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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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정가 놈을 끌어내라.”

이숙번이 소리치자 갑사 여러 명이 우르르 민부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죽이지 말라.”

정안군(방원)이 소리쳤다.

소근과 다른 갑사 셋이 조금 뒤에 정도전을 개 끌듯이 끌고 나왔다. 벌써 초주검이 된 정도전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손에는 단검을 꼭 쥐고 있었다.

정안군이 칼을 뺏으라고 명했다.

소근이 발로 정도전의 턱을 차고는 칼을 뺏으려 했다. 그때였다. 정도전이 벌떡 일어서더니 칼을 팽개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나를 죽이지 말라. 한마디만 하게 하라!”

“대군이 지금 하는 일은 대역에 해당하는 일이오. 전하의 윤허를 얻어서 지금 군사를 일으킨 것이오? 사사로이 군사를 일으켜 나라의 중신들을 해치는 것은 반역이 아니오?”

정도전이 피를 뿜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역적모의를 한 주제에 무슨 변명이 그리 많은가? 여봐라, 저 역신의 입을 영원히 봉하라!”

방원이 그렇게 말하고 말고삐를 돌렸다.

“대군…….”

정도전의 절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종 소근이 들고 있던 칼로 정도전의 가슴을 찔렀다.

“으음……. 네 놈들이…….”

정도전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소근이 다시 들고 있던 철퇴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는 처참한 모습을 횃불이 비추고 있었다.

“왕, 왕후 마마…….”

정도전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땅에 엎어졌다. 그 위에 소근이 다시 짓이기다시피 철퇴 질을 해댔다. (졸저 ‘해동육룡이 나르샤’ 중에서)

태종의 아들 방원은 아버지 태조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심야에 정도전이 있던 곳을 습격하여 밖으로 끌어내고는 목숨을 끊어버린다. 계모 신덕왕후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편에 선 정적 정도전을 제거한 것이다. 정도전은 봉화백의 작위를 받은 당대 최고의 실세였다.

정안군 방원의 거침없는 행동은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보복’뿐 아니라 권력을 미끼삼아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처남 형제를 작살내는 ‘적폐 숙청’도 서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의 과감한 정치 행보는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을 처형하고 세종 임금의 장모를 노비로 만들었다. 적폐를 청산하는 일뿐 아니라 미래의 ‘적폐’도 제거하는 혹독한 정치를 폈다.

조선 왕조에서는 적폐청산, 정치보복과 같은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

특히 연산군 이래 그치지 않고 일어났던 사화(士禍)는 조선 역사를 선비의 피로 물들였다. 특히 규모가 크고 희생이 많았던 무오사화(연산군), 갑자사화(연산군), 기묘사화(중종), 을사사화(명종)를 조선 4대 사화로 꼽는다.

특히 당파로 인한 사화는 그치지 않았다. 노론, 소론, 동인, 서인 등 4대 당파가 다시 분열하면서 조선의 정치를 피로 물들이는 정치보복을 자행 했다. 그로 인해 나라가 망했다는 분석이 있다.

태종은 정치보복과 적폐청산, 이 두 가지를 다 행한 왕이었다. 자기와 함께 정권을 잡기 위해 ‘정치보복’에 앞장섰던 처남들을 뒤에 ‘적폐 청산’으로 목숨을 거두어 갔다. 그의 ‘적폐 청산’‘은 미래까지 염두에 두어 장차 세종의 외가 세력이 ’적폐세력‘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심씨 가문을 도륙내기도 했다.

요즘 대선에서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으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은 서로 닮은 점이 있지만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적폐청산’의 명분으로 정치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적폐청산’이 곧 ‘정치보복’이라고 우겨서도 안 된다. myswoo@nate.com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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