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컬럼니스트.
언론인,컬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 뇌리에는 경제불안이 깊이 각인 되어 있는 듯하다. 지방 선거가 끝난 직후, 승리감을 즐길 여유도 없이 선거결과는 ‘경제를 살려라’는 국민의 독촉으로 받아들였고 곧이어 ‘우리 경제위기는 태풍권에 몰려든 형상’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생활물가는 6.7%나 올라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 물가 역시 전 년 대비 5.4%나 올랐다. 13년 9개 월(2008년 8월의 5.6%)만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써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을 뜻한다. 투자와 소비에도 부정적 영향을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가계부채(1천 9백억 원)의 이자 부담도 큰 짐으로 작용할 처지에 놓여 있다.

윤 대통령의 ‘경제 태풍권론’이 나오기에 앞서 지난달 30일 정부는 긴급 민생 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장바구니 물가, 생계비,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이 프로젝트는 주요 먹거리와 산업용 원자재 등에 대해 연말까지 0%의 할당 관세 적용, 부동산 보유세 인하, 개별포장 가공식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등으로 값 내리기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생대책 발표한 날 정부는 62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재가함으로써 한은의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 방향과는 정반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세금내리고 지원금, 손쉬운 선택

고통분담 없으면 ‘소주성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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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U, 기업 ⁃ 임금 지원 종지부

양적긴축으로 사실상 ‘채무삭감’시대

현재 ‘태풍급’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선택할 정책적 수단 역시 한계가 있다. 지금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1차적인 인플레이션 요인은 이른바 코로나 버블과 제로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차고 넘치는 데 있다. 코로나가 일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자 미국과 유럽은 기업과 고용지원책을 폐지하거나 축소에 나섰다. EU의 유럽 위원회는 가맹국 기업에 대해 임시보조 조치를 6월 말 끝내기로 했다. 미국 역시 중소기업에 대한 인건비 융자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과잉연명책으로 시기를 놓친다면 신진대사와 노동이동을 정체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고통 분담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금리 인상과 때를 같이하여 62조 원에 달하는 추경으로 돈을 푸는 것과는 대조적인 선택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펜데믹에 대응, 시중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해 온 중요 선진국 중앙은행은 일단 10조 달러(1경 2천 3백조 원) 정도의 회수를 서둘고 있다. 미연준(FRB)은 6월 1일부터 중앙은행이 반강제적으로 은행권의 돈을 빼내는 양적 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으로 사실상 이른바 ‘채무삭감’시대를 선언했다. FRB의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미국 부채와 순 자산 합계는 코로나 이전보다 30%나 늘어난 2백38조 달러다.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도 2포인트 늘어난 14.1배다. 이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50조 달러 정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산가격 하락이 채무부담을 압박할 경우 수요축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이른바 ‘밸런스시트 불황‘, 다시 말하면 장부상의 불황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18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바로 장부상의 불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코로나 봉쇄 영향으로 경제가 바닥권에 접어들었고 러시아는 세계대형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크레디트 디리버티브 결정위원회로부터 ‘지불 불이행’에 빠졌다는 판정을 받았다. 7월이면 디폴트 처리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국제금융환경은 최악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우리 무역적자가 1백 58억 달러로 예상됨으로써 경상수지까지 흔들리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시대를 맞을 공산이 크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앞장을 선다고 해서 쉽게 뚫고 나갈 상황이 아니다. 물가만 잡는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단기적인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 진단과 대책을 통해 규제 혁파를 통한 기초체력 배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물가 잡기에 조급한 나머지 경제 정책은 정부가, 그 실천과 실행은 기업이 주역임을 잊는다면 ‘소중성 시즌 2’가 될 수도 있음을 엄중히 경계해야 한다.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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