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소설가
언론인,소설가

‘1963년부터 이상우는 신문기사의 혁신을 꾀해야 된다고 마음먹고 우선 지면의 개혁을 시도했다. 한글 전용 지면을 만들고 단어도 우리말로 풀어서 썼다. 가령 ‘20여 명’은 ‘20 몇 명’, ‘김모 씨’는 ‘김 아무개’, ‘100여 일’은 ‘100며칠’ 이런 식으로 썼다.

25세의 청년 편집부장이던 그는 이 만용(?)에 가까운 짓을 흐뭇하게 생각하고 전 지면을 이런 식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러한 지면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발행인에게 불려가서 도대체 신문을 왜 그렇게 망치느냐고 호통을 듣게 된다. 한자 숙어에 익숙해져 있는 당시의 경영인들에게 순 한글 신문은 ‘암호 신문’처럼 보였던 것이다.’ [1998년, 천상기 저 <한국편집기자 열전>]

50여 년 전의 일이다. 신문의 기사는 물론 제목도 한자 투성이었다.

‘수부회담 개최호’(壽府會談開催乎)

이 제목은 ‘스위스제네바에서 회담이 열릴까’하는 전망 기사의 제목이다. 이 시절에 순 한글 제목을 달자니 읽기 불편하다는 독자의 불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늘어난다는 생각으로 한글 전용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그 뒤 중앙 일간지에서 근무할 때도 한자(漢字) 없는 신문을 꿈꾸어 오다가 마침내 1985년 스포츠 서울을 창간하면서 한국 최초의 가로쓰기 한글 신문을 창간했다.

한글은 요즘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류 붐을 타고 한글 가사를 따라 읽기 위해 팬들이 한글을 익히는 열풍이 일 정도라고 한다.

‘지난 9월 오징어게임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영국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2주 만에 76%, 미국에서는 40%나 늘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샘 달시머 대변인은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영향력은 해당 언어를 배우려는 흐름으로 이어진다며 “한국 영화, 음악, 드라마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한국어 학습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조선일보)

오징어게임뿐 아니라 그 훨씬 전에 세계를 휩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한 가사외우기로부터 시작된 한글 열풍은 지금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접수자 수는 37만 명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인도는 지난 7월 말, 제2외국어에 한국어를 포함시켰고, 앞으로 한국문화원과 네루 대학교가 공동주최하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인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미국 버몬트주 미들베리칼리지에서 ‘BTS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자’ (Learn! KOREAN with BTS)는 교재를 활용한 한국어 강좌가 수강생 정원을 초과했다고 한다. 학부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 학생들은 매주 2회, 3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BTS 한국어 강좌는 BTS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교육법인 빅히트 에듀와 허용 한국외대 교수 연구팀이 함께 개발했다. 올해 초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업무협약을 맺은 뒤 본격적으로 외국 대학에서 개설을 추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76개 국가에서 한국어 배움터를 제공하는 세종학당 신규 지정 공모에는 역대 최다인 50개국 101개 기관이 신청했다. 그동안 한국어 배움터는 아시아 지역에 주로 몰려 있었지만 올해 선정된 34곳 중에는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까지 포함됐다. 코로나19 여파로 당분간 학당에 가서 공부할 수 없게 된 학생들을 위해 처음으로 온라인 화상수업 프로그램도 마련했다.(정책브리핑)

필자가 신문 제작의 컴퓨터화 작업을 한 일이 있는데, 영어를 쓰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한글의 우수성에 감탄했다. ‘예외가 없는 발음, 24자 자판이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폭넓은 수용력’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MZ세대는 신조어를 만들기 바쁘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말은 세월을 따라 흐른다. 자연스러운 세대의 변화를 나무랄 것이 아니다. 흐르는 한글은 세계화의 길을 더 빠르게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2년 동안 코로나에 갇혀 살던 세상, 올해는 한글도 기지개를 켜고 바깥세상으로 튀어 나갔으면 좋겠다. 한글이 세계 공통어로 되는 날까지 세종 대왕의 위대한 유산을 갈고 닦자. <myswoo@nate.com>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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