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퍼레이드…수십조 쏟아 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7월 고용동향'에서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이 5천명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고용 쇼크'가 이어진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청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원내수석부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한정애 국회 환노위 간사.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만명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2010년 1월 이후 8년6개월 만에 처음이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이쯤 되면 ‘남 탓 정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은 월평균 30만 명대였으나 올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간 취업자 수 증가폭은 10만명대 안팎에 머물렀고, 실업자 수는 7개월 연속 100만명을 웃돌았는데,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그동안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날씨 탓을 하더니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골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탓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일자리 정부’라 홍보하던 현 정부가 아니던가. 또 국정운영에 무한한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여당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 집권 이후 ‘고용쇼크’를 넘어 ‘고용대참사’가 발생한데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대응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씨름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그저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대목은 당·정·청의 발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을 수정·보완하기보다 기존에 하던 그대로 예산을 추가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껏 54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고도 해결은커녕 점점 악화되고 있는 고용지표가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확대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당·정·청은 ‘소득주도성장 실패’라는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세금 퍼붓기만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그저 남 탓으로 일관하며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재인 정권의 ‘아집’에 대해 꼬집어봤다.


일자리 예산 54조원 책정…참담한 고용지표


꿋꿋하게 ‘소득주도성장’ 밀어붙이겠다는 與


지난해 1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던 문재인 후보는 국회에서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 제4차 포럼 기조발제를 통해 ‘일자리 대통령’의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에 쏟아 부은 국가예산 22조원이면 연봉 2,200만원짜리 일자리를 100만개 만든다”며 일자리 창출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SOC 사업(도로·항만·토지개량·치수·해안간척 등 산업기반 및 국토보전시설 사업) 비용을 줄이는 대신 그 예산을 가지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SOC 예산 감축 기조를 유지해 나간 반면, 일자리에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지난해 17조 700억원, 올해 19조 2000억원을 일자리 예산으로 편성했고,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11조원, 올해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 올해 청년 일자리 추경 3조 8000억원 등 총 54조원 규모에 해당하는 일자리 예산을 책정했다.


특히 본예산 19조 2000억원에 추경을 합치면 일자리에 쏟아 붓는 예산이 올해에만 20조원 달한다.


일자리 정부? ‘실업자 정부’ 쓴 소리


그러나 일자리 정책에 20조원을 투입한 결과 치고는 고용지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7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전년 7월 대비 5000명 증가한데 그쳤다.


이는 지난 2010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마이너스 1만명을 기록한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아울러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은 월평균 30만 명대였으나 올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간 취업자 수는 월평균은 10만 명대 안팎에 머물렀고, 실업자 수는 7개월 연속 100만 명을 웃돌았다.


‘국가예산 22조원이면 연봉 2,200만원짜리 일자리를 100만개 만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올해에만 2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취업자 수는 늘어나고 실업자는 수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는 ‘일자리 대참사’가 연출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일자리 정부가 아닌 ‘실업자 정부’라는 쓴 소리가 나온다.


지난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취업자 수는 2708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000명 증가했다.

野, 일자리 대참사 원인→소득주도성장 VS 與 “고통스럽지만 인내해야”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대참사와 관련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들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일자리 예산으로 공무원 및 공기업 인력들만 늘리고 있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일자리 대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과천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공무원 및 공기업 인력충원 등 다 한 결 같이 엄청난 국가재정이 들어가고 시장을 혼란시키는 정책들”이라고 질타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경제와 민생 현장에서 제2의 IMF 사태가 도래했다는 일자리 대참사라는 한탄과 하소연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며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 등 주요 국가들은 경제성장과 함께 실업률 하락 등 세계적으로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직격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것이 문재인 정부 지난 1년의 경제 성적표”라며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실패한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경제참모와 그런 참모들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쏘아 붙였다.


이처럼 야당에서는 일자리 대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로 규정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거두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소의 시간을 고통스럽지만 인내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정책의 변경이 아니라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이고, 수년 전부터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경제 체질의 혁신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이날 회의에서 “성장할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에 대한 목표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들은 보완하고, 다른 해결방법들을 찾아가더라도 그런 목표들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지속가능성 잠재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책임?…국정운영 책임 ‘방기’


정확한 진단·처방 회피하는 文 정권의 무능


하태경 “치졸 이해찬,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남 탓…박보망·문국망→朴은 보수, 文은 국민 망쳐”


민주당 일각에선 일자리 대참사의 원인을 이명박·박근혜 등 전 정권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권주자인 이해찬 후보는 지난 19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일자리 대참사와 관련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20일에는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살린다고 26조~27조원을 쏟아 부어 다른 산업의 재정 투자가 약해졌다”며 “이를 4차 산업혁명 쪽으로 돌렸으면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이 많이 돼서 산업 경쟁력이 높아졌을 것인데, 잘못된 것은 객관적으로 지적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대참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투자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바른미래당 당권주자인 하태경 후보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해찬 후보는 호를 하나 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면서 “치졸 이해찬”이라고 직격했다.


하 후보는 “잘되면 내 탓이고 안 되면 남 탓”이라며 “지금 집권여당이 돼가지고 어쨌든 자기 책임 안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되는데, 잘 안 되는 건 전부 남 탓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정말 치졸한 태도”라며 “이렇게 치졸하게 정치하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어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는 "이해찬 후보는 소인배 정치를 그만하셨으면 한다”며 “정부를 이끌어가는 여당의 당 대표 가능성이 높은 분께서 그렇게 소인배처럼 정치하고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희망이 없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실업 대란의 원인이라는 말이 있다”며 “지금 시중에 떠돌고 있는 말이 ‘박보망, 문국망’이란 말이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를 망쳤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게 다 문재인 정부 책임이지 그 이전 정부 책임이 아니다”라며 “빨리 정신 차리고 문재인 정부가 실업 암을 유발하는 암 덩어리를 도려내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일자리를 돌려주시길 바란다”고 쓴 소리를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 후보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재정만능주의에 빠진 당·청·청


국정운영에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 집권여당 차기 당 대표로 꼽히는 후보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남 탓으로 일관하면서 야당으로부터 빈축을 샀던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 확대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는 고용위기 해소를 위해 좋은 일자리 늘리기를 국정의 중심에 놓고 재정과 정책을 운영해 왔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올해와 내년도 세수전망이 좋은 만큼 정부는 늘어나는 세수를 충분히 활용하여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충분치 못했음을 시인하면서도 실패로 규정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하거나 방향을 틀 생각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오히려 예산을 늘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적극 뒷받침하란 취지로 읽힌다.


앞서 당·정·청도 휴일인 지난 19일 긴급회의를 갖고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올해보다 12.6% 인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편성된 20조원(추경포함)에 12.6%를 인상한 22조 5000억원이 내년도 일자리 예산으로 책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지금의 고용쇼크는 서막에 불과?…본질 회피하는 文 정권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고용지표가 좋지 않을 때마다 일자리 본예산과는 별개로 추경 등을 편성해 집권 이후 54조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을 책정해왔다.


하지만 무리한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책정된 예산을 다 집행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며 마련한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의 경우 최근까지 9000억 원 밖에 집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작용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부실하게 설계됨에 따라 책정된 예산조차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일자리 대참사가 발생한데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아닌, 기존처럼 일자리 예산을 늘리는 것으로 고용지표가 나아질 것이란 보장은 담보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당·정·청은 ‘소득주도성장 실패’라는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세금 퍼붓기만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6개월 동안 이어져 온 고용쇼크는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지금의 일자리 대참사가 서막에 불과할 정도로 더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그에 따른 국민적 반발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야당과 현장의 목소리를 새겨듣지 않았던 문재인 정권의 아집이 불러온 인과응보일 것이다.


그 때가서도 국정운영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방기하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탓으로 회피하려 한다면 역풍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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