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컬럼니스트.
언론인,컬럼니스트.

국민은 한가지 시름을 덜게 되었다. 오는 5월 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 퇴임 대통령과 취임 대통령이 대선 이후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마침내 28일에 만찬을 겸한 첫 만남에 합의한 것이다. 대선이 끝난 지 19일 만이며 처음 합의한 만남을 네 시간 남겨두고 취소한 지 열이틀만이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이 18일 만에 김영삼 당선인과 만난 기록을 하루 차이로 갱신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비록 김영삼 당선인이 같은 정당 소속이기는 했어도 3당 합당 이전까지는 거의 평생을 야당 투사로 살아온 경력을 마뜩잖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소속 정당이 다른, 그러나 자신이 발탁한 검찰총장이 우여곡절 끝에 야당 대선 후보로 나와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감정이 YS를 보는 노태우 대통령의 심정과 통하는 데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중 탄핵, 파면당한 국면에서 당선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인수위 없이, 다시 말하면 정권을 인계할 전임자가 유고인 상황에서 취임한 드문 사례에 속한다. 반면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 사퇴 후 바로 정치에 입문, 대통령에 당선된, 이 역시 드문 사례다. 한쪽은 인수위 경험이 없고 다른 한쪽은 정치, 특히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다. 이 ‘경험 없는 부분’이 양측의 ‘허심탄회한’ 만남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인수위 없이 곧장 국정에 임한, 특히 적폐청산에 드라이브를 건 신정부의 서릿발 앞에 주눅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를 상기, 당선인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나 당선인 사이에 믿음이 상당한 부분 훼손된 것인지도 모른다.

안보 앞세운 용산이전 발목잡기등

쌓인 불신, 한번 만남으로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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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무경험과 정치무경험의 대치

지방선거 집착말고 국리민복 주시를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한은 총재 후임과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를 둘러싼 대립이 첫 만남을 불과 네 시간 앞두고 ‘없었던 일’로 만든 근본 요인이 아닐까? 첫 만남이 실패로 돌아가자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위기를, 윤석열 당선인은 새 정부와 함께해야 할 인사를 왜 물러갈 정부가 서두느냐로 맞섰다. 정부 여당은 ‘퇴임하는 5월 9일 자정까지는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형식논리로, 당선인 쪽은 문 정부가 ‘지금 와서 안보문제를 앞세워 발목을 잡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다’고 맞섰다. 마침내 말꼬리 잡기 정쟁으로 체면을 구기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급작스럽게나마 ’허심탄회한 만남‘에 합의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특히 오찬이 아니라 만찬이라는 점도 보다 큰 기대를 갖게한다.

선수인 주자가 아무리 우수해도 바톤 터치가 잘못되면 릴레이 경주에서 우승할 수 없다. 정권 인수인계는 국가통치권이라는 바톤을 매끄럽게 주고받음으로써 역사에 흠을 남기지 않는다는 각오를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지 19일이 지나서야 겨우 이루어진 만남이기 떼문에 기대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과 당선인의 한 차례 만남이 그동안 쌓인 불신과 감정의 골을 풀고 메우는 데 충분한 동력을 마련할 수있느냐 이다. 집무실 용산 이전, 코로나 관련 추경 등 당면 현안도 중요하지만 1백72석 대 1백2석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필수적인 협치의 몰꼬를 트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이미 당선인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발사 직후 시진핑 주석과 통화는 등 안보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거대 야당(아직은 여당이지만)도 대국적 관점에서 동조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지방선거(6월 1일)에 초점을 맞춘 말꼬리 잡기와 망신 주기 정쟁을 협치의 시작으로 삼다가는 지방선거 역시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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