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그림 속 모델에게 달빛이 당신이라고 한다면, 밤늦도록 여름 달빛이 좋아서 하염없이 걷는다는 그녀는 그림 속 모델의 뒷모습과 많이 닮았다. 나의 여친, 당신!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시지요?

꽃길/유자효

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남으로서 탄생한 생명들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곁에 있어서 나의 눈이 트였고

세상이 보였습니다

밤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함께 걸어온 길은 꽃길

가시밭길도 때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당신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도

마지막 떠날 그 길도

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

멀리 있어도

홀로 있어도

당신의 마음과 함께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꽃길

프레더릭 칼 프리스크, (정원의 여인(백합)),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테라미술관.
프레더릭 칼 프리스크, (정원의 여인(백합)),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테라미술관.

“설득해야 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로고스)은 꼭 필요하다.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파토스)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나에 대한 신뢰(에토스)가 없다면 헛수고이다. 에토스는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됨으로써 내 안에서 하나의 ‘습관’이 되면서 형성된다.” (김경집, 《인생의 밑줄》, 109쪽 참조)

여행 친구, 여친이란 당신

여행 친구. 이를 두 글자로 줄이자. 그러면 ‘여친’이 된다. 아무 날이나 마음이 서로 통해 훌쩍 멀리, 둘이나 셋 혹은 다섯 이상,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친구가 내 곁에 지금 있다는 것. 이 감사하고 행복한 아름다운 친구 관계는 ‘에토스’가 아예 밑바탕으로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이지 않거나 전혀 없고서는 불가능할 밖에 없다. 이게 사람들 사는 세상의 일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초등학교 동창이란 ‘여친’으로서 손색없는 너나들이다. 따라서 ‘당신’이란 에토스의 우정은 우리에게 ‘꽃길’을 연출하고 허물없이 초래한다.

한국시인협회 44대 회장 유자효(柳子孝, 1947~ ) 시인의 명시 「꽃길」에서 시적 대상 ‘당신’이란 존재는 다양한 관계로 수렴되고 발전된다. 이를테면 친구, 연인, 부부, 가족, 신(종교)으로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 시는 유자효 시집 《꼭》에도 보이고, 문현미 교수의 명시칼럼집 《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란 책에도 나온다. 시를 두고 문현미는 책에서 이렇듯 설명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살면서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길 위에서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길만을 걸을 수는 없다. 인생이라는 길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꽃길은 먼 길일 뿐이리라. 길을 가다 보면 칼바람도 맞고 눈보라에 휩쓸릴 때도 있다. 때로는 쏟아지는 폭우에 겨우 목숨만 부지하기도 한다. 그만큼 삶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터널이기 때문에 언젠가 빛이 보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둠을 견딜 수 있다. (중략)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꽃길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한다. ‘감사합니다’와 ‘꽃길’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시적 긴장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어의 반복을 통한 음악적 효과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솜씨가 무척 돋보인다. (같은 책, 124~125쪽 참조)

앞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몇 겹쳐지는 그림들이 있다. “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합니다”라는 구절에서 나는 먼저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 얼굴이 몇 스쳤고, 미국 화가 프레더릭 칼 프리스크(Frederick Carl Frieseke, 1874~1939)가 그린 <정원의 여인(백합)>이 동시에 생각났다.

이 그림을 좀 상세히 보자. 그림은 백합 꽃 잔뜩 핀 예쁜 정원이 그 배경이다. 중앙에서 우측으로 녹색의 클래식한 테이블이 아연(俄然) 등장한다. 테이블과 세트로 보이는 녹색 의자는 모두 세 개 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림 속 여인과 그림에서 주인공으로 보이는 흰색 원피스의 모자 쓴 여인은 차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다가 돌연 화가(남편)의 요청에 따라 모델로서 응하는 아내가 꽃밭에 서 있는 포즈를 취하는 정겨운 그림이다.

아내의 이름은 세이디. 그녀는 꽃과 정원을 무척 사랑했고 잘 가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와 관련, 미술사학자 데브라 맨코프는 저서 《모네가 사랑한 정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미시간 주 출신의 화가 프레더릭 프리스크는 1900년 지베르니에서 첫 여름을 보내고 6년 뒤에 새 아내 세이디와 함께 모네의 바로 옆집을 빌렸다. 세이디가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으며 프리스크는 아내와 그녀의 친구들이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을 자주 그렸다. 모네가 아르장퇴유에서 그렸던 친밀한 작품을 연상시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지베르니에서 살았던 14년 동안 모네와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책, 158쪽 참조)

프리스크는 미국 미시간 주 오워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시카고 미술학교와 뉴욕시 학생미술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받았고 르누아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풍경화보다 여성의 초상을 자주 그린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1906년부터 1919년까지 모네가 살았던 프랑스 지베르니에서 인상주의 화가로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잘 알려졌던 인물이다. 참고로 <정원의 여인(백합)>은 1911년 작품이다.

이 그림에 등장한 녹색의 의자와 테이블은 화가의 다른 그림들에도 자주 목격된다. 하여간 프리스크의 그림 속 정원이 예쁜 백합으로 만개한 것으로 보아서는 한여름, 즉 달력으로 8월에 해당되는, 그림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그림 속 두 여인은 친구일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가 매우 편안한 사이의 우정을 지속적으로 나누는 관계. 그러니까 상대가 나에게 주는 신뢰(에토스)가 아주 특별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온종일 침묵하는 시간 가운데도 신뢰가 스며들고 형성되는 인간의 관계는 있기 마련이다. 이를 우리는 ‘가족’이라고 회고하거나 더러 찬탄한다. 여기, 종이에 수채화로 그린 평범한 그림이 하나 있다. 영국 화가 조지 하워드(George Howard, 1843~1911)가 1905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제목은 <예술가의 딸과 손녀>이다. 나는 이 그림을 한 책에서 처음 보았는데 서로 닮은 3대(할머니·딸·손녀)의 지적이며 차분한 모습들에서 유자효 시인의 「꽃길」이 말하는 ‘당신’이 그림 속 모델로 떠오르며 그려졌다.

조지 하워드, (예술가의 딸과 손녀), 20세기, 종이에 수채화, 《그리워하기 좋은 거리》
조지 하워드, (예술가의 딸과 손녀), 20세기, 종이에 수채화, 《그리워하기 좋은 거리》

그림 <예술가의 딸과 손녀>는 박나경 작가의 저서 《그리워하기 좋은 거리》에 보인다. 꽃 핀 정원에 외할머니와 딸, 그리고 손녀인 내가 다정하게 볕을 쬐며 각자 일에 몰입하는 풍경이 절로 “당신을 만남으로서 탄생한 생명들에 감사합니다”는 구절을 낭송하게 유혹한다. 아울러 나의 엄마 “당신이 곁에 있어서 나의 눈이 트였고/세상이 보였습니다”라는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도록 나날에 우리는 새삼 깨우치고 기뻐하며 비로소 직면한다. 그렇다. 가족이란 그런 거다.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밤길도 무섭지 않”고 “가시밭길도 때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되고, 우린 자주 그것들을 마주치며 복작복작 부대낀다.

당신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도

마지막 떠날 그 길도

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

멀리 있어도

홀로 있어도

당신의 마음과 함께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꽃길

우리는 일 때문에 외출하거나 휴일이 되어 여행을 떠났다가 으슥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멀리서 불빛이 아른거리는 내 집으로 홀로 돌아오는 나날을 맞이한다. 이럴 때는 빠른 걸음이 되기 십상인데 더러는 천천히 걷는 연습도 더러는 나에게 괜찮기에 필요하다. 보름의 은빛 달빛이 비치는 그런 저녁의 날이라면 더욱더 좋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과 가까운 공원을 느긋한 발걸음으로 산책하듯이 걷자. 그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여인의 뒷모습은 또한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가.

이제, 우리는 영국 화가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가 그린 <은빛 달빛>(1880년 作)도 한번쯤은 명화로서 눈여겨봐야 한다. 화가인 그림쇼는 달빛을 소재로 한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의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부터였다고 관련 이야기가 전해진다.

존 앳킨스 그림쇼, (은빛 달빛),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영국, 머서 아트 갤러리.
존 앳킨스 그림쇼, (은빛 달빛),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영국, 머서 아트 갤러리.

이 그림을 나는 최혜진 작가의 역작 《명화가 내게 묻다》에서 처음 보았다. 그림 속의 그녀가 은빛의 달빛 아래 길을 걷는 장면을 포착했는데, 그녀는 집으로 가던 밤길을 잠시 멈추고 시선을 그윽하게 은빛의 보름달에게 주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유자효의 「꽃길」마지막 부분 낭송을 계산했다. 어둡고 침침한 이 밤길에 당신, 은빛 보름달이 환해 “감사합니다”라고 그림 속 모델은 마치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앞으로 걸어갈 길도/마지막 떠날 그 길도/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이라고 낭송하는 달빛 속에 한 여인의 뒷모습이 상상된다.

이 그림 <은빛 달빛>을 두고서, 최혜진 작가는 책에 이렇게 시적으로 묘사한다. 질문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달빛 속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의 뒷모습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정처 없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맴도는 걸까요,

초조한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찾는 걸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요, 집에서 막 나온 길일까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울 것 같은 얼굴일까요, 느긋하고 편안한 얼굴일까요?

(같은 책, 73쪽 참조)

나의 결론은 이렇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뒷모습인지라 얼굴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지만 의연하고 음전한 얼굴 표정일 거라고 추측한다. 결코 우는 얼굴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빙그레 웃지 않았을까. 멈춰 서 있는 뒷모습에서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이 읽히는 것은 그녀에게 오늘은 달빛이 유자효 시인이 언급한 바로 ‘당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모델에게 달빛이 당신이라고 한다면, 밤늦도록 여름 달빛이 좋아서 하염없이 걷는다는 그녀는 그림 속 모델의 뒷모습과 많이 닮았다. 나의 여친, 당신!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시지요?

◆ 참고문헌

유자효, 《꼭》, 황금알, 2017. 문현미, 《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 황금알, 2021. 123~125쪽 참조. 김경집, 《인생의 밑줄》, 한겨레출판, 2019. 109쪽 참조. 박나경, 《그리워하기 좋은 거리》, 소네트, 2017. 184~185쪽 참조.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북라이프, 2016, 72~73쪽 참조.데브라 맨코프, 김잔디 옮김 《모네가 사랑한 정원》, 중앙북스, 2016. 158쪽 참조.

ylmfa97@naver.com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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