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뿌리째 흔들고 사과하면 그만?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최근 LIG투자증권(사장 김경규)이 이른바 ‘동양사태’로 불거진 그룹 리스크와 관련해 동부그룹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가 동부그룹이 전면 반박에 나서자 뒤늦게 입장을 바꾸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한 분석 오류’라고 보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분석 리포트 통해 “동부그룹, 동양그룹과 닮은 꼴”
‘단순 오류 vs 숨은 의도 있다’…멈추지 않는 논란


지난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LIG투자증권 유선웅 연구원은 지난 14일 ‘그룹 리스크 진단 : 위험하지만 참을 만하다’라는 제목의 분석 리포트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유 연구원은 부채비율이 높은 한진·현대·동부·이랜드·두산 등 5개 그룹 분석 결과 “동부그룹의 위험도가 가장 높은 수준이며, 동양과 비슷한 차입 구조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유 연구원은 “동부화재 등 금융 계열사들의 사업 및 재무구조는 안정적이지만 비금융 계열사들은 부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동부건설의 부채비율은 499.4%, 동부메탈 435.9%, 동부제철 271.8%를 기록했다. 동부그룹의 차입금 중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3조 5637억원(59.3%)이고, 사채 및 단기차입금의 비중은 총 차입금의 59.1%에 달한다며, 이는 ‘동양과 닮은 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부그룹 ‘정면 반박’


이를 두고 동부그룹은 16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정면 반박에 나섰다.


당시 동부그룹은 “당사가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동부의 차입구조가 왜 동양과 유사한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동부 측은 그룹마다 영위 업종이 다르고, 특성도 다양한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위험순위를 정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동부와 동양의 차입구조가 전혀 다름에도 막연히 비슷하다고 단정한 것은 증권사 분석보고서 기본에서 크게 벗어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이는 기업의 신용도와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위”라면서 “앞으로 이번과 같이 근거 없이 기업의 신용도를 훼손하는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법적 대응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부그룹에 따르면 동부의 차입금은 은행 등 제도권 금융이 3분의 2에 달한다. 회사채는 전체 차입금의 3분의 1 수준이며, 특히 기업어음(CP)은 거의 없어 시장성 차입금 비중이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만기 상환과 관련해서는 유동성 확보 능력이 충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동부제철의 경우,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6800억원, 동부건설은 2770억원에 달하지만 회사 보유현금과 건물 및 계열사 매각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업계에서 보고서를 두고 파장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유 연구원은 같은 날 분석보고서의 취지를 해명하고, 수정보고서 발행에 나섰다.


그는 “동양그룹과 같은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분석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수익성 전망, 상환 및 차환, 구조조정 계획 등 기업 위험도를 고려하는 다양한 요소를 배제하고 부채의 관점에서만 리스크를 분석하는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 “이런 부분을 고려하면 그룹 간 위험도 순위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그룹별 위험도 순위를 삭제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숨은 의도’ 있었나


이처럼 LIG투자증권 측이 공식 사과를 통해 사건 조기 진화에 나섰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서 사기 기업어음(CP) 발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같은 계열사 LIG건설 부실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다른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울러 일부 언론은 LIG손해보험의 경쟁사인 동부화재를 흔들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LIG투자증권이 발행한 보고서에는 “2012년 웅진, 올해 STX와 동양 사태를 겪으며 시장의 화두는 ‘다음 대상은 어디?’”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2012년 웅진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전에 LIG건설 CP 발행 사건이 발생, LIG그룹이야말로 ‘원조’ 부실기업으로 지목받았던 상황에서 자중은커녕 시장 불안만 키우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앞선 2011년 3월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장남 구본상 LIG넥스원 대표 등은 LIG건설 기업회생 신청 전 상환 능력이 없으면서도 CP 등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부채비율이 높은 한진·현대·동부·이랜드·두산을 분석하면서 LIG는 제외시켰다.


동부화재 흔들기?


아울러 일부 언론은 LIG투자증권 측이 동부화재 흔들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며 숨은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보고서가 알려지면서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화재에 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보고서에는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이 주로 다뤄졌지만 발표 후 동부화재에서 보험해약 문의가 발생하는 등 혼란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업계에서는 경쟁사인 LIG손해보험과 동부화재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LIG그룹이 계열사 증권 리포트를 통해 동부화재 흔들기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손보업계에서 동부화재와 LIG손보는 지난 회계연도 동안 시장 점유율 기준 각각 3위, 4위를 차지하는 등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의 경우 동부화재 16.3%, LIG손보가 14.2%로 2%포인트 이상의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올 1분기 기준으로 동부화재는 15.5%를 기록한 반면 LIG손보는 14.2%를 차지해 양사간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한 증권업 관계자는 “LIG투자증권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 고려하지 못하면서 업계의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공식 사과를 통해 이번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투자자들에게는 분석 보고서의 영향력이 막대해 한 순간 기업 신용도를 저해시키고 시장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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