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업단 조합집행부 간 갈등 심화가 부른 사태
공사중단 맞서 조합은 시공단 '계약해지' 추진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일반분양 무기한 연기

1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현장에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붙어 있다. (현대건설 제공)
1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현장에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붙어 있다. (현대건설 제공)

[스페셜경제=임준혁 기자]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명명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장의 공사가 15일 멈췄다.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시작된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갈등이 심해져 시공사업단이 현장에서 철수한 것.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으로 꼽힌다.

15일 시공사업단 참여 건설사와 조합의 취재내용을 종합해 보면 전날(14일)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은 공사현장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었다. 사업단은 앞서 조합 측에 통보한 대로 15일 0시부터 공사 현장에서 인력과 장비·자재 등을 철수시킨다는 입장이다.

사업단 측은 “현재 공정률이 52%인데도 지금껏 공사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며 “이미 변경된 계약으로 공사하고 있는데 조합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 공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정말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의 입장도 강경하다. “10일 이상 공사가 중단되면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섰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조합은 지난 13일 대의원회를 열고 ‘조건부 계약해지 안건 총회상정안’을 통과시켰다. 전체 120명의 대의원 중 116명이 참석해 111명이 찬성표를 냈다. 이에 따라 조합은 공사가 10일 이상 중단될 경우 별도 대의원회 없이 이사회 의결로 총회를 열어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극한 대립의 배경에는 2020년 6월 양측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에서 비롯된다. 당시 둔촌주공 전 조합장은 공사비를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늘리기로 계약했다.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늘어나게 된 것이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2개월 뒤 당시 조합장이 해임됐고, 새로 출범한 집행부는 이전 조합과 맺은 계약이 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당시 계약이 조합 총회 의결을 통해 맺어졌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았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5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이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7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긴 이주 작업 끝에 2019년 12월 착공신고를 했지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분양가 씨름으로 당초 2020년 예정이었던 일반분양이 지연되고 있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지금껏 자체 조달해 투입한 공사비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철거공사까지 포함해 3년 이상 공사비를 받지 못했고, 사실상 ‘외상 공사’를 해왔다는 주장이다.

시공사업단과 조합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강동구청도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무산됐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착공 뒤 곧장 분양해서 사업자금을 조달하는데 둔촌주공은 여러 문제가 겹쳐서 사업이 꼬인 사례”라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다. 조합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여하고 있는 이주비 대출 규모는 1조28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 빌린 돈만 2조원에 달한다.

연이자부담만 연간 800억원 규모다. 결국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공사가 늦춰지면서 내년 8월로 예정했던 입주일도 미뤄지게 된다. 4786가구에 달하는 일반분양도 현재 안갯속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게시판에는 둔촌주공 재건축 분쟁 관련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4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조합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위협”이라고 호소했다.

공사가 절반 정도 이뤄진 채 사업이 중단되면 조합이 새로운 건설사를 찾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사업 규모가 크더라도 소송비용과 각종 이자 비용까지 감수하고 사업을 이어 맡을 건설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조합 입장에서는 새 정부가 분양가 규제를 풀겠다고 한 만큼 버틸수록 분양가를 올릴 수 있고, 착공일부터 3년 이상 준공되지 않은 정비사업의 경우 전매제한 금지도 풀린다는 계산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공사가 중단되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은 15일 오전 공사중단 관련 입장문을 냈다. 입장문에 따르면 2020년 6월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체결한 공사도급변경계약이 정상적이라는 주장이다. 즉, 시공사업단은 계약 체결 당시의 (공사도급변경계약)내용을 근거로 1만2032세대 공사를 하고 있지만 조합은 공사의 근거가 되는 위 공사도급변경계약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 따라서 더 이상 공사를 지속할 계약적,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또한 조합이 마감재 승인을 거부하고 아파트 고급화 명분을 앞세워 특정 회사의 마감재를 적용하라고 시공사업단에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등 공사기간을 9개월 넘게 지연시켰기 때문에 공사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더불어 조합측이 왜곡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조합 집행부와 자문위원단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이번 사태가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 간의 신뢰가 무너져 발생한 만큼 두 주체 간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사상 초유의 재개발 사업 공사중단 현상은 장기화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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