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컬럼니스트.
언론인,컬럼니스트.

윤석열 정부의 5개 개혁 가운데 실질적 핵심인 노동 개혁은 출발 신호도 울리기 전에 불협화음부터 요란하다. 노동부가 ‘주 52시간제 유연화’ 방안을 발표하자 이른바 경직된 노동 관습에 숨통을 트는 기회가 왔다고 상당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이 관심은 불과 24시간도 안 되어 냉수를 뒤집어썼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 못 받았다’고 쐐기 아닌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부가 노동계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무부서가 마련한 안이 발표되자마자 보고받지 못했다고 ‘폄하’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윤 대통령이 아직은 정치적화법에 익숙해지지 못한 증거이다. 정치적으로 닳고 닳은 어법이 아니라 아직은 순박한 정치인인 윤석열의 단순한, 평면적인 반응으로 봐야 한다. 노동부 개혁안은 ‘아직 보고받지 못했고, 따라서 그 안이 정부 최종안이 될 수없다’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단순한 반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반응을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도 없다.

‘괜찮은 일자리’ 정치적 악용말아야

노동시간 단축, 생산성이 절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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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 유연한 운용 논의 앞서

불법파업엔 경제적 불이익도 부과를

오히려 노동부의 개혁안에 대한 양대 노총의 반응이야말로 정치적인, 그리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근거한 ‘떼 산술’이라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노동부 안의 핵심은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운용에 있다. 법조문 그대로 해석한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기업 형편과 경제 상황에 따라 이번 주는 60시간, 내주는 48시간으로 한 달 평균을 주 52시간제로 운용하자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대해 민노총과 한국노총은 ‘그렇게 하면 ‘주 92시간’도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당연히 그와 같은 계산은 극단적 논리로써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문제는 한가지 사안에 대해 어째서 이와 같이 극단적인 ‘떼 산술’이 힘을 받는가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최근 5년 동안 우리 노동법과 관행이 경영자 측의 손발을 묶다시피한 상황을 연출, 노조의 힘만 극대화한 데 있다

‘일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게’는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이다. 그러나 어쩌랴, 일과 수입은 노동자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경영자와 경제환경에 따라 가변적인 것을.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가 싹이 튼 이래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케인즈는 완전고용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손자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논문에서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시간은 단축된다고 예언했다. 그는 (손자세대에는) ‘하루 3시간, 주 15시간’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함축된 인권과 자유 보장은 강화되었고 그에 따른 문제점은 생산성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음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증명되고 있다. 2019년 일본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 노동생산성은 일본보다 41.5%나 높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99년에 제시한 ‘괜찮은 일자리 (Decent work)’ 개념의 정착 효과이도 하다. 이로 인해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차별 철폐로 극복했다. 독일의 경우 주 35시간제를 도입했으나 글로벌화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한 연장근무로 방향을 돌렸다. 경영자는 세계화에 발맞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자는 경영 악화에 따른 감원 등 구조조정을 회피하기 위해 합의한 것이다. 노동문제는 경영자와 노동자가 수평적 입장에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평한 게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공기업에 노동이사제를 시험적으로 도입하면서도 경영자 측(이 경우 납세자인 국민)의 의사는 배척당했다. 지난 5년 동안 강성노조인 민노총은 세를 불려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 노총으로 성장했다. 민노총은 걸핏하면 ’떼 법‘으로 파업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운용원칙에 대해 ‘92시간 근로를 하라는 말인가’고 나선 것 역시 떼법적 계산일 뿐이다. 주 52시간 제는 하루 11시간의 계속적 휴식을 보장하고 있으며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단위는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는 ‘법적 조건’이 붙어 있다.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편리한 대로 왜곡하는 것이 떼 법이며 떼 계산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노동 개혁은 강력해진 노조의 떼법 추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gt2120@daum.net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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