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소설가
언론인,소설가

필자가 스포츠신문을 창간하면서 지면 한 귀퉁이에 <오늘의 운세>라는 난을 만들어 띠별로 한국인의 그날 운세를 간략하게 실었다. 집필자는 역술인이거나 무속인이었다.

미신이라고 게재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 기관에서 일간신문 기자를 참여시키는 행사에 우리 기자들을 배제 시킨 일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운세나 싣는 신문이 언론이냐”고했다.

그러나 이 ‘오늘의 운세’는 뜻밖에 독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 심지어 대기업의 임원들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아침에 ‘오늘의 운세’를 보고 윗사람에게 결재를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고 있으며 재미로 이를 읽는 독자들이 많다.

젊은이들은 이성을 사귀면 타로 점을 보러간다. 결혼을 앞둔 엄마들은 궁합을 보러 무속인 집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당선되기 위해 조상의 묘를 ‘명당’으로 이장한다.

이것을 미신이라고 범죄인처럼 취급하지는 않는다. 현대인의 풍속으로 본다.

다음주 2월4일은 입춘(立春)이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입춘 날이면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방을 써 붙이는 것이 오랜 풍습이다. 정부에서도 26일 광화문에 문배도(門排圖)를 붙였다. 금갑장군(金甲將軍)으로 불리는 무섭게 생긴 신장이 광화문 양쪽 문에 서로 보면서 서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설을 앞둔 26일 오후 2시 20분에 광화문 문배도 공개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역질 퇴치를 기원하는 대형 부적(符籍)을 나라의 대문에 붙인 셈이다. 이를 미신숭배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26일 광화문에 붙은 금갑장군 문배도.
26일 광화문에 붙은 금갑장군 문배도.

문배는 통일신라시대의 「처용가 문배(處容歌門排)에서 유래한다. 신라 헌강왕이 용을 위해 사찰을 건립하자 용이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일곱 아들로 하여금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그중 한 아들인 처용은 임금을 따라 서울에 와서 아름다운 아내와 관직을 얻었다. 그런데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사모하여 그녀와 관계를 맺었는데, 처용이 넓은 도량으로 대하자 이에 감복하고 처용의 형용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처용그림을 문에 붙여서 역신을 물리쳤다고 한다.

무속이나 역술은 우리민족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어있기 때문에 풍속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주역의 사주(四柱)에 기반을 둔 ‘띠’라는 것을 우리는 미신이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환갑을 인생의 중요한 매듭으로 생각하고 기념하고 있다. 환갑(還甲)은 자기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주역의 12간지(干支)를 다 쓰고 다시 시작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하고 금지하지 않는다.

역술이나 무속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도 많다. 김동리의 ‘무녀도’(巫女圖), 현진건의 ‘운수 좋은날’, 필자의 ‘화조(火鳥) 밤에 죽다’도 무당과 운세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환갑잔치를 미신행사라고 생각하고 기피하는 사람은 없다. 부모가 자식 혼사를 위해 점집을 찾아 궁합 보는 것을 그냥 풍속으로 이해한다.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 돼지꿈 꾸기를 바라는 직장인을 미신 믿어 큰일 낼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너는 말띠라서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면서도 이를 미신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운동 경기를 할 때 공수(攻守)를 가리기 위해 심판이 동전을 날려서 땅에 떨어진 모양의 앞뒤를 보고 정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우리의 풍속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무속인과 친하다고 해서, 역술인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마치 고려 말의 요승 신돈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난리를 피워야 하는가. 무속인도 역술인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선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설마 미신에 의존한 정치를 하겠는가. 작금의 정치판이 한심하다. <myswoo@nate.com>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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