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페셜경제=최문정 기자]셧다운제,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 등 게임 업계를 덮친 굵직한 이슈에 앞장서 게임업계를 옹호했던 이용자(유저)들이 달라졌다. 게임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띄운 트럭을 사옥으로 보내고, ‘게임 난민’을 자처하고 있다. ‘한도 0원 챌린지(게임 내 아이템 유료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운동)’ 등을 행동으로 옮기는 유저들도 있다. 넥슨의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충성스런 게임 팬이 복수자로 돌아서는데 걸린 시간은 단 3주였다.

‘모든 종류의 추가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

사건의 시작은 지난 2월 18일로 거슬로 올라간다. 지난 2003년 4월 세계 최초의 횡스크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로 서비스를 시작한 메이플스토리 게시판에 공지문이 하나 올라왔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을 지적하며 확률 공개를 요구하는 법안 제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결과였다.

공지는 평범했지만 유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아이템에 부여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추가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됩니다”였다. 이 사소한 문장에 그동안 게임 속 캐릭터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매달 돈을 써 온 유저들은 분노했다. 그동안 게임 아이템 뽑기에 적용돼 있던 확률이 동일하지 않았음을 회사 쪽에서 인정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일종의 뽑기다. 비용을 지불하면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아이템 등의 보상이 제공된다. 운만 따라준다면 비교적 적은 돈을 들이고도 높은 효과를 더해주지만, 역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많은 돈을 쓰고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지난 2005년 알 모양의 캡슐형 아이템을 국내 게임 중 처음으로 도입하며 확률형 아이템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은 정해진 확률로 희귀한 아이템을 뽑는 ‘캡슐형 아이템’과 게임 내 장비·무기 등에 능력을 더하는 ‘강화형 아이템’으로 진화했다.

한 메이플스토리 유저는 “아이템을 구매해봤으면 알 수 있다. 좋은 아이템일수록 얻기가 어렵다. 사실 심증으로 확률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공지로 확인하니 화가 났다”라고 밝혔다.

밤새 달궈진 여론에 다음인 2월 19일 강원기 메이플스토리 디렉터가 사과문을 내놨다. 그는 아이템 추가옵션에서 변동확률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한편, 어빌리티 부문의 조작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그동안 ‘임의’, ‘무작위’ 등의 불분명한 표현 아래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해왔다고 사과했다.

트럭 시위부터 확률 공개까지

메이플스토리 시위 트럭 (사진=메이플스토리 인벤)

 

그러나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게임 커뮤니티 인벤, 디시인사이드 메이플갤러리, 다음카페 여성시대, 연세대학교 메이플동아리 등 서로 다른 유저 단체들은 똘똘 뭉쳐 회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게임 내 유료 아이템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한도 0원 챌린지’를 진행하는 한편, 게임에 결제하지 않는 돈을 모아 트럭을 대여해 회사 앞으로 보냈다. 트럭에는 “겉으로는 단풍이야기(메이플스토리) 뜯어보니 바다이야기”라는 문구와 함께 메이플스토리에 적용된 확률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아예 ‘메이플 난민’을 자처하며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등의 게임으로 집단이주하기도 했다.

여론에 밀린 넥슨은 지난 5일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에 메이플스토리 게임 내 대표적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의 잠재능력 재설정 로직과 세부 확률을 공개했다.

메이플스토리 '큐브' 아이템 확률
메이플스토리 '큐브' 아이템 확률

 

큐브는 메이플스토리의 대표적 확률형 아이템이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장비 아이템은 기본옵션에 ‘잠재능력’을 추가해 성능을 올릴 수 있다. 큐브는 이런 장비의 잠재능력을 무작위로 재설정해준다. 레어→에픽→유니크→레전드리 등급의 순서로 성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예컨대 잠재능력이 10인 평범한 칼 아이템에 큐브를 활용하면 잠재능력 500의 고성능 아이템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셈이다.

강원기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메이플스토리, 더 나아가서 넥슨 게임의 확률 공개는 메이플스토리 고객님의 귀한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라며 “이번 공지를 시작으로 더욱 투명하고 신뢰받는 게임으로 거듭날 것을 고객님께 약속드립니다”라고 재차 사과했다. 향후 모든 게임으로 유료 아이템의 강화, 합성 확률 공개를 확대할 것이라는 약속도 있었다.

그러나 넥슨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큐브 확률 공개와 함께 메이플스토리 게임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 구매를 통해 달성하도록 설계돼 있는 등급 중 일부는 실제로는 달성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달성조차 불가능한 게임 내 성취를 위해 돈을 썼던 유저들은 또다시 분노했다. 사용 금액은 적게는 수십~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넥슨 측은 “일부 옵션을 한가지로만 설정할 수 없게 제한한 것은 도입 당시 게임 밸런스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며 “그동안 중복옵션제한, 큐브 옵션의 확률과 종류 등은 비공개였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후에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해명했다.

분노의 배경은 ‘신뢰의 상실’

유저들은 “이번 사태로 게임회사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입을 모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사태의 해결은 유저와 회사와의 진솔한 대화와 소통으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트럭시위를 진두지휘한 메이플스토리 유저 '세계'는 “트럭시위를 시작한 이유는 메이플스토리에서 유저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저의 권리를 되찾고 싶었다”며 “최종 목표는 유저와 운영진이 소통하며 오래 서비스하는 메이플스토리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회사 측에 유저와의 간담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11일 넥슨은 유저 간담회 대신 내달 ‘고객 간담회’를 열겠다고 밝혔지만 ‘세계’를 비롯한 총대진(대표진)들은 거부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는 “회사가 유저와 소통을 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이에 간담회를 요청하는 것이 아닌 유저들이 간담회를 개최하고 관계자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는 불참의사와 함께 간담회를 계획 중이었다는 답변을 했고, 이틀 뒤인 오늘 간담회를 4월11일에 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며 “하지만 저희는 간담회 그대로 개최하니 참여해달라는 의사를 다시 보냈다”라고 밝혔다.

한편, 메이플스토리에서 시작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국내 게임 업계 전반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특히 넥슨이 아이템에 적용된 확률을 전격 공개한 만큼, 타사도 적용 확률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전면 유료 서비스로 게임을 제공하기 어려운 국내 게임업계의 상황 속에 확률형 아이템 판매는 ‘부분결제’로서 게임사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위정현 한국 게임학회 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의 반발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게 되고 이렇게 되면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최근 게임사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트럭시위’ 등 이용자가 게임사를 강력히 비판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며 이용자를 버린 산업, 이용자의 지탄을 받는 산업은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아이템 확률 정보에 대한 정확한 공개는 이용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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