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소설가
언론인, 소설가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이 명언은 김구 선생이 남긴 말씀이다. 문화의 힘이 경제의 힘이나 국방의 힘 보다 훨씬 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 국가를 오르내린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반도체’와 ‘bts’라고 꼭 집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도체는 경제의 상징이고 'bts'는 문화의 상징이다.

지구상에는 200여 국가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이 확실히 톱 10 클래스에 가 있는 증거로 이 2가지를 들 수가 있다. 반도체는 삼성을 비롯한 민간의 기업들이 일으킨 성과이고, bts 역시 민간 예술인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일으킨 성과가 아닌가. 정부의 힘, 혹은 정치인들이 일으킨 기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값어치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훑어보면 문화가 가장 최후의 승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는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사상 최강의 국가로 성장한 로마도 결국은 그리스의 문화에 정복당하지 않았는가. 고대 유럽의 문화 근간이 된 철학, 문학, 종교, 신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는 군대의 강력한 힘으로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같은 대철학자도 배경은 그리스 문화에 있지 않은가. 주피터도 비너스도 그 모델은 그리스의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이다.

서양 문화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도 문화의 우위성을 증명하고 있다. 몽골 유목민이 중원을 점령해서 세운 원(元)나라와 청(淸)나라, 변방 오랑캐로 불리던 여진족이 중원을 무너뜨리고 세운 금(金)나라도 피점령 민족인 한족(漢族) 문화에 점령이 되었다. ‘높은 문화’는 어떠한 무력으로도 말살 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령당한다는 것을 동서양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김구 선생은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요즘 모든 뉴스는 코로나19와 차기 대권 후보에 쏠리고 있다. 대권을 잡겠다고 나선 사람이 벌써 20여명이 되었다.

그런데 발 빠른 정치인들은 출마의 변을 여러 가지 형태로 웅변하고 있다.

모두가 문재인 정부의 현안이었던 주택문제, 소득과 성장 문제, 공정과 청년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누구나 안락한 집 한 채 가지고 살 수 있는 권리, 공정한 경쟁으로 취업하고, 교육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권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사회는 결국 어떤 문화 속에 사는가 하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다.

대다수의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선언을 했다. 정치 선언을 준비하기 전에 각계의 유능한 인사들을 찾아서 조언도 듣고 토론도 했다고 한다. 경제, 부동산, 반도체, 외교, 안보 등의 전문가와 대가들을 만났다.

그런데 아직 문화 예술계나 스포츠계의 전문가나 원로들을 만났다는 뉴스는 보지 못했다. 저명한 시인, 소설가, 평론가, 세계적인 음악가, 체육인, 화가, 영회인, 의상 디자이너 등을 만났다는 뉴스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청치 입문 선언과 기자회견에서도 문화, 예술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2시간 가까운 기자회견이 경직 되어 딱딱한 이야기만으로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화 예술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강력후보 이재명 지사도 출마선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역시 문학인, 음악인, 화가, 무용가, 체육인에 대한 비젼은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을 때는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모셔다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위정자라도 후세에 이름을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 그것도 ‘높은 문화의 힘’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myswoo@nate.com

이상우

언론인이며 소설가.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일간신문을 창간한 언론인. 역사, 추리 소설가인 저자는 세종대왕 이도, 신의 불꽃 등 4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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