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돌아왔다” 파운드리 사업 추진…200억달러 투자
美 반도체 내재화 의지…구글 등 자국 IT기업과 협력할 수도

펫 겔싱어 인텔 신임 CEO (사진=인텔)
펫 겔싱어 인텔 신임 CEO (사진=인텔)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진출한다. 지난 1월 실적발표 당시만 해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파운드리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혔던 것과 대조적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미세공정에서 10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의 벽 앞에서 고전 중이데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등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면서 인텔의 위상은 흔들이고 있다.  반도체 설계전문업체(팹리스) AMD가 CPU(중앙처리장치) 기술력을 강화하면서 인텔의 시장점유율을 끌어내리고, 데이터센터·AI(인공지능)·빅데이터 분야에서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널리 쓰이면서 폭풍성장한 엔비디아는 인텔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2025년 1000억달러까지 성장할 파운드리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3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운드리 사업 진출 등을 담은 새 사업전략을 공개했다. '인텔 언리쉬 :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이름처럼 과거 인텔의 영광을 회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 사업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인텔이 돌아왔다. 과거의 인텔은 새로운 인텔”이라며 인텔의 부활을 이끌겠다고 선포했다. 1980~1990년대 인텔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앤디 그로브처럼 제2의 전성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겔싱어 CEO는 과거 인텔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던 반도체 기술 전문가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등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을 만든 인텔 창립 삼인방 아래서 기술 개발을 수행하며 인텔 코어, 제온 프로세서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을 연구하고, 인텔이 USB·와이파이 규격 제정을 주도하는데 역할 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던 2년 전과 달리 시장 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로 명명된 파운드리 사업부를 출범하고 20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 2곳을 짓는다. 인텔은 현재 미국에서 공장 4개를 가동 중이다. 아일랜드, 이스라엘, 중국에서도 칩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 중이다. 여기에 신규 공장까지 가동할 경우, 인텔은 아시아 의존도를 높이려는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겔싱어 CEO도 "현재 대부분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시설을 미국과 유럽에서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다른 기업들의 반도체도 본격적으로 위탁 생산을 할 계획이다. 겔싱어 CEO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는 모바일 장치에 사용되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용 아키텍처 ARM 기술 기반 칩과 자체 아키텍처인 x86 칩 등 다양한 칩을 제조할 것"이라며 "파운드리 고객사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스프트(MS), 퀄컴, 애플 등을 끌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 구글, MS, 퀼컴, 애플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다. 사실상 이들을 빼앗아오겠다고 선전포고한 셈이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는 초미세공정 기술에서 두 세대 이상 뒤쳐진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인텔의 내공을 고려한다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텔은 장기간 반도체 IP를 축적해온데다, 팹리스들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해왔다.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도 알려진 것보다 성능이 높다는 평가도 있다.인텔은 1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수준에 머물러 있다. TSMC와 삼성전자가 5나노미터를 상용화하고 내년까지 3나노 양산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운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뒤쳐진 셈이다. 그러나 실제 14나노 공정의 성능이 삼성전자와 TSMC의 10나노급 공정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2023년까지 일정대로 7나노 공정에 성공한다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게다가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순위권에 진입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에는 IBM, MS, 구글, 아마존 등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IT기업들이 몰려 있다. 이들이 자국 이니셔셔티브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인텔 수주량을 늘려갈 수도 있다. 이를 염두한 듯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해놨다. 패키징 등 연구개발(R&D)에선 IBM과, 설계 분야에선 케이던스, 시놉시스 등과 협력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할 방침이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견인차로 파운드리를 키우는 삼성전자로선 당혹스런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올해에만 35조 가량이 투입된다. 지난해보다 20% 가량 늘어난 액수다. 평택 P3를 착공하고, P2에 짓는 5나노 파운드리 라인 규모를 기존 2만8000장에서 4만3000장으로 늘렸다. 특히 이 라인에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배치하고 양산 시점도 상반기로 앞당긴다. 미국에서도 17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검토 중이다. 다만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최대 20년 동안 8억547만달러의 세금 감면을 요구하고 있으나, 오스틴시는 15년 감면안을 제시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