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컬럼니스트.
언론인,컬럼니스트.

미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낌새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른바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한 결과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거나 정점에서 하향곡선을 가리고 있다는 긍정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금리 인상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다. 그 결과 단기국채(2년 기간) 이자율이 장기국채(10년 기간) 이율을 웃도는 이른바 ‘역 일드’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시장은 이를 디플레이션 전조현상으로 읽고 있다. 시장과 중앙은행(FRB)의 이러한 엇박자는 그동안 FRB가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 금리 인상(금융긴축)에 나설 타이밍을 놓친 데서 찾고 있다. 뒷북을 치며 허둥대느라고 금리 인상 폭을 지나치게 키웠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그 후유증이 인플레이션 진정 수준을 뛰어 너머 디플레이션을 암시하는 국채이율의 ‘역 일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선도한 금리 인상 경쟁이 경제의 판력 훼손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금리뿐만 아니라 글로벌 체제의 뿌리를 흔드는 이른바 공급망 재편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이런 과도기에 디플레이션이 겹친다면 그 뒤를 따를 경기하강, 불경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R의 공포’다. 리세션(Recession)은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을 의미할 때 쓰인다. 실제로는 경기하강 또는 불경기와 거의 같은 의미다. 따라서 지금 세계는 불경기 또는 경기하강 공포에 떨고 있다는 뜻이다.

미 단기국채 이율이 더 높은 역일드

중국도 전력난 등 목표 성장률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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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등 제조업 재고율 124%나

멕시코 루트 이용, 중국 반격 주목을

R의 공포를 불러온 주요인은 크게 두 가지이며 모두 미국이 유발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고속 금리 인상, 다른 하나는 공급망과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 견제에 따른 후유증이다. 미국의 중국 첨단제품 수입량이 지난 3년 사이에 13%나 줄었고 중국에 진출했던 미 제조업의 타국 이전으로 중국은 고급 일자리를 거의 1만 개나 잃었다. 이것만이 원인은 아니나 중국 당국은 지난 7월 말의 중앙위원회에서 성장률 목표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추인했을 정도다. 시진핑의 코로나 대도시 봉쇄와 전력난까지 겹쳐 위안화 가치까지 급락하고 있음이 중국 경제의 현실이다. 이 영향은 곧바로 세계 경제의 수요감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설비와 기술의 중국 이전을 금지함에 따라 한국 반도체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도 영향권에 들었다. 세계적인 메모리반도체 수요감퇴까지 겹쳐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업의 재고율이 1백 24%가 넘는다. 예상했던 수출(판매)이 그 정도로 부진하다는 증거이며 판매 감소는 최종적으로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투자 부진은 고용감소와 국가경제탄력 훼손을 낳는다. 지금 우리 경제 앞을 가로막고 나선 새로운 거대 장벽이 바로 R의 공포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따른 최대시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한국경제 는 세계 경제 과도기를 맞아  'R  공포' 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뉴시스 제공)
한국경제 는 세계 경제 과도기를 맞아  'R  공포' 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뉴시스 제공)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견제에 맞선 중국의 ‘자구책’이다. 중국 제조업은 미국 관세장벽을 뚫기 위해 멕시코 이전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금융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탈달러화’를 시도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인도 등 신흥 5개국(BRICS)의 통화 바스켓 창설과 선이 맞닿는다. 멕시코 진출이나 새로운 통화 바스켓 창설이 당장 가시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장기적으로는 적지 않은 리스크를 함축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세계 경제는 지금 과도기적 현상과 R의 공포가 겹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국가 경제와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대책은 공급망 기본법 제정 정도뿐이다.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적어도 소용돌이치는 과도기적 현상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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