많이 발간되고 있다. 문해력 책의 주요 독자는 40대와 50대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각 대학에 국어국문학과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 나라 말을 교육기관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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