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03)

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
인문고전경영연구가, 작가

그림에선 사람이 두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는 모습이지만 시는 은행나무를 내세워 절규하는 모습을 담아내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볍게 무시하는 그런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 시가 가진 고유한 매력일 테다.

심문/신미나

인부들이 커다란 은행나무 가지를

톱으로 잘라낸다

왜 자르는 쪽이

소리가 더 큰가

 

 에드바르 뭉크, ,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오슬로국립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오슬로국립미술관.

필사는 느린 꿈꾸기이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며, 행복한 몽상의 계기를 준다. (중략) 작가의 글을 필사하고, 그것을 읽고 또 읽으며 여러 계절을 흘려보내는 것은 좋은 문장을 쓰는 훈련이다.” (장석주, 《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맛을 안다》, 288쪽 참조)

올 여름철, 시인 신미나(申美奈, 1978~ )의 두 번째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창비, 2021)를 읽었다. 후배 시인 황인찬은 신미나의 시를 읽으면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서늘한 뒷모습이 떠오른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멋진 추천사를 썼는데 오랫동안 음미하며 씹어야만 했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의 해설이 내 마음을 훔쳤다. 해설에서 필자가 밑줄 친 한 문장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고통이 만연한 세상에 정직하게 귀의한다. (같은 책, 134쪽 참조)

신미나 시집에서 필자는 심문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래서 기필코 필사(筆寫)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여러 번에 걸쳐 필사를 반복하다 보니 행간 사이로 화자의 절규로 메아리가 되어 들리었다. 시 제목인 「심문」을 한자로 쓰자면 ‘審問’이 맞다. “자세히 따져서 묻는다”는 의미로 뜻이 새겨진다. 나 같으면 ‘절규(絶叫)’라고 시제를 붙였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시와 어울리는 그림이 떠올랐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1893년 작품인 <절규>가 그것이었다.

누가 커다란 은행나무 가지를 톱으로 자르는가?

그림에선 사람이 두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는 모습이지만 시는 은행나무를 내세워 절규하는 모습을 담아내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볍게 무시하는 그런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 시가 가진 고유한 매력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인이 왜 자르는 쪽이/소리가 더 큰가하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독자로서 말이다. 그것을 자세히 따지는 시간을 덧없이 마주치게 될 테다.

그림에 대해서, 운명의 그림(세미콜론, 2020)에는 좋은 설명이 나온다. 다음은 그 내용 일부로 필자가 간추렸다. 필사적으로 두 귀를 틀어막고 있는 주인공의 몸짓은 그 외침을 듣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외부 세계를 거부한다면 눈과 입도 닫아야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단추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콧구멍을 한껏 벌렸으며,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듣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연의 절규에 격렬히 공명하여, 자신도 역시 소리가 나지 않는 비명을 계속 지르고 있는 것이다. (중략) 붉은 하늘이, 바다가, 대지가 절규에 맞춰 일그러지고 왜곡되며 구불거리고 넘실댄다. 물기 적은 붓으로 긁어 낸 듯 표현한 뒤틀린 선이 인물의 육체와 정신을 몰아붙인다. (같은 책, 36쪽 참조)

시엔 은행나무가 등장한다. 나는 가끔 양평 수수카페를 찾는다. 그곳엔 4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에도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절집 내리막길에 서 있다. 거기서 보는, 일출이란 말로 뭐라고 설명하기 딱히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느낌을 준다. 그런 사랑의 기분을 맛보게 한다. 그렇다. 운길산(雲吉山) 수종사 은행나무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 풍경만 보고, 절집 풍경은 설사 듣지 못하더라도 내 운명 사용은 하산하면 곧 운길산(運吉産)이 되어서 바뀌어 질 테다.

흔들리며 버티며 살아가는 나무의 지혜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책, 나무처럼 살아간다(덴스토리, 2020)에선 은행나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결국 남는 건 실망감뿐이다. 여러모로 뛰어난 은행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화석으로 유추해볼 때 이 땅에서 2억 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중략) 가을에는 부채 모양 잎사귀가 화려하고 선명한 노란 빛으로 물든다. 그러나 이 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정말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모든 게 완벽하길 바랄 순 없나 보다. (같은 책, 81쪽 참조)

어쨌건 신미나는 인부들이 커다란 은행나무 가지를/톱으로 잘라내는 과정을 목격하며 시를 완성했다. 이윽고 독자에게 심문의 권한을 부여했다. 반면에 뭉크는 그림을 통해서 우리가 하찮고 사소하게 보는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길 주문했다. 코로나로 고통을 받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 불평의 아우성이 지금 더 큰가. 아니면 단속하는 쪽, 뉴스가 더 큰가.

한가위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절규로만 듣지만 말고 꼼꼼히 심문하려는 대통령 후보가 이제라도 보인다면 그에게 가서 나는 기꺼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테다ylmfa97@naver.com

참고문헌신미나,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창비, 2021. 장석주, 《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맛을 안다》, 여문책, 2018. 288쪽 참조.나카노 교코, 최재혁 옮김 《운명의 그림》, 세미콜론, 2020. 35~43쪽 참조.리즈 마빈 외, 김현수 옮김 《나무처럼 살아간다》, 덴스토리, 2020. 81쪽 참조.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한국MID문화예술원 인문교양학부 책임교수. 경제주간지 머니위크 객원논설위원 등. 지은 책으로 《공자와 잡스를 잇다》, 《이립 실천편》, 《책, 세상을 경영하다》등이 있다. 현재 고전경영연구공간 동아시아경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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