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 출생, 해사 졸업, 1959년 전역 후 줄곧 산업 현장 누벼
화학·전자·건설 등 현재 LG 근간이 된 주요사업 맡아
2000년 아워홈 회장 취임 후 ‘글로벌 종합식품기업’ 반열 올려놔

12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 (아워홈 제공)
12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 (아워홈 제공)

[스페셜경제=임준혁 기자] 아워홈을 설립한 구자학 회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마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디파이언스 대학교 상경학과를 졸업한 후 충북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일념으로 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 이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6·25 참전과 다수의 훈장이 증명하는 ‘보국’에 헌신한 남다른 경력에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현 LG화학),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 LG건설(현 GS건설)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럭키는 1981년 ‘국민치약’이라는 수식과 함께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으며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2000년 구 회장은 LG유통의 FS(식품서비스) 사업 부문과 함께 그룹에서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21년간 아워홈은 LG, LS그룹과 수의계약을 맺으며 대표적인 단체급식·식자재 유통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구 회장은 최근까지 회장 직함을 유지했지만 고령으로 사실상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 광주시 광주공원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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