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소설가.
언론인,소설가.

정치는 3류’라는 핀잔을 받아온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그들은 대체로 어떤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일까.

크게 분류해보면 정당인 출신, 법조인 출신, 교수 출신, 언론인 출신, 운동권 등 시민운동 출신, 관료 출신, 가끔 경제인 출신이 있다.

그중에서도 언론인 출신들이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언론인으로 일생을 보낸 필자도 정치의 유혹을 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눈을 돌리지 않았다.

“기자란 붓 한 자루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언론인이며 정치인이고 경제인인 백상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내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사표를 냈을 때 한 말이었다.

1950년대 필자가 처음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언론인들은 모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독립운동가나 애국지사 같은 말을 자주했다.

일생동안 ‘언론’ 한 길만을 지킨 훌륭한 선배들이 많다.

천관우 선생, 홍종인 선생, 최석채 선생, 선우휘 선생 같은 분들이다

지금의 전문직업인으로 변한 언론인과는 달랐다. 물론 지금도 그때의 언론인들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언론인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정계로 나간 한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하는 처신이 너무나 실망스럽다.

전라남도 J신문 기자 출신인 민형배 국회의원의 ‘위장 탈당’ 논란은 바로 그런 경우다.

‘검수완박’ 법안이 법사위 안건 조정위를 통과하지 못하자 민주당은 무소속 의원인 양향자 의원을 법사위로 배치하여 동조를 받으려고 했다. 이것이 민주당의 체면불고 한 1차 꼼수였다. 그러나 양 의원은 양심상 민주당에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민주당 측에서 ‘검수완박’이 성공 못하면 민주당 측 인사 20명이 감옥 간다고까지 하면서 설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때를 놓칠세라 민형배 의원이 재빨리 민주당에 탈당계를 내고 무소속으로 위장하여 법사위에 배치되고 안건조정위원까지 되었다. 안건 조정위원회는 90일간의 심의 기간이 있었으나 단17분만에 통과시켜 기다리고 있던 본회를 국회의장 협조로 통과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위원회의 시간 조절 협조까지 얻어 마침내 입법에 성공했다.

이런 과정을 국민들이 모두 눈뜨고 보고 있었다. 민형배 의원은 뛰어들 찬스를 절묘하게 잡고변신에 성공했다. 민주당과 잡혀갈 20명을 구출한 셈이다.

그런데 철면피한 이런 과거를 마무리하기 위해 민형배 의원이 이번에는 ‘임무’끝냈으니 복당 시키라’고 빚 독촉을 하고 있다. 이 망신스러운 일을 ‘내가 20명 구하지 않았느냐’는 큰 공을 세운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당 비대위원 이소영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친전에서 “민주주의는 결과이기 이전에 과정이며, 목적이 정당할 뿐 아니라 그 수단과 과정도 국민께 떳떳해야 한다”며, “너무나 명백한 편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에 대해 “민주정당이길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도 민형배 의원의 탈당은 “명백한 편법”이며 “묘수 아닌 꼼수”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민형배 의원은 이 망신스러운 일을 ‘나를 빨리 복당 시키라’고 하면서 큰 공을 세운 듯 행동하고 있다.

민형배 의원은 같은 언론인 출신인 조수진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검수완박 법안 통과 과정에 위장 탈당이 동원됐다"고 강력하게 규탄하는 발언에 "내가 무슨 위장 탈당을 했나. 탈당한다고 하고 하지 않기라도 했나. 난 민주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이다"라고 버럭 화를 내며 조 의원을 역공한 바 있다.

두 언론인 출신 의원의 설전을 보면서 한국 의회사상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